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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푸치 Apr 26. 2024

다시 장애인이 되다

나는 수시 전형으로 지원했던 대학 6곳 중 2지망으로 희망했던 대학에 합격했다. 비록 부모님은 내가 지원한 곳 중 가장 거리가 멀었던 대학이라 그곳만큼은 가지 않았으면 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는 지리 감각도 많이 없었기도 했고 지방이긴 하나 나름 오래된 전통을 가진 특수교육과 학교였기에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사실 1지망으로 희망했던 사범대로 유명한 국립대학교를 가고 싶기도 했지만 상향으로 지원했던 만큼 스스로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스스로의 한계를 정했다. 이때 나는 느꼈다. 스스로 “여기까지다.”라고 생각하면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기회조차 철저히 제한받을 수 있음을.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믿고 응원해 주어야 함을. 비록 1지망으로 원했던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애초에 그렇게 프레임을 쓴 상태로 마주한 면접의 결과는 이렇게 됨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귀한 깨달음을 주었기에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최종 합격한 대학교에서는 입학하기 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필리핀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가격이 저렴했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면 소수의 교양 학점을 인정해 주는 제도였다.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나는 덜컥 어학연수를 신청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시각적 어려움을 다른 방법과 속도로 보완하고 채워줬던 특수학교에서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어서.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았던 사람들이 가득했던 곳이라서. 나에게 중심이 맞춰진 환경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서러웠던 것이었는지.




비장애인이 가득했던 필리핀 어학연수에서 나는 다시 장애인이 되었다. 넓은 공항에서 일행을 찾기 어려웠고 겨우 만난 일행들 틈에서 나는 장애인이었기에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다녔다. 삼삼오오 신입생들끼리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친해질 때도, 비행기 자리에 앉아 갈 때도, 이동을 할 때도 나는 인솔자 선생님과 다녀야 했다.


특별히 방 배정은 같은 특수교육과 학생 2명을 배치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주었다. 그런데 이때 당시 누군가에게 나의 장애에 대해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기에 나는 많이 미숙하고 서툴렀다. 자신감도 용기도 없었다. 지금에야 음식점의 메뉴판이 보이지 않으면 곧잘 읽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그땐 메뉴판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참 어렵고 창피했다.


같이 방을 쓰는 아이들은 나를 챙겨주려고 애썼다. 그런데 나는 새로 만난 비슷한 또래 아이들에게 내 모습과 내 장애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스스로 마음의 거리를 정해두고 벽을 쳤다. 그래서 양치를 하다 바닥에 칫솔을 떨어트려 찾지 못했을 때도 괜한 자존심으로 칫솔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지 못했다. 단체 생활을 했던 터라 물건을 사러 갈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었기에 나는 잃어버린 칫솔을 대신해 며칠을 손가락에 치약을 짜서 양치질을 했다. 참 바보 같고 안쓰럽기 짝이 없다. 지금도 물론 바닥에 무엇인가 떨어졌을 때 다른 사람에게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기가 살짝 망설여지긴 한다. 왜냐하면 잘 보이는 사람 기준에서는 바로 코앞에 떨어트려놓고 찾지 못하는 꼴이라니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과 마음을 내려놓기란 여전히 어렵지만 그 작은 행동 하나에 나라는 사람 전체가 모욕받고 부정당한다는 과잉 확대 해석은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여전히 한쪽 에어팟을 모르고 바닥에 떨어트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지만 이제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시선보다 물건을 찾아야 한다.라는 본능이 조금 더 우선시 되었으니 나름의 발전이라 생각한다.




대학에 오니 일반학교에서처럼 나는 다시 공부도 할 수 없었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에서는 독서확대기라는 보조공학기기를 통해 글씨를 크게 확대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주로 사용하던 탁상용 독서확대기는 24인치 18kg였기에 고정된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교는 각 강의마다 강의실을 이동해야 했고 그 무거운 것을 가지고 다닐 수도, 강의실마다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탁상용 독서확대기가 있을 리도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독서확대기를 통해 공부를 했기에 점자는 따로 사용하지 않았다. 시력을 주로 활용해 생활했기에 음성을 활용해 글자를 읽어주는 컴퓨터, 핸드폰,  보조공학기기도 사용할 수 없었다. 맨눈으로는 시중에 나와 있는 교재의 글씨는 전혀 읽을 수 없었고 그나마 당시 14 배율짜리 확대경을 구매해 작은 렌즈를 통해 한 글자 한 글자 글씨를 읽었지만 비장애인들에게 맞춰 나가는 강의 진도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1, 2학년 때는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해 강의 내용을 녹음했다. 사실 이 과정을 이해하고 흔쾌히 승낙해 주신 분은 많지 않았다. 다들 조금은 불편해하고 꺼려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모습이 담기고 기록되는 부분이니 조심스럽고 반갑지 않은 부분임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교수님들의 배려로 강의 내용은 녹음할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 쌓여가는 방대한 녹음 자료와 직강에서 오롯이 청각으로만 받아들였던 정보를 또다시 시간을 들여 처리하는 과정은 시간도 체력도 양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또다시 강의실에서 열심히 교재를 보며 필기를 하는 학생들 틈 속에서 멀뚱멀뚱 앉아 강의를 듣고 있는 내 모습에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그나마 전공과목은 관심도 높고 배우는 내용도 재밌어서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복수전공으로 신청한 국어교육과 강의는 타과생들도 많고 내용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대학교에서 그나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독서확대기가 있는 기숙사 내 방과 장애학생지원센터였다. 제한된 환경에서 벗어나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기 위해서 점자를 배워야 했다. 그런데 점자교육을 하는 기관의 교육 시간과 기간 그리고 거리의 여건도 내 상황과 환경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점자라는 것이 단기간 내에 배우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결정해야 했다.


학습매체를 일반글자(묵자)를 사용하던 것에서 점자를 배워 촉각 매체로 전환할 것인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학습을 할 때 어떤 감각을 많이 사용하고 적절하냐에 따라 학습매체가 묵자, 점자, 음성 등으로 나뉠 수 있다. 나는 제대로 잘 다룰 수 있는 학습매체가 분명하게 없었기에 이도저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지하게 휴학을 하고 재활 교육에  대한 생각을 1년 넘게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휴학하지 못했다. 이유는 가뜩이나 어렵고 힘든 대학 생활 가운데 휴학마저 해버리면 그나마 의지하며 함께 생활하던 대학 동기들과도 같은 수업을 들을 수 없으니. 그러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환경도 더 열약해짐으로.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고 점자를 배우지 못했다. 그 결과 나는 더욱더 제한된 환경 속에 나를 밀어 던지고 장애인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일반 글자를 보는 것도 점자를 읽는 것도 음성을 통해 듣는 것도 모두 다 미숙하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학습매체를 가질 것을 염두에 두고 지도한다. 특히 진행성 안질환을 가진 학생인 경우 현재 시력이 남아 있어 일반 글자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빠른 시기 내에 점자를 속히 익혀둘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만큼 점자는 능숙하게 읽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어릴수록 감각이 살아 있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진행성 안질환이니만큼 언제 급격히 시력이 떨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편견에 맞닥뜨린다. 그러나 물리적인 신체적 장애도 마음의 장애라는 장벽을 만드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 가장 두텁게 벽을 치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내가 다시 대학에 가서 장애인이 되었다고 느낀 것은 여건과 환경도 존재하지만 더 도약하고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도 크다. 이제 조금씩 조금씩 쌓아 올렸던 그 벽돌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 것이 나를 더 보호하고 지키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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