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수많은 비밀에 싸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비정상적인 뼈의 발달이었다. 외관적인 부분이나 기능적인 부분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고 불편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하루하루 살아갔다. 가끔 손이나 팔을 많이 사용하거나 힘을 썼을 때, 또 비가 오거나 기압이 낮아질 때 쑤시고 아픈 통증이 있었지만 참을만했다. 그러나 대학생 때부터 내게 찾아온 극심한 통증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못 견딜 정도로 손가락 통증이 처음 찾아온 것은 대학교 3학년 겨울이었다. 오른쪽 손가락이 퉁퉁 붓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계속 됐다. 그렇게 몇 주, 한 달 정도를 진통제와 소염제 등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한차례 극심한 통증을 겪고 한동안 잠잠하다가 대학교 4학년 2학기가 막 시작할 때쯤 통증은 더 크고 강렬하게 나를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내 오른손은 엄지손가락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손가락이 모두 다 울퉁불퉁 뼈가 변형되어 있었고 손가락 변형이 제일 심한 새끼손가락은 휘어져있었다. 그로 인해 기능적으로 주먹을 쥘 수 조차 없었고 뼈가 상당히 약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프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통증은 나의 일상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우선 손이 퉁퉁 부었고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통증을 느꼈다. 뼈가 썩어본 적은 없었지만 뼈가 썩는 느낌이었다. 밤이 되면 통증이 더 심해져 잠을 잘 수 없었고 겨우 잠이 들어도 또다시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매일밤 너무 아파서 엉엉 소리 내서 울 정도였다. 자주 사용하는 신체 부위인 손이 아프다 보니 작은 일상생활 하나하나에도 모두 다 어려움이 있었다.
머리를 감을 때도 양손을 사용할 수 없어 한 손으로 감았고 샴푸의 펌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아팠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에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했지만 볼펜을 쥐고 글씨를 쓸 때도 새끼손가락이 종이에 닿을 때마다 아파서 한 글자를 쓰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때도 키보드 자판을 칠 수가 없어 왼손으로만 타자를 쳤다. 사진동아리 출사를 나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도 손가락에 통증이 너무 극심해서 누를 수 없었다. 밥을 먹는 것도 바이올린을 하는 것도 심지어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는 것도 모든 것에 있어 우리의 손은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고 소중한 존재였다. 그저 평범했던 일상이 결코 평범했던 것이 아니라 감사했던 일이었다.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은 잡히지 않았다. 상태의 심각성이 더해지자 나는 대학병원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는 내 몸에 얽혀있던 비밀조각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옛날에는 변형된 내 뼈를 보고 퇴행성 관절염과 연골연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에겐 골종양이 있었다. 그것도 뼈 안에 종양이 생기는 병인 내연골종증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손가락이 퉁퉁 붓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뼈 안에 있는 종양의 크기가 커져서 내 뼈를 안에서부터 깨부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지금 내 손가락 뼈 안에는 종양으로 가득 차서 뼈의 두께가 계란 껍질처럼 얇아진 상태라고 했다. 그러니 외부에서 오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계속해서 미세골절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특히 새끼손가락은 악성종양, 즉 골육종이 의심되니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조직검사 결과 암이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니 뼈에 암이 생기는 경우에는 절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순식간에 어마무시한 말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상태가 제일 심각한 내 새끼손가락을 네 번째 손가락과 함께 묶어 붕대를 감아주셨다. 새끼손가락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네 번째 손가락이 지지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또 일반 진통제로는 통증이 잡히지 않기에 의사 선생님은 마약성 진통제도 처방해 주셨다. 매일밤 고통에 몸부림치고 이렇게 아플 바엔 진짜 죽는 게 낫겠다 싶었던 무시무시한 통증은 마약성진통제로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나를 괴롭히다가 점차 조금씩 잠잠해졌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다. 처음에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제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 하늘을 원망할 힘도 없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그래, 손가락 하나쯤 없어도 살 수 있지!
괜찮아!
비록 남들과는 다른 모습에 조금 더 주목을 받겠지만 새끼손가락이니만큼 옷소매로 가리거나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지 않을까 그리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으니까. 그렇지만 또 뒤따라 든 생각은 절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사람이 가장 고통을 느끼는 통증 중 높은 순위에 절단이 있었다. 순위권에는 불에 타는 고통 작열감과 아기를 낳을 때 느끼는 산통도 있었다. 절단을 했을 때 느끼는 통증은 감히 상상도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이 내 코앞에 닥쳐있었다. 늘 붙어있던 손가락이 잘려나간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손가락이 절단되어 허전해진 빈자리를 보기도 조금 겁이 났다. 그렇게 두려움을 안고 다독이며 조직검사 날짜를 잡았다.
뼈에서 조직을 떼내야 했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선 수술을 해야 했다. 부분마취로 수술 계획과 상담을 받았지만 수술 당일 결국 전신마취를 하고 조직을 떼냈다. 이번 수술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한편으로 담담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보호자 없이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결했고 처음 수술대에 올랐던 중학생 때는 울며불며 난리였는데 이제는 수술대에 누워 자기 자신에게 ‘괜찮아 괜찮아 다 잘될 거야’하고 안심도 시켜주고 애국가를 부를 정도로 딴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 내공이라면 내공. 두려움을 조금씩 마주하고 다스리는 법도 알게 되었다.
조직검사 결과는 다행히 양성종양이었다. 하지만 골종양이 존재하는 한 악성화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통증이 뒤따른다면 인공뼈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인공뼈 수술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으니 지금 내 손가락의 종양을 모두 제거하면 뼈가 없기 때문에 인공뼈를 넣거나 내 골반뼈를 잘라 넣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모든 방법이 결국 순탄하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몇 개월 동안 최고조에 달했던 통증이 점차 사라진 것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몇 년간 극심한 통증이 훑고 지나갔다. 2020년 봄에는 또다시 일반 진통제와 일반 병원에서 처방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진통제로도 통증이 잡히지 않아 결국 다시 대학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기도 했다.
통증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너무 고통스럽다. 그래도 절단되지 않고 내 손에 온전히 붙어 있는 손가락을 보면 감사한 생각이 든다. 비록 손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고 연약하기 그지없지만 이 정도면 병이 있어도 예쁘고 얌전하게 온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는 아기처럼 보호가 필요한 오른손 대신 그만큼 힘이 세고 늠름한 왼손이 있으니까. 겨울철이면 차가운 오른손을 위해 핫팩을 기꺼이 양보하고 힘든 일이나 무거운 짐은 언제든 번쩍번쩍 대신 들어주는 든든하고 어른스러운 내 왼손. 나는 이렇게 내 양손에 나름의 애정을 가득 담아 보듬어준다. 지금도 키보드의 자판을 열손가락으로 협동하여 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하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찾아오는 손가락 통증에 긴장감과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여전히 절단에 대한 두려움은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통증에 대한 고통도 못 견딜 정도로 너무 무섭고 괴롭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객관적이고 씩씩하게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다. 그 마음의 준비마저 되어있지 않으면 난 분명 쉽게 무너져 내릴게 뻔하니까. 왜냐하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도 내게 몰아닥치는 일들이 결코 바로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그러니 그만큼 충분히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필요성이 있다.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전신 정밀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 몸에는 손가락을 제외하고도 팔과 갈비뼈에 골종양이 있었다. 심지어 오른쪽 날개뼈는 온통 골종양으로 가득해 다 변형이 되어 있었다. 상태가 심각하여 날개뼈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 그럼 날개뼈도 인공뼈로 대체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아직까진 날개뼈를 대체할 인공뼈는 없다고 하셨다. 날개뼈가 없어도 괜찮다고는 하는데 날개뼈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직은 좀 이상하다.
나중에 골육종이 발생한다면 상당히 취약한 뼈상태이지만 사전에 예방차원으로 대공사를 치르는 것은 지금은 잠시 미뤄두고 싶다. 그 대신 평상시에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건강한 마음과 정신을 만들고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취할 수 있는 적극적인 치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따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2년에 한 번씩 전신 뼈스캔 검사를 하고 전신 MRI를 찍는다. 병을 발견하더라도 조기에 발견하여 손이라도 쓸 수 있기 위함이다. 또 평소와 다른 몸의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병원을 바로 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광고에도 나오지 않는가. 요즘은 무병장수가 아니라 유병장수라고.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고 존재하기 위해서 이미 내 몸의 DNA설계지도는 내연골종증이라는 필연적인 계획이 있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지금 이 상태에서 얌전히 그 증식을 멈춰줬으면. 그러면 평생 동고동락하며 잘 지낼 테니. 더 이상 내 뼈의 자리를 넘보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도 그저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내 열손가락이다. 오래오래 아니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은 열손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