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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푸치 May 03. 2024

우물 안 개구리의 대학생활

나는 대학교 4년 내내 장애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형성된 학생자치기구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이 자치기구는 장애인 대학생과 비장애인 대학생이 함께 연합하여 장애 복지에 대해 힘쓰고 친목도 도모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임원단으로 활동하며 장애학생들의 실태를 더 들여다볼 수 있었고 장애 학생들의 대학 생활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또다시 느꼈다.


나는 잔존시력이 남아있어 그나마 보조공학기기를 이용하면 전공서적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제한된 장소에서 국한되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잔존시력을 활용할 수 없어 점자를 사용해야 하는 맹 학생의 경우는 점자정보단말기라고 하는 이동이 가능한 컴퓨터와 비슷한 기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점자가 능숙하다면 보조공학을 이용해 강의실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선 전공서적이 파일로 존재해야 했다. 더군다나 그림이나 표 같은 자료는 점자로 표현하거나 구현해 내기 어렵기 때문에 그림은 그림설명이 덧붙혀지고 표는 줄글로 풀어쓴 내용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전공서적의 저작권도 허락받아야 했고 파일마저 구할 수 없는 전공서적인 경우는 복지관이나 타이핑 봉사자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관에 신청을 하고 의뢰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고 기간도 오래 걸렸다. 그래서 몇몇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은 교재를 구하기가 어려워 학기 중간에 받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청각장애 학생들은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따라가기가 어려워 전문 속기사와 컴퓨터로 연결해 속기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청각장애 학생이 전문 속기사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 강의는 제한적이었고 속기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강의는 장애학생도우미학생들이 직접 강의 내용을 타이핑해 지원을 해주었다. 그러나 온전한 지원을 받기란 어려운 점이 많았다. 또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 중에는 듣고 싶은 강의가 있어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강의실이라면 강의를 수강할 수 없었다.




특수교육과를 전공하고 나 또한 시각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 내가 돌아보지 못한 세계가 가득했다. 어느 날은 청각장애가 있는 동기와 길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빠르게 달려왔다. 나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동기는 오토바이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오히려 걸음 진행 방향을 오토바이가 오는 방향으로 옮겨 걸었다. 순간 아찔했다. 오토바이가 동기의 바로 옆으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오토바이의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어도 바로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나는 가끔 암점에 사물이 가려지거나 눈부심 혹은 어두울 때 바로 코앞에 오는 사람이나 물건 등을 보지 못하고 부딪힐 때가 있다. 장애 정도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청각장애인들은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장애도 성격도 각 저마다 다르기에 단일적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에서 만난 청각장애인 중에는 사람들과 수다 떨기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음정, 박자 다 틀리면서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도 엄청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대학교에서는 사고, 뇌병변, 선천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지체장애인이 된 분들도 많았다. 누군가는 첨족보행(발끝을 세워 걷는 걸음, 일명 까치발)을 했고 누군가는 팔, 다리가 절단되어 의수, 의족을 착용했다. 또 누군가는 전동휠체어를 탔다. 그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하며 나는 그동안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곳까지 살펴보고 돌아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아마 지난날의 실수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더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과대표였다. 갓 입학한 신입생들과 만나는 대면식을 진행해야 했고 인원이 꽤 많았기에 대인원이 수용될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야 했다. 투표를 통해 학교 근처에 있는 음식점 한 곳이 선정되었고 예약을 했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대학교 내내 그 음식점에 2층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대인원이 예약을 했던 터라 사장님은 2층을 통째로 우리에게 대여해 준 것이다. 그런데 2층은 계단이었고 1층과는 달리 자리도 모두 좌식이었다. 문제는 갓 복학한 선배 중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이 있었다. 그 선배는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들과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휠체어가 이용할 수 없는 자리로 배정이 되자 참여가 어렵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장애 유형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장애인으로서 그리고 특수교육과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선배에게 배려되지 못한 환경에 정말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다행히 남자 선배들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옮겨 2층에 올라 함께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내게 큰 깨달음과 깊은 반성의 시간으로 남았다.


그 뒤로는 작은 문턱, 좌식으로 앉아야 하는 자리, 계단으로밖에 출입이 안 되는 장소,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휠체어 규격에 어긋난 곳 등이 눈에 속속히 들어왔다. 몇 년 전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의점에 관한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수많은 편의점이 존재했지만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의점은 1% 정도에 불과했다. 휠체어가 지나가기 위해선 공간이 충분히 넓어야 하는데 물건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또 입구에는 턱이나 계단이 없거나 경사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했지만 이를 충족하는 곳은 많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휠체어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정말 제한적이었다. 어느 날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타과 선배가 ATM기계를 이용하려고 했으나 휠체어를 타면 화면에 시선이 맞지 않아 사용을 하지 못하는 것을 봤다. 충격이었다. 나는 글씨가 보이지 않아 키오스크나 ATM기계를 사용할 때 어려움이 있는데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눈높이가 맞지 않아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 선배는 바로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ATM 기계를 지나쳐 작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ATM기계를 이용했다. 이렇게 작은 배려와 다른 방법이 제공된다면 장애인들도 조금 더 쉽게 접근하여 생활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조금 다른 방법과 작은 배려가 닿지 못하는 곳이 많은듯하다. 예산이나 디자인, 공급과 수요 여부도 영향이 있겠지만 아마 상당수는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에,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곳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도 영향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랬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대학 내내 장애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활동했던 경험이 조금 더 많은 것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임원단으로 활동하면서 학교에 있는 자판기를 모조리 조사했다. 그리고  각각에 해당하는 음료 이름과 가격을 점자로 찍어 자판기 버튼에 점자스티커를 붙였다. 학교에 있는 자판기는 꽤나 많았고 바뀌는 메뉴도 제법 있었다. 학교 강의를 마치고 늦은 저녁에 임원단 동기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수고스럽긴 했지만 이 작은 배려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인 선택권을 가지게 된 시각장애인을 생각하면 참 의미 있고 뿌듯했다. 또 우리는 학교 곳곳에 있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살펴보며 파손된 곳이 있는지, 잘못 설치되거나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있는지 샅샅이 조사하고 유도블록이 잘 설치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건의도 했다. 나는 유도블록이 없어도 혼자 보행이 가능한 저시력이기에 나 역시 유도블록을 관심 있게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이 활동을 한 뒤로 바라보게 된 세상엔 엉망인 유도블록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 거리를 둘러보면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 곳이 거의 없이 심각했다. 이 작은 블록이 누군가에게는 눈이나 다름없는 걸 생각하면 애꿎은 예산 사용으로 땅을 뒤엎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은 나도 내 세계가 너무나도 좁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나도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만의 하늘을 바라보며 그 하늘만이 하늘이라는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고 버려야 한다. 함께 교류하며 서로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함을 느낀다. 나의 글이 조금이나마 우물 안을 빠져나올 수 있는 작은 동아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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