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비싼 설거지

그날의 협상



[오늘의 배틀]
"엄마, 보이즈 플래닛은 제대로 길게 못 봤어. 근데 경기가 너무 재미있었어! 친구들이 다 두산 유니폼 산대. 나도 하나 사주면 안 돼?"
"가격이 비쌀 것 같은데… 너 용돈에서 사기로 했고, 엄마가 조금 보태주는 걸로 했잖아."
"근데 친구들은 다 부모님이 사주신대. 나도 꼭 필요해."


이미 이 시점에서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다 부모님이 사주신대'라는 황금 카드 앞에서 말이다.

"그럼 아빠랑 이야기해봐."
"안 돼, 아빠는 절대 허락 안 해주실 거야."
"앞으로 이런 건 아빠랑 상의하기로 했어. 그리고 사실 엄마는 저녁 늦게 끝나는 야구 경기가 염려돼…"
"이번에 갔다 왔는데 괜찮았어."
"우선 아빠랑 상의해보고 주말까지 알려줄게."
"광복절 있어서 빨리 사야 배송 올 텐데…"

시간 압박까지... ㅡㅡ;

이 아이, 언제 이런 협상 기술을 배웠을까?



이틀 간의 심리전 & 나의 항복
그날 이후 딸은 틈만 나면 나를 불러 세워 "언제 결정할 거냐"고 물었다.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는 집요함.
이 끈기를 공부에만 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엄마, 생각해봤어?" 지속되는 공격에 나는 서서히 무너졌다.
다음날 저녁, 런닝화 끈을 묶으며 나는 백기를 들었다.

"엄마 나가서 뛰고 올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테니, 너는 저녁 설거지 좀 해줄래?"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 역대급 비싼 설거지를 시켰다.
10분도 안 걸리는 설거지에 145,000원이라니…

그냥 내가 하는 게 훨씬 편한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완패한 엄마의 변명 아닌 변명]
방학 동안 지키기로 세운 계획 중 주 3회 수영만 겨우 지켰지만,
그래도 매일 유튜브 보며 스트레칭하는 습관은 길렀으니그것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번 협상에서 나는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의 설득 논리를 듣고, 필요한 이유를 물었으며, 즉답 대신 결정을 미루며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아이는 결국 비싼 유니폼을 얻었고,
나는 "앞으로 이런 건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약속만 받아냈다.


무더운 여름 방학은 분명 ‘엄마 잡는 방학’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름 즐거웠을 것이고,
나는 글쎄.., 아이 키우는 생활이 원래 이런 건가 보다.


매일 저녁 뛰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비워낸다.
내 마음만 잘 지켜내면 되겠지, 이러면서...
2학기에는 정말로 스스로 해결하길 바라며,
오늘도 런닝화 끈을 단단히 묶는다.
다음 협상에서는 꼭, 조금은 단단해진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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