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시골에서 20년 가까이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신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그 시골에서 드디어 벗어나는구나 안녕을 외쳤었다. 하지만 아파트에 사시게 되면서 아빠는 그 시골집에 애착을 가지게 되신 듯 보였다. 거기서 살 때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그 땅에 무엇을 못해서 안달이시다. 밭도 열심히 가꾸시고 나무도 매해 심고 계시는데 더 이상 심을 곳이 없겠다 싶은 순간 아빠는 포도나무를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포도나무를 어디에다가 심을 거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뼈대만 남아 있는 막사 중 가장 작은 막사에 심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되나 싶었는데 또 그게 막사의 뼈대를 따라 올라가면서 자라기 시작했다. 아빠는 틈만 나면 포도나무를 보러 가셨다. 뻗어 나가는 포도나무를 뼈대에 묵어주고, 물도 주고, 잡초도 없애고, 유튜브를 보고 공부도 하셨다. 얼마나 바쁘신지 엄마나 친척어른들이 거기서 살 때 안 그러고 왜 이제 열심히냐고 하실 정도였다.
그렇게 열심히 관리한 포도나무에는 정말 신기하게도 포도가 주렁주렁 열였었다. 아빠는 정말 신이 나셨었다. 우리는 아빠 대단하다고 포도주도 담그자며 같이 신나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동네에 까마귀들이었다. 까마귀들이 포도를 건드리는 것이다. 먹지도 않으면서 콕콕 쪼아 포도를 떨어트려 놓기도 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으니 아빠는 까마귀들 욕하며 온갖 수를 쓰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람에 흔들 거며 햇빛에 반짝이는 연을 달아두었는데 까마귀들이 좀 살펴보고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되자 연을 무시했다. 정말 똑똑한 까마귀들이다. 아빠가 직접 쫓아내기도 하셨는데 하루종일 거기 있을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가 있으면 전봇대에 앉아 까까거리며 있다가 아빠가 자리를 뜨면 포도를 또 떨어트렸다. 여러 방법을 알아보다가 결국 그물을 치기로 결심하셨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포도를 원래는 막사로 사용한 곳에다가 심으신 거였다.
작은 막사였지만 높아서 그물을 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더운 여름날 나와 남편, 아빠, 엄마까지 모여 끙끙거리며 그물을 올려 쳐야 했다. 게다가 이미 포도나무 가지가 있어서 그물이 가지에 걸려 작업은 더뎠다. 우리는 모두 까마귀를 욕하며 어찌어찌 그물을 쳐냈다. 엉성하게나마 그물을 쳐두니 정말 까마귀는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아빠는 아주 흡족해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아마 아빠는 절대 도시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