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옥
코로나를 피해 집에서만 놀던 시절, 아들과 유튜브를 보는데 식충식물에 관한 영상이 나왔었다. 식충식물들이 노래를 하면서 어떻게 곤충들을 사냥하는지가 나왔는데 아들이 엄청 신기해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아들은 식물이 움직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다 뾰족뾰족한 잎들이 괴물의 입처럼 보였고, 이파리가 닫히는 영상에서는 항상 움찔하면서 주먹을 쥐며 보고 있었다. 신기해서 보고 싶지만 무서웠던 것 같다.
한 동안 그 영상만 맨날 봤었는데 말도 잘하지 못하면서 할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할 때 식충식물에 관해 아들이 열변을 토했었다. 특히 파리지옥을 외치며 이파리가 닫히는 장면을 손으로 열심히 보여드렸다. 상당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파리지옥을 말할 때는 제법 또박또박했다. 게다가 꼬물꼬물 한 손이 펼쳤다 닫혔다 하는 게 얼마나 귀엽던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길로 파리지옥을 찾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파리지옥을 사실 수 없었다. 파리지옥은 품절이었다. 이 독특한 식물은 코로나 시절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인기템이었던 것이다.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하루종일 영상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물론 평소에도 식충식물들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것 같다.
그래도 끝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식충식물을 구하셨었다. 장에 나가셨다가 발견을 하시고는 바로 사셨다고 한다. 파리지옥을 사신 날, 영상통화로 구해놨다며 웃으시며 의기양양해하시던 할아버지는 얼른 놀러 오라고 파리를 잡아두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같이 파리지옥에게 파리를 먹여주자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파리지옥을 처음 본 날, 아들과 할아버지는 그 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안겨 한 참을 가만히 파리지옥을 보기도 하고, 면봉으로 파리지옥을 건드려 잎을 닫아보기도 하고, 정말 어디서 파리를 잡아오셔서 파리지옥에게 먹이기도 했다! 좀 익숙해져 겁이 없어진 아들은 대범하게 직접 손을 넣어 잎을 닫아보기도 했다.
(잡아둔 두 마리의 파리를 웃으며 보여주시던 할아버지의 미소가 아직도 생각난다)
얼마 안 가 그 파리지옥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잊을만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파리지옥을 사주신다. 얼마 전에도 파리지옥이 무척 싱싱해서 하나 샀다며 아들에게 선물해 주셨다. 아들은 나름 열심히 물을 주며 키우고 있다. 예전처럼 마구 만지며 괴롭히지 않고 썩은 이파리는 가위로 잘라내주고 닫힌 이파리가 있다면 벌레를 잡았는지 확인한다. 이제는 아들이 가장 열심히 키우고 있는 아들의 최애 식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