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니일러 Jun 03. 2024

나의 부케가 되어 준 꽃

수국




 나는 나의 결혼식을 후회하곤 한다. 결혼식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치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직후였다. 8년 된 남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사귈 거라고 부모님들께 말씀드린다는 게 상견례가 되어버렸었다. 마지막 남은 아들을 얼른 장가보내버리고 싶어 하신 어머님과 아버님의 추친력은 엄청났는데, 믿기 힘들게도 그 상견례가 있고 3주 뒤에 결혼식을 올렸다. 

(속도위반은 아니었다)



 그 불가능의 준비가 가능했던 이유는 남편이 웨딩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모든 준비를 도맡아 했고 나에게는 와서 드레스와 부케, 청첩장만 고르라고 했다. 크게 결혼식에 낭만과 생각이 없던 나는 그냥 흘러가는 데로 그 모든 상황을 놔두었다. 드레스는 3벌 입어보고 골랐고 청첩장은 브로마이드를 두 번 넘겨 나온 것으로 했으며, 부케는 청첩장에 그려진 그림이 파란 꽃이란 이유로 수국으로 결정해 버렸다. 




 글로 적으니 굉장히 성의가 없어 보여 오해를 살 것 같아 말하지만 싫은 결혼을 억지로 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결혼을 해도 될 믿을 만한 남자라는 생각을 가졌었고, 나의 시부모님들은 나를 어여뻐해 주셨으며, 급한 결혼식 준비는 남편과 남편의 직장동료분들 덕분에 깔끔하고 무난하게 잘 치러졌다.






 나름 어쩌어찌 잘 넘긴 결혼식을 후회하게 된 건 친구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코로나에 결혼식을 올린 친구는 하객이 많이 올 수 없음에도 세심하게 모든 걸 신경 썼다. 나는 그걸 청첩장만 받아보고 알 수 있었다. 말린 꽃으로 장식한 청첩장에는 예쁜 글씨체로 안내가 적혀있었고 은은하게 향기도 났다. 결혼식에서의 부케는 은은한 분홍빛과 보랏빛이 도는 꽃들로 드레스와도 예식장과도 잘 어울렸다. 




 나의 친구는 올 수 없는 하객들이 많아 청첩장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고 했다. 예식장의 꽃들은 부케를 고르고 난 뒤 맞춰서 장식을 골랐다고 했다. 나와의 결혼식과는 너무 달랐다. 시간이 촉박했다지만 청첩장과 부케를 그렇게 고른 건 정말 잘 못 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 했어야만 했다. 이 아름다운 꽃은 나에게 아쉬운 기억으로 남은 꽃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이 아쉬움을 덮을 수 있는 좋은 기억이 수국에 더해지길 바라본다.


 



@greeny_illust

 



이전 03화 아들의 최애 식충식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