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트리 그로브
다시는 하기 싫은 게 있다면 장거리 연애다.
해외취업을 하고 싶었던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기회를 얻어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살게 되었다.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과 첫 해외생활의 긴장감이 뒤섞여 가슴이 두근두근했었다. 다행히 일이 적성에 잘 맞아 즐겁게 일했고 음식도 딱 맞았으며 동료들과도 잘 어울려 다니며 신나는 나날을 보냈었다.
내가 즐거운 해외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슬펐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였다. 장거리 연애는 정말 쉽지 않았다. 전화로 몇 시간을 싸우기도 하고, 사소한 걸로 섭섭했던 게 볼 수 없으니 오래가기도 했고, 이상한 걸로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때 캡처해 둔 카톡을 보면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다... )
남자친구는 딱 한 번 싱가포르로 왔었는데, 오랜만에 서로를 직접 본 우리는 조금 어색해했다. 조금은 달라진 모습과 오랜만에 맞잡은 손,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새로운 물건과 옷차림, 전화로 열심히 싸웠던 기억과 충돌하는 반가움. 분명 잘 통하고 서로가 즐겁던 우리였는데 좀 떨어져 있었다고 어색해지다니... 그런 상황에 보러 간 것이 '슈퍼트리 그로브'공연이었다.
하루종일 더웠지만 저녁바람은 시원했고 우리는 누워서 공연을 관람했다. 슈퍼트리들은 노래에 맞춰 반짝였는데 그 모습은 사방에서 반딧불들이 반짝이며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서로 어색했던 것도 잊고 함께 공연을 보며 즐거워했다. 우리가 아는 한국노래들도 나와서 같이 흥얼거렸다. 노래가 끝나도 나무들은 계속 반짝였는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같이 누워서 바라보았다. 우린 그제야 어떤 어색함을 없애고 예전처럼 이야기하며 함께할 수 있었다.
비록 진짜 나무는 아니었지만 한 여름밤의 꿈같은 나무였다. 우리는 어색함을 풀고 헤어졌고 전보다는 덜 싸우며 서로를 기다렸다. 그때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을 두고 후회하며 아쉬워했을 거다. 장거리연애가 힘들어 위기도 있었지만 우리는 어찌어찌 잘 해내었다. 싱가포르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준 남편에게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