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와 감나무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국어시간 때 '내나무'라는 것이 나왔었다. 교과서에 짧게 나와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였는데 옛 조상님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나무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내나무 인데,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기억에 의하면 소나무는 아이가 커서 할아버지가 되어 죽을 때 관으로 쓰고, 오동나무는 여자아이가 시집을 갈 때 장을 짠다고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가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해준 이 이야기를 듣고 아빠가 내나무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3남매 모두에게 말이다. 아빠는 며칠 후에 나무 파는 곳에서 우리에게 어울리는 나무를 사 오셨다. 나와 여동생을 생각하며 벚꽃나무를 남동생을 생각하며 감나무를 사 오셨다. 여동생과 나는 두 개의 어린 묘목을 보며 누가 어느 걸 내나무로 할 건지를 두고 한참을 옥신각신 했었다. (별거 아닌 거로 맨 날 싸웠던 시기...) 아빠는 두 벚꽃나무를 나란히 집 앞에 심어주셨다. 남동생의 감나무는 벚꽃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심어주셨다. 초등학생인 나의 허리춤 정도밖에 오지 않던, 그냥 똑 부러트리면 끝일 것 같던 작은 막대기. 그 작고 어린 묘목들을 보며 이게 과연 자라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3남매는 무럭무럭 자랐고 우리의 내나무들도 정말 쑥쑥 잘 자랐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 그 시골집에서 더 이상 살지 않게 되었을 때, 나와 여동생의 내나무는 하늘 높이 솟아 봄마다 흐드러지게 벚꽃을 피워 냈다. 남동생의 감나무는 가을마다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는지 매해 감을 여기저기 나눠주며 먹었다.
이제 그 시골집에서는 우리 가족 아무도 살지 않지만 팔지 않고 두고 있다. 봄마다 엄마의 카톡 프로필은 나와 여동생의 내나무 사진이 꼭 올라온다. 작년 가을에도 남동생의 나무에서 열린 감을 보내주셔서 실컷 먹었다. 비록 전통과는 조금 다른 벚꽃나무와 감나무이지만 우리에겐 내나무가 있다.
나의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아들의 내나무를 만들어 줄 계획이다. 아들의 손을 잡고 어린 묘목을 쥐어주며 이건 내나무라고 너와 함께 클 거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나의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