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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봉조사 이상은 Jul 08. 2024

요새 달리기가 대세지만, 나는 떠나련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요새 정말 달리기가 대세인 듯하다.


 인터넷상에서 달리기에 대한 노출이 확실히 늘었다는 느낌이 든다. 기안 84가 결정적이었던 듯도 하고, 다양한 콘텐츠와 러닝 인플루언서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봐도 러닝 크루의 참여 인원 수가 확연히 늘은 것이 확인된다. 어쨌든 건강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라톤 대회에 대한 열기로도 이어진다. 최근 2025 서울마라톤, 2024 서울레이스, 2024 춘천마라톤까지 다들 신청 접수를 못했다고 난리다. 춘천마라톤은 워낙 역사가 오래된 훌륭한 대회이지만, 아무래도 지방인지라 접수를 못할 수준까지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서버 폭발에 신청을 못한 러너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들의 운동으로 대표되던 마라톤은 정말 옛말이다. 


 6개월째 달리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확진 때 말고는 6일을 연속으로 달리지 않는 적도 없는데, 이젠 너무 익숙하다. 내가 러너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원을 중단하고 개별 재활을 해도 그다지 차도가 없다. 1km는커녕 500m도 달리지 못하고 있다. 나아지지 않는 몸상태는 달리기 글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렸다. 사실 조금 차도가 있는 것 같았고, 긍정적인 생각을 위해 달리기에 대한 연재도 준비해 봤지만, 무엇보다도 '달리기를 못하는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해서 감정을 덜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한 글을 쓰고 싶지가 않다. 


멈춰버린 2024년의 기록, 그리고 그나마 1킬로라도 달렸던 6월의 어느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다는 거다. 2~3킬로는 걸어서 출퇴근하고, 아이들과도 잘 뛰어놀아줄 정도로 건강해졌다. 사실 몸상태가 지금보다 더욱 최악이었을 때는 지금의 상태라도 소원할 정도였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한편으로 후회를 멈출 수 없다.


"왜 조금 더 기분 좋게 달리지 못했을까?"

"왜 즐기며 달리지 않았을까?"

"왜 기록에 집착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운동의 소질이 전혀 없었다. 다 큰 성인이 된 이후 몰입하게 된 달리기가 신기했고, 이게 나의 정체성인줄로 착각했다. 나는 몸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더 쉬어가며 달렸어야 했다.


 '왜' 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인생의 의미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고 이야기는 하는 빅터 프랭클의 명작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니체의 명언을 빌려 반복해서 주장한다. 특히 사람은 내면의 두 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한다.


 매일 밤 달리 던 내가, 늦게까지 글을 쓰고 연구하는 것으로 삶의 모드를 바꾸었다. 그러니 인생의 새로운 길이 생기게 되었다. 올해 조금씩이나마 강의도 나가고 있으며, 벌써 학술지 1편을 써서 투고했고, 앞으로 연말까지 2개 정도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웃프지만 지금의 상황을 기회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고자 한다. 그래, 나는 차라리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이게 내 인생의 의미이다.



 2024년 올해 상반기가 끝나고 결심이 들었다. 정말 완전히 잊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어느 순간이 되면 지금의 아픈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다시 달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지금처럼 달리기가 대세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뭐, 나 혼자만 달리고 있어도 상관없다. 


 이제 어떤 상황도 견뎌 낼 수 있다. 가능성이 없는 치료보다는 내가 앞으로 살아야 될 의미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이 계기를 통해 달리는 나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더욱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세상의 모든 러너들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달리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이제, 나는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달리기를 떠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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