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영산강 그리고 한강

작가의 시점

by 하늬바람

(내 맘대로 문학기행)

* 가을날 영산강 그리고 한강 *

- 작가의 시점



춘추 (春秋). . .

봄과 가을이라는 단어입니다.

공자는 "춘추"라는 역사서를 썼는데 여기서부터 '춘추' 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 역사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르신의 연세를 물어볼 때

“아버님 춘추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곤 하지요.


계절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지나간 시간을 그리고 역사를 가름하는 잣대로 사용됩니다.



며칠 전에는 봄에 달렸던 영산강 길을 자전거로 다시 만났습니다.

봄날 그땐 벚꽃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변해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모습도 이러하겠죠. 무엇이, 어떤 시간이 더 아름다운지, 의미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시간이 흐른 겁니다.


봄은 봄대로 아름답고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답습니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올 가을 단풍이 눈부신 이유는 여름이 너무 더웠기 때문이랍니다. 여름과 겨울은 목적지라는 느낌이지만, 봄과 가을은 변화의 과정이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공자님도 역사를 춘추라고 이야기했겠죠.

그리고 어제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서재에서 모두 빼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강’님을 시인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설도 쓴다는 걸 알았지요.


제가 처음 한강님의 책으로 읽었던 작가님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 나온 시

"새벽에 들은 노래3" 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 . .

"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


처음 읽었을 때처럼 다시 또 이 시가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우리 모두 잊혀지지 않는 걸 하나씩은 안고 삽니다. 어떨 때는 잊히는 게 더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잔혹합니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무상한 것도 없지만 어떤 때는 그 일상이나 기억이 이 시에서처럼 마음속 깊이 피 흘리며 견디어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올여름엔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면서 4.3 항쟁을 만났었고, 이번 영산강 자전거 길에서는 5.18을 생각했었는데, 그 사건들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소식을 듣게 되다니....

너무나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영산강은 전남 담양댐에서 시작하여 장성 황룡강이 합류하고, 광주로 흘러가 나주를 거쳐 목포바다로 나가는 물줄기입니다.

고대부터 먹고살 수 있는 생활권이 강 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겁니다.

( 작년 가을 영산강 자전거길 - 담양 관방제림 지나가는 중에 찍은 사진)


영산강 자전거 길은 그 물줄기와 도시를 지나쳐 가는 여정입니다. 한강 작가님의 책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된 5.18 민중항쟁의 주요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도 이 지역들이었습니다.


담양과 장성에는 광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진압군의 바리케이드가 처지게 되고, 광주에서는 항쟁과 무자비한 진압이 일어났습니다. 나주에는 광주에서 잠시 물러난 진압군이 주둔하다가, 무고한 시민들이 타고 광주로 가거나 나오는 버스들에 무차별 총격이 가해져 많은 사상자들이 나온 곳입니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인 한림원에서 수상 선정 이유에 나오는 ' 역사의 트라우마를 직시하며'라는 문장과 '시(詩) 적인 산문'이라는 표현이 제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한국이라는 개별 특수성이 이렇게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류애, 자유와 평등, 불의에 대한 저항, 민주주의 와 같은 보편적 가치도 있지만 인간의 연약함과 폭력성이라는 보편성 또한 존재합니다.

아마 위원회는 한강 작가님 책의 선정이유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건 끊임없이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주 속의 지구,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이라는 보편성과 제주라는 특수성, 이렇게 말입니다.



다들 한강님의 책 내용이나 배경 등 등에 대해서는 많이 아시고 들었을 것이니 저는 제가 느낀 독특한 점만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번에 밤새서 다시 리뷰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의 시점에 대한 겁니다.

한강 작가님은 이 시점을 자유자재로 잘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세 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연결하면 전체로 읽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채식주의자’는 남편의 시각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점입니다.

세 번째는 관찰자 시점인데 주인공은 ‘언니’가 됩니다. 제일 중요한 주인공의 시점은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내면의 세계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변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 모호함과 궁금함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여섯 명의 각자의 시점과 주인공이 나옵니다.

즉 1인칭 내지는 2인칭 시점인데 그중에는 망자의 시점도 있습니다.

그게 독자인 저에게는 더 공감과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가장 최근 책 “작별하지 않는다'는 철저히 '나"인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초지일관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소년이 온다'와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소년.. “ 책을 쓰고 난 자신의 모습을 1인칭 화자로 해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5.18과 4.3이라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엮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시점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나 연극은 기본적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독자가 그 안에서 연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가끔 중간에 1인칭이나 전지적 시점을 삽입하는 특이한 경우는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관객의 입장인 3인칭 시점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관찰자인 관객이 될 수밖에 없는 영상보다 책이 뇌를 더 활성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는 한 인간으로서 어떤 시점을 가지고 사는 걸까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만 세상을 보게 되면 독단에 빠지거나 오류투성이. 공감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고 관찰자 시점으로만 살아간다면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삶이 되는 거겠죠. 자신의 모습을 주관화 시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객관화도 시켜보고,문학처럼 시점을 바꿔서 여러 방향에서 잘 살펴보면 더 좋은 사고와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에 외국 작가 책들을 사서 보곤 했는데, 졔가 정말 소중하게 읽은 책이 노벨상을 타게 되니 저에게는 너무나 큰 영광이고, 게다가 원작이 한글로 써진 우리나라 책이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쁩니다.


원서로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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