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슈만에게 배운 용기
며칠 전, 동종업계에 있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나의 마음을 진동시킨 대화를 반추하며 글을 시작하고 싶다.
동료의 스승님께서 해주신 조언으로 ,
“음악을 하지 못하면 죽는 애들이 있어.
아직까지 이 업계에 남아있다는 건, 음악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애들이라는 뜻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왜 나는 여전히 이 세계에 남아 있는 걸까.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은 비단 음악가의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러한 존재를 품고 살아가지 않는가? 거창한 꿈이 아니어도 괜찮다.
마음 한가운데 꺼지지 않는 불씨말이다.
클라라 슈만
그녀에게 '음악'이란 바로 그런 불씨였다. 그녀는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매스컴에도 종종 등장하며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각광받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 피아니스트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본 클라라는 단순히 '비운의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다.
클라라 슈만은 뛰어난 성악가인 어머니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에크의 딸로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클라라의 부모님은 어린 시절 이혼하게 되고, 클라라는 아버지인 비에크를 따라 연주여행을 다니게 된다. 그러며 피아노, 바이올린, 화성학과 음악이론 등 다방면의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녀는 9살에 처음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에서 연주를 했고 11살에 정식 솔리스트로 데뷔무대에 서게 되었다고 한다. 파가니니, 리스트, 멘델스존과 같은 거장들에게도 칭찬받을 정도로 그녀의 실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작곡활동에도 열심히였다고 한다. (참고: 파리와 런던의 연주회를 중심으로 (2008년 1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음악학부 김연미)
16세 때 자신의 피아노협주곡 a단조(op.7)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슈만의 피아노협주곡만큼이나 아름답고 서정적인 협주곡으로 굉장히 애정하는 곡 중 하나이다.
그러다 로베르트 슈만을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아버지 비에크는 유망한 음악가인 클라라와 그에 비해 유명하지 않은 로베르트와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부모이기는 자식 없다는 말이 있듯, 클라라는 로버트 슈만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로버트 슈만의 정신이상과 자살시도, 8명의 자식 중 4명을 먼저 떠나보냄, 절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의 관계악화는 클라라 슈만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한때 가정과 아이들에 집중하며 음악가로서의 삶과는 멀어졌지만, 로버트가 세상을 떠난 뒤 클라라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작곡을 시작했다. 남편의 작품들을 편곡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연주회를 열었다.
자신의 언어로 사랑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로베르트슈만을 만나기 전에도 클라라는 이미 음악가의 삶을 살고 있었고, 로베르트와의 결혼 생활 중에도 두 사람은 단순한 애정을 넘어 서로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음악적 동반자였다. 그녀는 로베르트의 음악세계를 가장 깊이 이해한 연주자였고 그는 그녀의 연주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리고 로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클라라는 여전히 무대에 올랐고 새로운 곡을 작곡했다.
어쩌면 그녀야말로 '음악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가 짓누르더라도,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을 수밖에 없는 운명.
뿐만 아니라, 육아와 현실에 쫓겨 살다 다시 음악가로서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결정한 순간엔 세상의 시선과 생계 그리고 불안함까지 짊어져야 했을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 포기한 꿈과 염원이 있다면, 클라라 슈만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속 작은 불씨를 잠시라도 떠올려보길 바란다. 그리고 음악 속에서 현명한 혜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사타 카네-메이슨(Isata Kanneh-Mason)의 클라라 슈만 앨범을 추천한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7과 3개의 로망스 Op.11은 클라라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온전한 예술가였던 시절의 음악으로, 이사타의 연주는 그 시대의 낭만적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음악 속에 숨은 의지와 결단의 기운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또한 스케르초 2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또한 놀랍다. 당시 남성적/여성적이라는 이분법으로 음악을 나누던 편협한 편견들을 풍자하고 가볍게 뛰어넘는 듯한 곡이다. 이사타는 영국 노팅엄 태생 피아니스트로 카네-메이슨 패밀리의 장녀이다. 그녀를 포함한 7남매가 모두 악기를 전공하고 있고, 제일 유명한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Sheku Kanneh-Mason)이 있다.
또 하나는 한국 피아니스트 이정화의 앨범으로 수록 곡 'Impromptu in E major'은 impromptu 프랑스어로 즉흥곡이라는 뜻으로 즉흥처럼 들리지만 정교하게 구성된 짧은 피아노 소품곡이며, 클라라 슈만 초기의 (1836년경 작곡) 서정성과 깊은 내면적 정서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곡이다.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백조처럼 고고한 선율과 그 밑에 바쁘게 헤엄치는 듯한 아르페지오가 꼭 추천하고 싶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