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노부유키 츠지이(Nobuyuki Tsujii)
사람이 세계를 내지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누군가는 색으로, 누군가는 형태로, 그리고 어떤 이는 소리로 세계를 인지한다. 우리가 말하는 감각기관은 단순한 정보를 받아들이 통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맺는 고유한 방식이며 각자의 존재가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SNS에 자신이 경험한 세계와 모습을 공유함으로써 타인과 연결되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포옹이나 손을 맞잡는 촉각적 순간 속에서 관계의 온도를 느낀다. 또 누군가는 책을 펼쳐 한 문장을 읽는 일만으로도, 멀리 있는 작가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소리’로 세계와 연결된다. 일본 피아니스트 노부유키 츠지이처럼.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한 노부유키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시각 장애(안구 소안증)로 인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18세에 2005년 쇼팽콩쿠르 세미 파이널에 올라 비평가 상을 받고,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1위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시각이라는 감각은 감각기관 가운데에서도 지배적인 감각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쉽게 진실이라 믿고,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를 해석하며 그 안에서 편견과 신념마저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음악가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악보라는 시각적 언어를 먼저 읽고, 그 위에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노부유키 츠지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이해한다.
그에게 음악은 '보는 것'이 아닌 듣고, 만지고 피부로 흡수하는 것에 가깝다. 그는 한때 점자 악보를 쓰긴 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오른손과 왼손 파트를 따로 녹음한 테이프를 반복하면서 들으며 곡을 청각적으로 먼저 접한다고 한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노래하고 빛을 연주한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세계는 '보아야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예술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가장 근원적이고 끈질긴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을 느낀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도 이런 것이 아닐까. 주어진 조건과 한계를 넘어,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힘.
예술, 특히 음악은 이 의지가 가장 순수하게 형상화되는 영역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계가 '표상'이라면음악은 의지의 직접적인 발현, 즉 인간이 세계와 연결됨을 느끼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노부유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인간이란 언제나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예술'이라는 형이상학적 실체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소리와 피아노에 닿는 촉각만으로 음악을 만들고, 그 너머의 세계와 연결된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어떤 한계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표현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눈부신가를 목도한다.
노부유키는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로 쇼팽을 꼽는다.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라흐마니노프와 리스트 등 기교적으로 화려한 작품들도 많지만 그가 쇼팽을 연주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자유로움'은 어떤 작품들 보다도 빛난다. 그의 연주를 듣자면 마치 잔잔한 바다 위를 부유하듯 떠다니는 느낌, 혹은 끝없이 열린 하늘을 큰 날개로 가르며 부드럽게 선회하는 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석’적인 쇼팽연주에서는 들을 수 없는 어떤 모험성과 유연함이 스며있다. 그가 바라보는 쇼팽의 음악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음악세계가 문득 궁금해진다. 특히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의 2악장(Larghetto)을 연주할 때의 모습은 어떠한 구속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도이치그라모폰 사,
Nobuyuki Tsujii & Vladimir Ashkenazy
Chopin: Piano Concerto No. 2(Deutsches Symphonie-Orchester Berlin · Deutsche Grammophon).
마치 하나의 호흡처럼 유기적이고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읊조리는 듯한 프레이징이 인상적인 연주이다. 노부유키의 세계로 초대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사진: memo___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