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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Sep 28. 2022

저와 함께 쉬어 주세요_ 숨.

 "내 숨소리를 들어요.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

 잠 못 이루는 해준에게 수면을 유도하는 서래. 깊은 숨소리와 함께 해준을 바다로 이끄는 서래는, 해준에게 눈도 코도, 생각도 없는 해파리가 되라고 말한다.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라고 한다. 서래 자신에게.

 점차 커지는 해준의 숨소리. 해준은 이내 깊은 잠에 빠진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내가 손꼽아 좋아하는 장면이다. 상대에게 경계를 허물고 호흡을 맞춘다는 건 이토록 아름답고 때로는 애처로운 일.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 이 씬에서.


 최근 내게도 숨과 관련해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올해 있었던 일들이 한 편의 영화라면 명장면으로 꼽을 만한 씬들이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 경험이야 말로 앞으로 내 삶을 지탱해줄 강력한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마저 생긴 일. 그 근저에 있었던 숨- 호흡이 내게 주었던 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때는 얼마 전 추석 연휴. 올해도 어김없이 복합적인 감정을 가슴에 쌓았다 무너뜨리며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긋지긋하면서도 한편으론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걸까 벗어나고 싶지 않아 마지 못 한 척 매번 다시 오는 걸까, 나는 누구의 대리일까 나 자신일까, 일 년에 단 며칠뿐인데. 이렇게나 반기는데. 끝이 있긴 할까, 그 끝은 어디일까. 무거웠다 가벼워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손은 분주했다.


 어느새 차례 지낼 시간이 되었다. 몇 해를 거듭해도 차례 순서가 삐걱거리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점점 빠르게 닮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어쩐지 안쓰러웠다.

 늘 그렇듯 이틀 동안 준비한 것에 비해 차례는 허무하리만치 금세 끝났다. 너른 상에는 산 사람들의 식사만이 남았다. 가족들은 다 함께 둘러앉아 느긋이 아침 식사를 했다. 평소에도 즐겨 먹는 비빔밥이지만 명절에 먹는 비빔밥은 특유의 풍미가 있다. 그제야 어수선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먼 길 떠나야 하는 작은삼촌은 서둘러 집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각기 할 일을 찾아 집을 정리했다. 모두들 빨리 쉬고 싶었는지 청소가 순식간이다. 할 일이 끝나자 작은엄마가 요가 수업을 제안하셨다. 티처 트레이닝도 막 받고 왔겠다, 연습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다들 차례 준비로 수고했으니 그러자고 했다.


 큰삼촌 집엔 용케도 요가매트가 세 개나 있었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친척 동생 유나와 요가를 꾸준히 해오신 작은엄마, 못 한다며 거절하다 붙잡힌 큰삼촌과, 큰 수술 후 재활 치료 중인 고모까지. 거실에 네 명의 학생을 쪼르르 앉히고 급조한 수업을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아빠는 소파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배우고 있는 '포레스트 요가'는 호흡을 통해 통증을 치유하는 요가예요. 치료는 아니고, 치유요. 혹시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곳 있어요?"

 유나는 딱히 아픈 곳이 없다 했고 작은엄마는 허리와 목 디스크가 있다고 하셨다. 큰삼촌은 오십견 때문에 어깨가 아파 팔을 들지 못한다고 했다. 고모는... 고모도 거동이 편치 않은 환자였다. 그런데도 함께 하겠다며 자리에 앉은 귀엽고 기특한 학생이었다. 학생들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가장 기본적인 동작에 스트레칭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제가 숨 쉬라고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자세를 잘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숨만 쉬시면 돼요."

 먼저 깊은 우짜이 호흡을 시범 보이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그때부터 난관이었다. 복병이 나타났다. 큰삼촌이 숨을 못 쉴 줄 누가 알았겠나. 단지 갈비뼈에 손을 대고 입을 다문 채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으면 되는데 삼촌은 그걸 하지 못 했다. 마신 숨을 자꾸만 참았다. 그것도 오래.

 "삼촌. 숨 마셨으면 곧바로 뱉으면 돼, 편안하게."

 허리와 어깨가 마치 콩벌레처럼 둥글게 말린 삼촌은 숨을 머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 숨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전달해야만 숨을 가까스로 뱉어냈다. 자세가 바뀔 때마다 쫑알거리는 삼촌이 자꾸만 신경 쓰여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입은 다물고 내 숨소리를 들어, 삼촌."

 삼촌의 갈비뼈에 내 손을 얹고 호흡을 유도하니 그제야 숨이 안정됐다. 물론 어깨와 목은 뻣뻣하게 굳어 다시 한번 손을 대야 했지만. 그나저나 삼촌 키가 작은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왜소했던가. 군살 없는 삼촌의 몸은 다부지다기보다는 딱딱히 굳어있는 쪽에 가까웠다.


 대체로 무리 없이 잘 따라오는 유나의 호흡은 꾸준히 편안해 보였다. 건강한 몸이었다. 작은엄마는 척추 라인을 따라 골반에 쥐고 있는 힘이 강해 긴장을 풀어드려야 했다. 고모는 작고 동그란 몸으로 누구보다 수업에 열중했다. 고모에겐 무리하지 않기를, 가장 편안한 상태를 찾아 호흡하기를 권했다. 내가 손을 가져다 대면 긴장이 풀리는 게 곧잘 보였다. 불과 얼마 전 생사를 오가는 대수술을 한 환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회복의 의지가 강한 듯해 마음이 놓였다.


 몸에 열을 내는 구간에서 수업이 어려워지나 싶었는지 학생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집중도는 서서히 높아졌다. 수업에 집중할수록 수다스럽던 삼촌은 침묵하기 시작했고 호흡이 안정화되었다. 문제는 쥐고 있는 어깨의 힘이었다. 내 생애 이런 몸을 본 적이 있었던가.

 "삼촌. 어깨에 힘 좀 빼 볼까? 뭘 그렇게 자꾸만 짊어지려고 해. 내려놓아도 돼."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기실 이런 내용이 담겨있었다. '삼촌은 집안의 가장이나 마찬가지였지. 싫은 내색은커녕 누구보다 형제들을 사랑해 언제나 솔선수범이었어. 무슨 일이든 제일 먼저, 제일 부지런히. 아마도 내가 모르는 시절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게 우리 삼촌 몸에 다 쌓였네.' 수업 중에 삼촌을 부르며 힘 빼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나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누워서 하는 척추 트위스트로, 내가 핸즈온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자세다. 잘 돕는다면 학생들의 요추와 골반 사이에 호흡이 드나들 정도로 공간이 생길 터였다.

 유나부터 차례로 폐부를 관찰하며 핸즈온 하는데 학생들 입에서 하나같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시원했던 거다. 특히나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던 건 굽었던 삼촌의 등이 보기 좋게 펴진 것이었다. 마침내.

 잔잔한 음악을 틀고 사바아사나로 들어가, 내친김에 사바아사나 핸즈온까지 모두 해 주었다. 선생님들께서 핸즈온은 한두 명에게 집중하라 하셨는데 그럴 수 없었다.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었으니까.

 음악 소리를 서서히 줄이며 학생들을 천천히 일으켰다. 고요하고 편안한 공기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명절에, 가족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어 기뻤고, 무엇보다 잘 따라와 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며 수업을 마쳤다. 모두 가슴 앞에 합장을 하고 "나마스떼"로 인사했다.


 잠시 여운을 즐기던 가족들의 입에서 빠르게 후기가 들려왔다. "선생님, 키가 2cm는 커진 것 같아요", "선생님, 이 사람(큰삼촌) 허리가 펴졌어요", "방금 전에 틀었던 곡은 뭐예요? 알려주세요", "너무 좋다. 내년 설에 또 해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이건  반칙이지. 바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이렇게 나를 붙잡겠다고이제 명절 모임엔 그만 오려던 참이었는나는   없이 그러자고 약속했다. 내년 설에  좋은 수업으로 돌아오겠노라고


 가족들에게 이 정도로 충만한 애정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으론 처음이었다.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몸에는 '가족'이라는 집단으로 묶이기 이전에 개별자로서,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살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시간 동안 그들의 역사를 짧게나마 엿본 듯해 뭉클했다. 요가 수업은 내가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추석 선물이라 생각했는데 선물을 받은 건 오히려 나였다. 

 








 다음 에피소드의 로케이션은 이름처럼 그림 같은 정선군 화암면 그림바위마을로 이어진다.

 포레스트 요가 티처 트레이닝 1분기 수업이 끝나고 육지에 머무는 김에 민재 집에서 며칠 쉴까 했는데 얄궂은 민재는 나를 가만히 쉬게 두질 않았다. 티처 트레이닝 전부터 정선에서 수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거절했다. 자신이 없었으니까. 내가 티처 트레이닝을 받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나 스스로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지, 당장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민재는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마음먹기 달린 거라고. 하면 되고, 되면 그 경험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고. 나도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얘는 뭘 믿고 이렇게 확고한 건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긴 건 그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후였다. 트레이닝을 받는 12일의 기간 동안 몸과 마음에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각과 감정이 소용돌이쳤고 그 중심엔 기쁨과 희열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의욕이 들불처럼 타오르더니 어느새 수업 초안을 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림바위마을에 머무는 4박 5일 동안 마을 곳곳에서 매일 수련하고 시퀀스를 짰다. 누가 보면 날마다 수업이 있는 줄 알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매일의 수련은 친구들과의 놀이였고 덕분에 티칭 연습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오후엔 어김없이 부상에 대한 공부를 했다. 참가하기로 한 에이미님 몸 여기저기에 수술 후 통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그를 이끌어도 되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신 건 포레스트 요가 선생님들이었다. 부상에 대한 질문을 드리자 갖은 노하우와 용기가 몇 날 며칠 장문의 메시지로 돌아왔다. 내가 말했던가, 포레스트 요가는 사랑이라고. 자신을 괴롭히는 통증과 용감하게 마주 보려는 에이미님의 의지야 말로 두말할 것 없이 큰 힘이었다.


 드디어 나의 공식 첫 수업일. 여러 장소들 중 고민 끝에 선택한 수업 장소는 소금강 전망대였다. 그곳은 걸어 오르는 길부터 비경이라 수업 전 심신을 고조시키기 좋았다. 소금강 전망대로 향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마치 소풍길 어린아이 같았다. 

 민재, 영원, 에이미, 정숙, 병인. 깎아지른 절벽 앞 소금강 전망대에 다섯 명의 학생들과 모여 앉았다. 다채로운 조합이었다. 아픈 곳은 없지만 통 기운이 없다는 민재와 아픈 곳은 없어도 며칠 함께 수련하며 관찰하니 근력이 부족해 보였던 영원, 허리와 목 디스크, 무릎과 오른팔 수술 후 통증이 있는 에이미, 엄마와 비슷한 또래의 텃밭 농부 정숙과, 항암 치료를 이제 막 마쳐 몸은 물론 마음도 지쳐있는 병인.

 사실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오늘의 수업 의도는 '호흡하기'예요. 여러분 자신의 숨소리를 듣고, 이 자리에 있다는 걸 인지하세요. 제가 오늘 여러분께 해드릴 건 호흡을 조금 유도해드리는 것. 그것밖에 없어요. 그냥 여러분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도록 저는 조금 도와드릴 거예요. 나머지는 여러분이 자세를 취하실 거고, 여러분이 숨 쉬실 거예요.

 가능하다면 옆사람의 숨소리도 한 번 느껴보세요.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살아있다는 걸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 호흡법 중 초보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건 갈비뼈에 손을 얹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는 우짜이 호흡이 아닐까 한다. 손가락 사이로 갈비뼈가 확장되었다 수축되는 것을 누구나 드라마틱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우짜이 호흡으로 시작한 수업은 복부와 내장을 뜨겁게 달구어 주는 우디아나 호흡, 복부와 허리를 강화하는 엘보우 투 니, 척추 신전은 물론 가슴까지 열어주는 브릿지로 이어졌다.

 내가 처음 포레스트 요가를 접했을 때 가장 어렵고 아리송했던 자세는 엘보우 투 니였다. 제대로 하면야 복부를 바닥으로 밀어주는 힘으로 다리를 뻗어내, 다리와 골반 사이에 공간을 만들 수 있는데 그 느낌을 찾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나는 최근 들어서야 감이 좀 오기 시작했는데 이날 나는 분명히 목격했다. 민재가 스스로 골반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내는 걸. 민재의 다리가 길게 쭈욱 빠지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


 이날 가장 신경 쓴 학생은 에이미였다. 디스크 환자를 위한 우회 자세를 알려주었지만 수술 후 오랜 시간 잠겨있던 몸은 수업이 진행될수록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에이미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자세 하길 원치 않았다. 대신 내가 에이미에게 해줄 수 있는 핸즈온으로 그를 돕고 싶었다. 다른 학생들이 선 셀루테이션을 반복하는 동안 에이미와 나는 코브라 핸즈온에서 머물며 함께 호흡했다. 

 "에이미, 제 팔뚝을 양손으로 잡고 들숨에 제 팔뚝을 끌어당기며 가슴을 앞으로 보내세요. 그때 허리와 무릎에는 힘을 풀고 양 엄지발가락만 뒤쪽으로 쭉 뻗어보세요. 갈비뼈는 앞으로, 다리는 뒤로. 서로 반대로 뻗어나갈 때 척추에 공간이 생겨요. 내쉬며 잠시 내려왔다가, 들이쉬며 반복해요."

 처음 접한 행위라 어색했을 텐데 에이미는 진지하고 명랑하게 경청했다. 나는 가능하다면 짝꿍이나 집안 구조물의 도움을 받아 이 자세를 수시로 접하길 그에게 권했다. 나 또한 요추 통증이 있었고 티처 트레이닝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코브라 자세를 접한 후 통증이 사라진 참이었다. 코브라 자세뿐만 아니라 엎드린 상태로 크게 호흡하는 것도 그에게 도움이 될 터라, 그것도 알려주었다.


 워리어 투와 변형 자세들로 이어진 시퀀스가 피죤에 다다를 때까지 학생들의 표정과 호흡을 살폈다. 숨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을 땐 그들에게 다가가 갈비뼈에 손을 대고 호흡을 유도했다.

 내가 학생들의 호흡에 맞춰 숨을 쉬기 시작하면, 어느새 내 호흡의 속도로 학생들이 따라오곤 했다. "이렇게 하면 돼요"라고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몸으로 느끼는 것이 신기했다. 


 실은 수업이 시작된 후부터 마지막까지 병인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냉담한 듯 보이는 그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그가 이 수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자세가 편안한지. 호흡이 잘 되고 있는지. 그는 지금 좋다고 했다. 냉담한 게 아니라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괜히 방해만 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던 정숙은 그 누구보다 수업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만날 때마다 젊고 세련되다고 느껴졌던 정숙의 맵시는 수업에 임하는 태도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이전 수련까지만 해도 깊이 집중하지 못했던 영원은 이번 수업에서 어느 때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몸이 며칠 새 유연해진 것도 눈에 띄었다. 호흡의 힘이었다.


 이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다시 한번 꺼내 든 비장의 무기, 누워서 하는 트위스트에서 나타났다. 다섯 명 모두 핸즈온 할 수 없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민재의 갈비뼈가 놀랍도록 넓게 확장되며, 마치 풍선처럼 부풀었다 꺼지는 게 보였다. 소금강에 불어오는 바람을 모두 끌어모을 기세였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생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심지어 에이미는 자신의 손으로 허벅지와 갈비뼈를 서로 멀어지게 하며 스스로 핸즈온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그 모습에 감명받은 나머지 사바아사나 핸즈온은 자연히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수술 후에도 통증이 이어졌을 에이미의 어깨를 조심히 놓아주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호기심 어린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의 숨에 내 숨을 맞추었다. 살며시 그의 뒷목을 주무르다 그가 숨을 뱉을 때 천천히 고개를 빼주었다. 

 조용히 민재에게로 갔다. 가만히 민재를 내려다보다 그의 어깨를 편안히 놓아준 후, 여전히 크게 부풀었다 꺼지는 그의 흉곽을 바라보며 나도 호흡의 박자를 맞추었다. 민재의 뒷목을 부드럽게 만져주고 두개골 아래 손을 받쳐 내뱉는 호흡에 천천히 빼주었다. 잠시 민재의 얼굴 윤곽을 쓰다듬으며 함께 호흡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무어라무어라 말했고, 그에 답하듯 민재는 눈물을 흘렸다.


 소금강 물결이 흐르는 소리와 나뭇잎이 춤추는 소리, 풀벌레와 새들의 노랫소리. 따사로운 가을볕을 막아주는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종일 우리를 내려다보던 커다란 바위와 울창한 나무들. 죽은 자세로 누워 살아 숨 쉬는 나의 친구들. 나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새로운 숨으로 다시 깨어난 학생들의 얼굴이 가을 하늘만큼이나 청명했다. 그들은 나의 공식 첫 수업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멀지만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겠노라 약속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리는 소금강 전망대에 둘러앉아 벅차오르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었다. 

 

 정선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에게서 정성 어린 후기가 들려왔다. 내게 포레스트 요가는 수행, 공부, 일이면서 여행이자 놀이처럼 보였다는 말.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치유자로서 통합되어 있는 모습이 깊게 와닿았다는 말. 요가는 자신과 맞지 않는 운동이라 여겼는데 나와의 수업을 통해 맞고 안 맞고를 떠나 편안함과 수월함, 그리고 평안을 많이 느꼈다는 말. 영상을 보며 집에서도 시퀀스를 따라 해 보겠다는 말.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와달라는 말.









 어쩌면 소중한 나의 친구들이었기에 더 많은 교감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예견한 거라면 나를 부추긴 민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다. 이 첫 수업의 기억이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기운으로 전해질 테니까. 무엇보다 진정으로 포레스트 요가의 묘미를 만끽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내가 선생님들께 받은 지원과 사랑만큼 나도 누군가를 지원하고 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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