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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Oct 24. 2024

19. 철학석사할매, 프랑소와즈

이사 온 뒤부터, 참석하는 구역성당미사에서 만난 새로운 이웃.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물어대는, 혼자 사는 아주머니.

아들 자살로 정서적으로 다소 불안한 그녀지만, 아주 친절하다. 

토요일 오후, 숲으로 산책 가자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지형과는 달리 프랑스는 대부분 평야와 둔덕처럼 생긴 숲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다. 

그녀와 함께 걷던 들길 끝 지점에 드러난 고사리 숲!

끝없이 펼쳐진 오동통한 고사리가 한동안 웅크렸던 웃음을 일으켜 세웠다. 큰 웃음소리와 방언처럼 터진 한국어. 

“세상에! 이런 고사리 천국이 다 있네!”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며, 왜 그렇게 웃어대요?”

“그냥요.” 

신바람 난 모습으로 고사리를 꺾어대는 나를 향해,

“왜, 자꾸 이상한 풀을 뜯어요?” 

“집에 가지고 갈려고요.” 

“뭣하게요?” 

“먹으려고요.”     


일요일 미사는 평소에 가던 구역 성당으로 가지 않았다.

그 대신에 점심 초대한 유학생집 근처, 주교좌성당미사에 참석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부산에서 온 신토배기 음식들!  

착착 달라붙는 익숙한 맛에 배가 빵빵해지도록 한국음식을 먹은 후에는.

그동안 일어난 근황들을 편안한 모국어로 수다 떨며,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고는. 그들이 예매해 두었던  오페라까지 함께 관람한 후, 밤늦게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평소보다 높고, 또 훨씬 빠른 본당 수녀님 목소리,

“몸은 괜찮아요? 어제는 전화를 왜 안 받았어요? 하루 종일 병원에 있었어요? 아침 일찍 퇴원했나요?”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질문 공세를 중단하며,

“아프지 않아요. 근데, 내가 왜 병원에 입원해요?”

함께 숲길 산책 갔던 아줌마가 온 동네에 불어댄 전화 사이렌 소리, 

“토요일에 한국여학생과 숲길로 산책 갔어요. 이상하게 생긴 풀을 마구 뜯더니, 가져갔어요. 그 풀을 먹을 거라면서요. 근데, 오늘 미사에 안 왔어요. 너무 걱정되어 여러 번 전화했는데도, 글쎄 안 받아요. 어디 사는지 모르니, 가 볼 수도 없고. 도대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조차 없네요. 그 독초를 먹고, 자살했을까요?”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봄이 오면, 유난히 새벽 일찍 일어났다.

집 근처 야산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가는 아줌마들을 뒤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서당 훈장 딸인 어매는 고사리 꺾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데다가, 종갓집인 우리 집에는 제사가 유달리 잦아서 많은 양의 고사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오직 늙은 어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주고 싶은 꼬맹이의 효심으로. 

토끼띠 어매가 부른 후렴구 “덫에 친 토끼처럼, 일생을 살았네.”를 우연히 들은 그날부터다. 

빨간 눈의 새끼토끼처럼, 어매토끼의 얼굴표정까지 살피기 시작한 것은.     


숲에서 고사리를 보자마자, 예전 초등생처럼 뛸 뜻이 기뻐하며 고사리를 꺾었다. 집으로 가져온 고사리다발이 화젯거리가 될 거라는 인식 없이.

설상가상으로, 다음날 구역성당의 주일미사에 불참한 나.

비 오는 날이면 정서적으로 더 불안해지는 그 아줌마가, 자살한 아들과 나를 함께 묶어서 전화나팔을 불어댄 서글픈 ‘웃찾사’! 

그녀 덕분에 화제의 인물이 된 나. 

성당 안의 달라진 풍경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루했던 프랑스할머니들은 미사가 끝나자마자, 앞 다투어 내 안색부터 살피며 근황을 묻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상한 풀을 먹는 동양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쉽게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에게는, 고맙다기보다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작은 성당 안에서 내 존재를 확실하게 광고해 준 고사리 사건!     


고사리 해프닝이 있은 지, 며칠 뒤에 걸려온 낯선 전화 목소리.

“본당 수녀님에게서 이야기 들었어요. 괜찮다면, 만나보고 싶은데요?” 

“왜요? 무슨 일로요?”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요. 언제 시간 되나요?”

“오고 싶으면, 지금 오세요. “  

통화 후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들려온 노크 소리.

문 앞에는 순백색 머리를 아주 짧게, 겨우 2cm도 채 안되게 쇼커트한 할머니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먹거리가 없는 동양여자가, 야생풀까지 뜯어먹는다고 소문났나? “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첫날 그녀를 만났을 때, 아주 명료하게,

”혼자 사는 77살 할매, 프랑소와즈입니다. “ 

이런 짤막하고도 거침없는 자기소개는 처음 들어봤다. 간략하지만, 분명했다.

어떤 치장 없이 툭 던지는 직구는, 내 말투다. 굴 껍데기처럼 닫혔던 마음이 다소 느슨해진 시점이다. 

일상적인 주제, 그러나 서로 탐색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략 1시간 정도 후, 그만 가봐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꺼낸 수표를 내밀면서,

”적은 금액이지만, 필요할 때 사용해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받아두어요. 귀국할 때까지 사용할 필요가 없으면, 그때 되돌려주어도 괜찮고. 타국이니, 언제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감히, 다만, 엄마 같은 마음이에요. “  

좀 전에 문을 열어줄 때, 그 삐딱한 마음이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이런 민망함을 알 리가 없는 그녀는,

”더 큰 도움을 주고 싶은데, 연금으로 살아요. 그래도 매달 천 프랑 여유는 있네요. 다음 달에도 천 프랑은 나눌 수 있어요. 내 맘을 받아주면, 정말 고맙겠어요. “      


경계심이 누그러지던 그 순간부터, 과일 바구니에 쪽으로 기울어지던 눈길. 

공공아파트로 이사 온 뒤부터는 과일을 사 먹지 않았다. 

욜랑에게 먹거리로 길들여지는 것 같은 자격지심으로 애써 무관심한 태도를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민감하게 마음속으로,

‘멜론부터 먹어야지...’

그녀가 떠나자마자, 단내를 뿜어대는 멜론부터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카페에서 허겁지겁 음식 먹던 노숙자들을 무정한 시선으로 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허기진 외국인 실업자와 나, 같은 처지 나그네인 줄도 깨닫지 못하고. 그가 이방인이라는 동전 앞면이라면, 나는 뒷면인 것이다.

날카로운 비수 같은 불편한 자각으로, 급하게 먹던 멜론이 목구멍에 걸렸다.      


토요일 오후, 가끔씩 프랑소와즈 집에서 차를 마셨다.

차 마시는 횟수와 동시에 늘어난 대화 시간, 길이, 폭, 깊이까지.  

백발의 그녀와 나, 각자 다른 영혼과 여정을 존중하는 친구가 되었다.  

담담하게 들려준, 그녀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다.

”갑자기 과부가 되었어요. 47살부터 의사남편이 근무했던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했지요. 두 딸의 생계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거든요. 철학 석사 학위는 일자리를 찾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

”남편이 재직했던 병원 청소부,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잖아요? “  

”다른 출구가 없었지요. 그나마도, 병원 측의 도움으로 취직된걸요. “

”그동안 모아둔 재산은 없었나요? “

”결혼하면서, 양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상당히 많았어요. 남편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는 걸 너무 좋아했지요. 우리 식구끼리만 식사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애들이 투덜거릴 정도였으니까요. 장례 치르고 난 후, 그다음 달 생활비도 통장에 없었어요. “     


계속된 그녀의 이야기.

”큰 딸은 사회학 석사학위 받고 나서 마더테레사 인도 공동체 수녀가 되었어요. 작은 딸은 6번째로 임종의사자격증 준비 중이라, 시간제 의사로 일해요. “ 

”세상에! 의사 자격증이 5개나 있는데, 또 6번째 준비 중이라고요? “

”좀 편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요즈음처럼 추운 날씨에 난방이 없는 스튜디오에서 사는 게 안쓰럽지만. 그렇지만, 그 애는 자기 나라니까... “     

”매달 천 프랑, 더 이상 저에게 주지 마세요. 그런데, 딸도 알아요? “ 

”네, 알아요. “ 엄마 돈이니 마음 편하게 쓰래요. “

아파트로 돌아오는 귀가 길, 마음이 천근 같았다    


의사 딸과 대면한 날이다.

그녀 몫을 가로챈 것 같은 미안함으로 주눅이 든 나와는 전혀 달랐다. 

너무나 반가워하는 모습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함께 점심 먹으며, 그녀가 설명해 준 의료시스템과 세분화된 의사자격증에 관한 설명을 듣고도 쉽게 납득을 못한 내가,

”이미 취득한 의사자격증 5개, 독립적으로 살기에 충분하지 않나요? 6번째로 임종의사자격증 준비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

돌 직구처럼 던진 나의 질문에,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과 함께 싶어서요. 특히 홀로 임종하는 노숙자 곁에 있고 싶거든요. “

그녀는 거대한 병원에 소속된 의사가 아니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제도권 밖의  환자와 노숙자를 돌보는 의사인 그녀.

누군가를 치료해 준 대가로 의식주해결하면, 충분하다고 환하게 웃던 얼굴. 

동갑내기 그녀는, 내가 존경하는 유일한 의사다.   


철학석사할매, 프랑스와즈!

그녀가 보고 싶은 까닭은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시절, 경제적으로 내 손을 잡아준 따뜻한 배려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나의 자존감을 되살아나게 해 준, 그 진심 어린 사랑의 말들이 메아리치는 까닭이다.

”이런 맑고 영혼을 만난 나야말로 축복받은 거지요. 프랑스에서 머무는 동안, 섬세한 영혼 다칠까 봐 염려돼요. 꼭 내 딸처럼! “

쉽게 상처받는 나약한 나의 영혼 상태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린 그녀.

울 어매처럼 눈물 글썽이며 나를 염려하던, 백발 쇼커트한 프랑스할매! 

꼬맹이시절에 잔뜩 못마땅하게 여겼던 우리 어매의 모습으로, 프랑스 어매가 자신의 딸처럼 나를 염려하는 이런 상황,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나?

고슴도치새끼처럼 뿔난 나를 달래며,

”우리는 늙어서 오래 살지 못한다. 네 어미가 거지들을 내 식구처럼 먹이는 건, 너 때문이다. 하늘에다가 비는 거란다. ‘어미 없이 혼자 남을 우리 비둘기,  지금 나처럼 보살펴 주세요!’하고. “ 

예전 철부지가 귓등으로 흘려보냈던, 우리 어매의 궤변이 되살아난 날이었다.


프랑스 표류 7년 동안 만난, 7인의 착한 사마리아인 덕분으로 생환한 나. 

매일새벽미사에서 봉헌기도명단 7인 중의 한분인 그녀. 

내 맘까지도 어린 꽃잎처럼 보살핀 철학석사할매프랑소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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