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by 권석민


배움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권석민

현재 20년 된 공무원이다.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한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머리에 지식들은 점점 낡아 사라져 버리고, 직장 안에서의 경험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와의 대화에 어색해하며, 충분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영상회의, 강연 등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2년이 지났다. 그때와는 다른 나로 변화되어 있었다. 내적으로 성숙하고 생각과 판단의 기준점들이 분명해졌다. 앞으로의 인생설계도 해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차곡차곡 나와 약속들을 지켜내는 사람이 되려한다.


인생의 중반에서 남은 시간의 유한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누구나 하루에 86,400초가 주어진다. 못다 쓴 시간은 다음 날로 이월시킬 수 없다. 사라질 뿐이다. 86,400초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차곡차곡 내적 가치를 축적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40대 이전의 삶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쪽에 가까웠다. 하루하루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복잡하게 삶을 사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해 요소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의 역량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풍부한 감정과 지식들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어의 선택은 얇고, 생각의 범위는 좁았다. 직장에서 문제 해결의 순간에 극복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졌다. 폭넓은 사고로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욕망을 이루려면 무언가 행동을 해야 된다. 불편한 점을 생각만 하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질 들뢰즈는 우발적 마주침을 강조했다. '아장스망(agencement)'은 배치이다. '아장스망'을 바꿔야 생각이 바뀐다. 일상의 배치가 바뀌지 않으면 내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를 바꾸는 방법 중에 하나는 나를 새로운 낯선 환경에 자주 던져 넣는 일들을 해야 한다.


나에게는 '아장스망'이 있었던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0개월 동안 교육을 받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까지 겹쳐서 있던 해였다. 온라인으로 10개월 동안 강의만 들었던 것이다. 기존의 배치와 다른 상황들이 발생한 것이다. 변화가 일어났다. 생각의 변화, 태도의 변화, 삶의 변화가 나타났다.




■ 20년 동안 손 놓았던 공부는 힘들었다.


코로나19로 초등학생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유치원생인 아이들을 식사를 챙기고 온라인 강의를 챙겨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다. 앉아서 강의를 듣는다고 온전히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아니었다. 사라져 버렸다. 배운 내용을 오랫동안 남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를 해야 했다. 교육기간 동안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새벽 3시까지 밤을 새워서 공부하는 날도 있었다. 공부는 새로웠다. 1시간씩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강의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에버노트라는 온라인 메모장에 기록했다. 마치 속기하듯이 기록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던 기록이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끝나는 날 10개월 동안 받은 교육의 강의 기록들을 가져가는 것이다. 강의 내용을 머릿속에 넣는 것보다 기록해서 가져가는 뿌듯함에 집중하려 했었다. 기록을 하게 되면 정보들이 뇌에 잠깐 머물다가 사라지는 것을 늦출 수 있었다. 하루하루 습관이 되니 조금씩 뇌가 활성화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록을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게 되었다.


그 전에도 세심한 성격이라 온라인 툴(tool)에 여기저기 기록을 남겼다. 다시 꺼내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록하는 것으로만 만족했던 것이다. 기록의 양이 많아지니 어디에 무엇이 어떤 내용으로 보관되어 있는지 분류가 필요했다. 한눈에 목록화해서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youtube)를 검색해서 에버노트(evernote)의 목차 기능을 활용했다. 태그(tag)나, 노트(note)로 분류하더라도 같은 유형으로 담지 못하면 복잡함만 가득할 뿐이었다. 강의 목록 안에서도 주제나 테마별로 분류가 필요했다. 주제 또는 테마별로 묶은 카테고리 안에서 목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눈에 10개월 동안의 무엇을 배웠는지 제목만 보고 찾아보기 위함이다. 교육이 끝난 후 가끔 필요할 때 찾아보기도 하지만 기록한 것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은 마음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스피치(speech) 할 경우가 생길 때 찾아본 적이 있다. 에버노트에 기록된 내용을 검색해서 찾아봤다. 찾은 내용을 다시 훑어보고 스피치 스토리를 잡아봤다. 확실히 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어떻게 되겠지 하고 말면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되지만, 한 번이라도 고민해 봤다면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게 된다.



■ 배움은 익히고 깨달아서 내 삶으로 적용시켜야 한다.


깨달았다. 배움은 배움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적용해야 한다. 배움이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은 깨달음을 찾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운 내용을 눈감고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 말이다. 깨달음을 적어봐야 한다. 머릿속에 생각은 휘발되기 때문이다. 기록하여 남기면 각인된다. 몇 번을 다시 봐야 한다.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깨달은 것들 중에 내 삶에 적용하여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배움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일은 성과로 나타나야 하는 것과 같다. 배움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개념으로만 이뤄진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경험적 앎이 동반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 책을 읽기 시작하다


10개월 교육 동안 하루하루에 충실했다. 그동안 1년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책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는 동안 깊이 '사고'하게 된다. 책이 가져다주는 효용이다. 깊은 사고는 넓은 생각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힘이 생긴다.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대화할 때 상대방이 말하는 맥락을 파악하는데 수월 해진다. 생각한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역량도 발현된다.


책을 무작정 샀다. 책을 샀다고 읽는 것이 아니다.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많았다. 주변에 책이 있으면 눈으로 보게 되고 손이 가게 된다. 한 자, 한 줄, 한 문단, 한 장으로 점점 확장된다. 어느덧 1장 읽는 것조차 힘들었었는데 10페이지, 20페이지씩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전체를 훑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넘기다가 다시 앞으로 왔다가 뒤로 갔다가 뒤에서 앞으로 읽기도 한다. 처음부터 한 자 한 자 매달리면 활자만 읽게 되고 의미는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전체 맥을 보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머릿속이 정리된다.


1권에서 2권으로 3권으로 점점 속도와 깊이가 달라졌다. 책은 항상 옆에 있게 되었다. 항상 들고 다닌다. 한 장 밖에 못 보더라도 책 속에 단 한 문장이라도 설레게 하는 문장이 있다면 가치가 있다. 책 속에서 찾은 좋은 문장들은 기록해 놓는다. 나중에 강의나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 ‘씽크와이즈’(ThinkWise)라는 마인드 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책의 얼개를 구조화한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책의 제목을 검색한다. 예스 24나, 알라딘, 교보문고 등 인터넷 서점에서 책의 목차와 저자, 출판사, 출간 일자, 책 소개 정보 등을 ‘씽크와이즈’(ThinkWise)로 옮긴다. 책을 보면서 주요 내용들을 기록한다. 다 읽고 다면 짤막하게 내 생각을 적는다. 깨달은 것과 적용할 것을 구분해서 적는다. 이와 같은 독서노트 기록법의 장점은 첫째, 기억에 오래 남는다. 전체 맥락을 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다. 읽기만 하면 읽는 것에 멈추게 된다. 셋째,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쉽다. 다른 사람에게 책에 있는 내용을 전달하거나 내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볼 때 찾기 편하다.


책의 효용에 대해 말하면 끝도 없다. 책 1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사람이 이제는 조금은 많이 보는 사람으로 변했다. 책을 눈으로만 봤었지만 이제는 생각하면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이제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내 관심의 방향으로 행동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지식의 소비자에서 전달자로 그리고 생산자로 홀로서기


10개월 교육기간 동안 매일매일 강연을 듣고, 좀 더 완성된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더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은 내가 생각한 데로 흘러간다. 우연한 기회로 내가 갖고 있던 앎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교육이 끝난 후 2년이 조금 안된 기간 동안 약 13번의 강연을 했다. 우연한 기회와 우연한 만남들이 내 삶을 좋은 방향으로 순환시키고 있었다. 강연 횟수가 조금씩 누적되다 보니,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부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내용일까 고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앞으로는 어떤 영역으로 나가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청중과의 교감 없이 스피커로써 서있는 것과 교감하며 전달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적 부분, 나의 역할, 방향 등에 깊이 고민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남의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보다는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지식 생산자로서의 삶을 지향하는 목표점이 되었다.


처음엔 누구나 서툴고 두려워한다. 변화에 머뭇거리고, 편안함을 추구하려 한다. 지금보다 더 완성된 자아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려야 한다. 긴 관점에 지금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스토리를 써 나가는 과정이라면 어떨까? 나는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모든 점들은 결국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현재의 이 점은 미래의 어떤 점과 연결된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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