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다 돈 쓰는 이유를 아세요?
멀쩡한 차 사놓고
그것도 지가 맘에 들어
예쁘다고 해놓고
모양이 조금 아쉬워
출력이 좀 모자라
붙이고 떼고 돈을 들인다
미적 창조 본능인가
더 좋은 것에 목매는 욕망인가?
자존감을 지키려는 애처로움인가?
어떤 모양으로 바꿀까?
무슨 기능을 넣을까?
생각만으로 상상만으로 설렌다
살다 보면 힘들고 맘대로 안되고
여차하면 뒤통수 맞는 일이
허다하지만
열정과 아이디어로
멋지게 바뀌어가는
나의 튜닝카는 결코 배신이 없다
돈 들인 만큼
발품 판 만큼
나의 도파민 분비를 돕는다
이 세상에 어디
내 멋대로 해서
되는 일이 있기나 한가?
튜닝의 세상에선
이게 가능하다
주머니는 얇아져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브라카다브라
한순간
매직 같은 성취가 이루어진다
새로운 튜닝거리를 찾는다
세상에 없는 정직한 마법이
나를 취하게 한다
튜닝하는 순간만이라도
나는 왕이 되고
조물주가 된다
자동차 튜닝 해보셨나요? 운전이 지겨워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긴 출퇴근을 위해 할 수없이 해야 하는 운전이어서, 차도 운전도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타이어를 교체할 시기가 되었고, 이왕 하는 김에 휠도 바꿔보면 좋겠다 싶어 대만산 카피휠을 구매하였습니다.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아침마다 꼴 보기 싫었던 차인데, 휠을 바꾸니 새 차 같은 느낌이 들고, 바퀴를 바꾼 탓인지 승차감이나 주행감이 완전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뭐지? 조금만 더 타고 새 차로 바꾸려던 계획에서, 새 차 구입비의 10분의 1을 써서 새 차처럼 꾸미면 된다는 심박한 경제 논리로 튜닝을 시작했습니다.
튜닝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더 탄탄해지고, 스포티해지고, 예뻐지기까지 한 나만의 차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게 무슨 차예요?라고 주변에서 물어 올 때마다 뿌듯했습니다. 그 마음은 튜닝해 본 사람만 압니다. 그 이후로 무슨 차를 타든 지 가벼운 드레스업 튜닝에서 퍼포먼스 튜닝까지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튜닝에 빠져있던 시절은 업무 스트레스가 컸던 시절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 실적을 쌓아야 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가고 싶어,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눈에 보이는 성취는 없고, 한 고비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보이는 끝없는 스트레스가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그 시절에 튜닝은 나름 합리적인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습니다. 그리고 들인 돈만큼, 투자한 노력과 시간만큼 심리적 만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답답한 현실을 보상해 주는 탈출구였습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마음속에 드림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돈이 부족해 드림카를 살 수 없다면, 튜닝이 그다음 대안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차를 만들고, 그게 나의 드림카가 됩니다. 이렇게 튜닝은 마법과 같이 우리의 꿈을 단 시간 안에 이루어주는 달콤함이 있습니다.
다만 중독 증상이 우려됩니다. 성취와 보상이 마약처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 약 기운으로 돈만 있으면 쓸데없어 보이는 튜닝을 합니다. 그러나, 튜닝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 만드는 과정의 성취감, 아름다운 결과물에 대한 시각적 만족감은 도파민 분비를 보장해 줍니다.
자동차 튜닝은 차만 고치는 게 아닙니다. 나의 떨어진 자존감과 이루지 못한 성취욕을 고칩니다. 공들여 튜닝한 차가 수천만 원 차리 신차처럼 느껴지는 기분 좋은 착각, 세상에 한 대밖에 없는 개성 넘치는 차를 가졌다는 만족감은 욕구불만으로 망가진 나를 고칩니다. 이게 튜닝의 매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