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눈 사흘 간의 우정
어찌 지내다 보니
꽃다발을 받았다
정성껏 장식한 탐스런 꽃은
나 같은 아저씨가 받기에는
너무 예뻤다
꽃과 같이 걷는 동안
주변의 시선조차
어색했다
얼른 집에 와
싱크대 위에 꽃을 내려놓고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탐스러운 꽃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아뿔싸
따뜻한 방에 있던 꽃이
바로 시들어 버렸다
황급히 꽃병 될 만한 그릇을 찾았다
기껏 찾은 게
생맥주 컵
어쨌든 물 부어 꽃병 만들고
얼른 꽃을 옮겨 담았다
아직 채 피지도 않은
어린 꽃은
아주 고개를 떨구고 있다
꽃 이파리들이
물 부은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원래의 생기를 찾지 못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물을 먹고 살아나겠지
그래 어차피 시들 줄 알지만
나와 맺은 인연인데
벌써 져버리면 섭섭하다
아름다운 모습
조금 더 봐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보내면 미안하다
제발 생기를 찾아다오
오래 피지 않아도 좋다
생기를 찾거라
잠시라도 아름다움을 뽐내거라
오래 아니어도 좋다
며칠만 버텨다오
그러면
감사하게 여길 터이니
사흘만 피어다오
다행히도
고맙게도
그 꽃이
나흘을
피어 주었다
꽃다발을 받을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받아 든 꽃들이 너무 예뻐 유심히 쳐다보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받은 꽃다발은 보통 한품 가득 크기로, 꽃을 들고 걷다 보면, 꽃의 여성스러움이 나랑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다. 꽃이 너무 예쁜 탓이다. 그날도 개인 오피스텔에 도착해, 급히 꽃을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일단 다녀와서 어찌할지 결정하려 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일 마치고 잠시 오피스텔에 들렸다. 아뿔싸, 그렇게 아름답던 꽃이 난방 때문인지, 건조한 실내 때문인지 시들어버렸다. 밝고 화사하던 모습이 온 데 간데없었다. 나는 갑자기 죄지은 사람처럼 당황하며 황급히 꽃병을 찾았다. 있을 리 없다. 기껏 찾은 게 묵직하고 기다란 생맥주 컵이다. “그래 이거면 되겠다”. 얼른 물을 붓고 꽃을 꽂았다. “이제 방금 받은 꽃인데 설마 바로 죽기야 하겠어”. 나는 엄마 몰래 사고 치다 걸린 아이처럼 스스로를 자책했다. 맥주컵에 꽃들이 힘없이 꽂혔다.
아쉬웠다. 아까는 정말 예뻤는데, 잠시 방치해 놓은 사이 시들어 버렸다. 나는 꽃잎을 만져보며 “그래 살아날 거야. 안 그러면 너무 아쉽잖아..” 그래도 지인들이 정성껏 준비해서 만든 꽃을 반나절도 안 돼 엉망이 되니 마음에 걸렸다. 꽃이 다시 생기를 되찾기를 바랐다. “안되면 할 수 없지”. 작은 희망과 준비된 체념을 안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다음 날, 그 꽃이 놀랍게도 생기를 되찾았다. 꽃다발을 처음 받았을 때 모습만큼은 아니어도, 얼추 80% 정도 회복한 것 같았다. 기뻤다. 안도했다. “다행이다”. 감사했다. 얼른 꽃병에 아니 맥주컵에 담가두기를 너무 잘한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하루라도 잘 피다가 가면 아깝지는 않지”. 이제는 작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꽃은 의외로 생명력이 강했다. 이 정도면 하루가 아니라 며칠은 버틸 것 같았다. "그래 한 사흘만 피어라". 아마도 꽃가게에서 신선한 놈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준 게 분명했다.
이 꽃들은 고맙게도 하루, 이틀, 사흘동안 생기를 유지한 채 잘 견뎌 주었다. 나는 나흘째까지 그 꽃을 바라보았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꽃들이 힘없이 시들었다. 나는 저녁 늦게 꽃병에서 아이들을 빼냈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 고이 보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