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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갱년기 탄식

정서적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by 김정룡

이게 특별한 일로

불쑥 찾아오는 녀석이 아니다


밖이 아니라

내 몸 어딘 가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놈은 아주 고약하다


주변의 모든 것에

심통이 나있다


방금 핀 예쁜 꽃도

곧 시들 풀 떼기로 보게 만든다


이 놈은 기생충이 되어

생각의 기력을 빨아먹는다


아침마다 힘든 몸인데

남아있던 체력마저 갉아먹는다


그러다 우울감 한방은

나의 모든 것을 쓰러뜨린다


무력해진 나는 저항하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자신감이고, 자존감이고

없다


이 거지 같은 상태를

어찌해 보려 안간힘을 쓴다


친구와 술을 동원한다


이 만큼의 처방도 없으면

난 바둥거리다 죽을 거 같다


그러다 술 깨면

몇 배의 무력감에 추락한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 하나로

멀쩡한 척 안간힘을 쓴다


나는 가족들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말

괜찮지 않다



우리 사회는 여성갱년기가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남성 갱년기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남성이 겪는 갱년기는 개인차가 심하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는 특징도 있지만, 여기에 더해 말하기 어색해하는 남성들의 심리도 한 몫합니다.


남성 갱년기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입니다. 문제는 갱년기를 겪는 남성들이 자신의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보다 10년이나 20년 정도 젊게 살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뇌는 젊은 시절의 생각과 열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현실의 몸이 따라주지 않을 , 남성들은 당황합니다.

이 시기의 남성들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정서적 혼란을 겪습니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이제까지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용맹한 남성성이 쓸모가 없어집니다. 지금의 정보사회에서는 세심한 여성성을 더 필요로 니다. 이제까지 용감한 군인으로, 산업사회의 역군으로, 꿋꿋이 지켜왔던 남성성의 가치가 줄어듭니다. 이제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여성성을 장착하도록 요구당합니다.

남성 갱년기를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면 좋겠습니다. 갱년기 남성은 한물간 퇴역 군인이 아닙니다.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전역하는, 군복을 벗고 편안한 사복의 민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호르몬의 충동에서 벗어나 어쭙잖은 수컷의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전보다 자아 성찰이 능숙한 정서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겁니다. 이게 남성 갱년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 안 되던 아내의 정서적 변화가 감지되고, 공감되는 놀라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슬픈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중년의 정서를 단지 약해진 남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입니다. 드디어 작은 정서적 자극에도 반응하는 휴머니스트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년간의 독서와 음악감상으로도 이루기 어려운 정서적 성취입니다. 새로운 능력이 갱년기 남성에게 주어졌습니다. 실종되어 가는 근육과 생리적 노화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따뜻해진 가슴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기가 온 겁니다. 남성 갱년기는 우리 인생의 또 하나의 찬란한 시간입니다. 당당히 마주하고 즐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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