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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인간과의 첫 만남

생애 처음으로 아빠 되기

by 김정룡

아기다


긴 기다림이었지만

이렇게 낯선 스킨십은

예상 못했다


몽실몽실한 체온이

가슴에 묻혀온다


부서질까 조심조심

손과 발을 만진다


신기하다

이 작은 인간은

낯선 남자에게도

위협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이 녀석은

처음 본 내 품에서

세상 편하게 잠들고 있다


아무런 저항 없는

이 생명체를 지키기 위해

나는 슈퍼맨이 되어

꽤 열심히 날아다녀야 함을 직감한다


미지의 인간과의

운명적인 조우가 이뤄졌다


평화롭던 일상도

나만의 시간도

위기에 몰린 채로


그 와의 동거가

오늘


시작되었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두려움과 책임이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육아’라는 육체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아내가 하는 일을 좀 도우면 되겠지' 생각했다면, 그건 망상일 뿐이다.


아내의 건강 문제로 3개월 간 영아 육아를 전담해야만 했다. 나의 육아 경험상, 아이와의 스킨십은 아버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엄마는 임신 중에 진한 스킨십을 10개월이나 갖지만,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닮은 낯선 아이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놈의 부성애라는 것이 아이와의 스킨십과, 같이 보내는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아기를 서양식 아기 침대에 혼자 재우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나름의 육아 철학으로, 매일 귀여운 것을 잠들 때까지 품에 안고 있었다. 어느 순간 잠들면, 천사 같은 얼굴에 뽀뽀를 해대고 침대에 눕혔다. 두 아이는 이제는 성인이 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나의 어쭙잖은 육아 이론이 크게 일조했다고 믿고 싶다.

젊은 아빠에게 닥친 문제는 육아뿐이 아니다. 나이가 어떠하든, 아버지가 되어 아기를 안는 순간, 주변으로부터 확실한 아저씨로 불리게 된다. 누구 아빠..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기분이 묘하다. 아이 아빠가 된 뿌듯함과 동시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아버님으로 불리는 이상한 호칭변경 상황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순간 젊은 아빠는 자신이 아버지라는 틀에 갇혔음을 깨닫는다.


이들은 아직 아버지의 역할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아버지 학교를 3년은 다녀야 알 수 있을 법한 아이 교육, 가정 경제, 부부 관계, 가족 친지와의 관계,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 이 모든 것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새로운 함수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아내는 엄마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학교에서 배워 온 것처럼, 능숙하게 아이들을 돌본다. 불공평하다. 엄마들은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을 아빠들은 일일이 배워야 한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체력과 학습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젊은 아빠에게는 스트레스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아보는 촉감은 경이롭다. 살짝만 건드려도 망가질 것 같은 연약함이 느껴진다. 작고 부드러운 손과 발을 보면, 나도 이렇게 작게 태어났을까 생각하게 한다. 그 작은 아이가 내 품에 안겨있다. 나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다. 나를 닮은 구석을 찾아보고, 그 신기함에 뭐라 말을 잊지 못한다. 엉거주춤 아이를 안고, 경이로움과 조심스러움에 엄마에게 아기를 건넨다. 아이를 너무나 쉽게 받아 안는 아내를 보고 혹시나 아이가 다칠까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와의 만남은 젊은 아빠의 본능을 깨운다. 육아 본능이 아니라 보호 본능인 거 같다. 수렵시대부터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그래 이런 건 누가 안 가르쳐 주어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어떻게 하든지, 아이와 엄마에게 따뜻한 음식과 안전한 거주지를 제공해 주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이런 본능이 젊은 아빠들로 하여금, 직장과 일터에서 달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때, 남자들은 비로소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느낀다.


젊은 아빠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아버지가 되어간다. 한편, 집에 오면 아이가 만들어 낸 새로운 집안의 질서에 적응해야 된다. 완전히 낯선 미션이다. 쉽지 않다. 아이와의 만남은 젊은 아빠에게는 일생일대의 대 변혁이다. 그러나 어떡하든 이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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