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버스정류장
지금은 당연한 중앙버스정류장 시스템을 시범 도입하던 시기였습니다. 한창 도로 내 중앙 버스 정류장을 만들겠다고 서울 시내 도로를 건설 현장으로 만들어 뚝딱뚝딱 번거롭게 했었습니다. 동네 분들은 특히 어머니 친구분들은 나이가 있으셨고, 버스를 타시는 일은 빈번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멀쩡한 도로를 뜯어 확장하고, 길을 막고, 콘크리트를 붓고, 하는 공사들은 큰돈만 쓰는 쓸데없는 나랏일이었습니다.
여섯 살 큰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혜화동으로 출퇴근을 했었습니다. 그 길은 늘 막히는 미아 삼거리를 지나야 해서, 그 근처만 가면 없는 길이라 생각하고 눈 감고 꾹 참고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어요. 퇴근길 버스는 사람들과 짐으로 가득했고, 짧은 팔로는 손잡이조차 제대로 잡기 힘들어 낑낑대며 집에 왔습니다. 20년 전에는 버스안도 추웠던 것 같아요. 겨울에 버스 안은 사람이 많아도 추웠어요. 내 기억에는...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매일 늦는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함께 육아를 이어갔고, 그 피곤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지친 얼굴로 집안일을 해야 했습니다.
나랏일은 꽤 오래 진행되었고, 완성 후 그 버스 중앙 차로 시스템은 나에게 하루 왕복 4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을 주었습니다. 몸은 좀 편해졌고 버스에서 소진되는 체력을 집에서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어느 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명박의 쓸데없는 예산 낭비로 국고를 탕진하는 정책에 대해 어머니는 불만스러워하시며 말씀하셨어요.
"왜들 난리야. 잘 쓰고 있는 도로를 다 뜯고 돈을 길에 쏟아부어. 으~구"
"예, 맞아요." 이 대답은 어머니 의견에 곧바로 긍정하는 내 버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며느리 대답은 달랐습니다
"너무 좋아요! 정부가 중앙차로로 바꾼 건 다른 나라를 따라 하려고만 한 것치고는 잘한 것 같아요!"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또 말이 길어지겠다 싶어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그래, 니 좋으면 됐다. 너 좋으면 잘한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누군가가 고민할 때, 힘이 되어주고 싶으면 자주 하게 되는 내 단골 멘트가 되었어요.
나는 그 말이 '너 출퇴근이 힘들어 보였는데 이명박이 돈 들여 깔아줘 다행이다. 너 편하다고 하니 공사 참 잘했네.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로 들렸었고, 어머니는 투박하시지만 힘든 것을 이해해 주시고 든든하게 지지해 주셨고, 나는 어머니에게서 보호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도 저 하늘에서 '니 잘 살면 됐다' 해 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