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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메시지 '나는 좀 힘듦!'

이거 진짜 함부로 들어오는 판이 아니었어!

by 고현

봄은 참 설레지요.
햇살이 어린 연둣빛에 닿으면 이상하게도 옆구리가 간질간질합니다.
따사로운 연노랑 햇살이 또르르 새잎에 떨어지면
뭉클하게도 싱그러워지고
움트임의 몸짓에 경탄으로 입이 벌어지네요.


잠깐 그랬습니다.!

예상과 달리 싸늘한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면
차가운 배신감에 옷을 여미고,
햇빛은 맨눈으로 봄 거리에 나온
준비 못한 자를 잔뜩 화난 얼굴로 선글라스를 떠올리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불만 많은 아줌마로 만들고
찡그려 걷게 합니다.
입안은 까슬까슬해서 뭘 먹어도 쓴맛이 되고
목을 헤집으며 넘어갑니다.
단것만 가려 먹느라 몸은 무겁고,
무거우니 움직이기가 싫고,
운동은 따뜻해지면 다시 하자 미루고,
감기는 물러날 기색도 없이
들락날락 몸을 방문합니다.


내 호르몬은 정보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
뇌로 가는 길이 싱크홀로 폭삭 내려앉았는지,
아니면 내 세포들은 다 느린 것들로 구성됐는지,
새로움에 적응이 굼뜹니다.
또, 면역세포들은 봄에 대한 대비를 안 했는지,
갱년기 호르몬과 추돌 사고가 났는지 갈팡질팡하고,
여성 호르몬은 길을 잃고,
남성 호르몬이 온몸 구석구석에 뿌려지고 있어
길을 못 찾고 우왕좌왕입니다.

으~구
춥고, 쑤시고, 아프고 불편해서
새로운 봄은 싫기도 합니다.

약은 제 일을 했고
다음날 아침에는 활기가 돌았습니다.


오늘 풍경은 통창으로 따뜻한 봄볕이 들어오고,
그 창으로 보이는 광경이 연둣빛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에 드는 스타벅스를 검색했습니다.
가깝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스타벅스로 향했습니다.


2층은 아담하게 넓고, 통창에 햇볕이 부서져 책상으로 떨어지고,
노란 나무 무늬 책상은 단단해 옆 사람의 타이핑 진동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노란빛에 어울리는 사람들의 수다가 떠들썩하게 깔리고,
무엇보다 바깥 풍경으로 햇살이 흐르는 봄의 색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봄에 대한 경탄의 감정과
회복한 몸에 대한 감사와
신에 대한 찬미로
이유 없이 눈물로 흐릅니다.


삶은 다양하게 나와 이어져 있습니다.
이런 여유로움은 아직 나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신림동(참! 외워지지 않는 지명입니다.)
고시촌에 자리를 잡은 지 3개월 된 큰 아들이의 연락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나는 좀 힘듦!”


아!
이건 뭐여?

안부를 묻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좀 힘듦’


신중한 녀석이 끝을 내뱉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이건 뭐여?


이 봄에
'나는 내 시간의 여백을 채우고,
그는 그의 여백을 채우고 있구나!'

엄숙한 기도로 그의 성장을 바랍니다.
'네가 가야 할 길에서
돌부리에 넘어져도 보고,

다른 이들을 앞세워 보기도 해 봐.
하지만 천천히 방향을 잃지 않으면
네가 원하는 목적지에 닿아 있을 거야.'
당연한 말밖에 못 하는 지적 한계에 화가 나지만 살아보니 다 이렇더라고요.


요즘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합니다.
어른들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부모는 독립 과정을 지켜 볼 수 밖에요.


큰 녀석은
힘듦에 취약한 나만 닮은 건 아니니 다행입니다.
제 아버지의 유전자가 섞인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단단하고 성실하게,
낙천적이며 유쾌하게,
어렵지만 이 과정을 이어 가길 바랍니다.


엄마에게 젊은 아들이 힘들다고 말해 주니 고맙고,
응원할 수 있게 해 줘 다행입니다.



상현아!
인간은 시작을 하면 그 과정에서 좌절을 겪어.
시간을 헛되이 썼다는 절망감, 노력과 결과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좌절감, 열정과 체력 사이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편감,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허탈감. 이런 감정들이 과정들마다 지뢰처럼 깔리지.
그런데 이런 감정은 당연한 거 아니니? 남들이 이룬 결과에서는 부정적인 게 없이 순수한 행복으로만 보여.
이룬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잘 숨기고 보류하는 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그들은 부정적 감정을 잘 다루는 거야.
현재의 성공은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라고 위로하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라고 격려하며, 타인과의 비교를 피하고 '어제의 나보다 발전했다' 혹은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예측 불가능한 감정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함으로써 얻은 결과인 거야.
인생의 여정은 감정을 훈련하는 과정들로 이루어져.
그 훈련은 결과에 상관없이 성숙이라는 매달을 얻게 해. 고작 '성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성숙은 차곡차곡 쌓인 감정 훈련이므로 미래에 단단한 성공을 보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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