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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Jul 22. 2023

오늘의 최은영

정각에 한 번, 20분 뒤에 또 한 번, 알람이 두 번째 울릴 때쯤 간신히 눈을 뜬다. 아침에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던가, 평생 아침형 인간이 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끌벅적한 노래를 찾아 틀어놓는 것이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힘겹게 몸을 일으켜 잠시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반쯤 감긴 눈으로 잠에 취해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향한다. 찬 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에야 의식이 돌아온다. 씻고 나서는 눈에 띄는 대로 혹은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찾아 입고, 화장이라기엔 너무 약소한 화장을 한다. 수분크림, 선크림, 아이라이너 정도. 좀 더 여유가 있는 날에는 눈썹도 그리고 아이섀도와 틴트도 바른다. 옛다 기분이다 하는 느낌으로. 그리고 아침밥을 먹는다. 메뉴는 그날그날 다르지만, 보통은 반숙 계란 프라이와 토스트 한쪽, 사과 두세 쪽을 먹는다. 식사를 마칠 때쯤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양치를 하고 전날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쓰고 보니 출근 준비하는 모습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생기발랄하게 상쾌한 아침을 맞고 싶지만 도무지 잠이 안 깨는 걸 어떡하리.


20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직장에 도착하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픽업한다. 잠 깨는 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쓴 맛만 한 것이 없다. 바닐라 라테의 달달함도 좋지만 왠지 아침부터 마시면 당뇨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목을 축이며 해당 층으로 이동해서는 옷을 갈아입는다. 사실 화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갈아입으면서 화장이 옷에 묻어나는 게 싫어서다. 머리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흘러내리지 않게 일명 똥머리로 질끈 묶어버린다. 예약표와 차트를 리뷰하고 시간이 남으면 옆자리 동료들과 수다를 떤다. 근무가 시작되면 전투하듯 사력을 다한다. 그래서 퇴근할 때쯤엔 방전상태다. 하지만 막상 환복을 하고 나면 다시 깨동깨동해지는 건 왜일까.


직장인 모두가 그렇게 느끼겠지만, 퇴근하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이다. 적당히 열심을 더해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얻는 자유라 더 꿀맛이다. 퇴근길 노을 지는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퇴근 후에는 특별한 일 없으면 운동, 공부, 아니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의 경우 나의 하루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서 요즘은 직장 밖에서의 삶을 더 가꾸려고 노력 중이다.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감정의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자산만 분산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위, 아래, 양 옆으로 잘 자라 균형이 맞는 나무가 비바람에도 끄떡없듯이 일, 운동, 가족, 친구 외에도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배우고 싶은 것들로 일상을 채워야 한다.


내가 첫 번째로 선택한 일은 나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일이었다. 예전처럼 또렷한 생각을 하고 몰입을 하는 게 어렵지만 내 안의 감정과 생각들을 쏟아내고 나면 좀 산뜻하고 가볍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단 머릿속에 헝클어져 있는 생각이라도 무작정 기록하기로 했다. 그렇게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을 어디부터 어떻게 손봐야 할지 처음엔 막막하지만 조금씩 다듬다 보면 윤곽이 조금씩 보인다. 시간을 두고 다듬고 고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얼추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된다. 어휘도 부족하고 작문도 어설프지만 그래도 이 과정이 참 경이롭다.


"당신이 당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슬픔은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어깨에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힘을 잃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애도는 슬픔을 향해 가는 의도적인 행위입니다." - 린 휴즈


글 쓰는 일 외에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떠올려보았다. 나는 사계절 중 가을을 좋아한다. 꽃을 좋아하고 노을, 별, 바다, 야경 보는 것을 좋아한다. 수족관 가는 것을 좋아하고 책이 좋아 서점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만큼 좋은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좋아한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를 좋아한다. 친구,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경복궁을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한다. 취향이 담긴 선물을 좋아한다. 첫눈 오는 날과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다정다감한 따뜻함을 좋아한다. 적어놓고 보니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새삼 살면서 사랑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꾸준히 나를 기록하며 머릿속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 체력을 단련해 볼 예정이다. 헬스도 좋고, 요가도 좋고, 서핑도 좋겠다. 그다음엔 그림이든 요리든 여행이든 하나씩 하나씩 삶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 도전해 보려 한다.


”넌 마음도 강하고, 멘탈도 강하고 뭐가 닥쳐와도 잘 이겨내니까. “

“퓨. 맨날 이렇게 쉴 새 없이 흔들리는데 뭐가 강해”

“진짜 강한 사람은 강해 보이지 않아. 네가 말해는 강함, 사실 네가 가지고 있어.”

“유리멘탈이야.“

“유리인데 한 100겹인 유리야. 금은 막 가는데 깨질 듯 말 듯 안 깨지는. 넌 강화유리 같은 사람이야. “


친구의 말에 아 정말 나는 강화유리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법이다. 열심을 다하고도 후회로 얼룩진 지나간 시간들은 나를 무너뜨렸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우울하고 불안해도 행복할 수 있음을 배웠고, 그런 순간들도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그럴 땐 이제 담담하게 또 덤덤하게 내 가슴에 들려줄 말이 있다.


Ces’t la vie. That’s life.

(그것이 인생이다.)


최은영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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