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 생각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나르시스트 가족이였나?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간단하다.
더 나아진 내 모습을 만나기 위해, 나를 헤집어 놓았던 그 내면아이에게 실컷 울음을 터놓고 울 수 있고,
그때의 나를 지금 내가 보듬어 주기 위해 회고를 일삼아야 한다.
또 대상의 장단점을 파악해. 단점은 닮지 않기 위해, 나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한 장점은
나를 존중을 위해 한 마디로 남기고 싶다.
아빠 하면 생각나는건
1. 말가짐.
2. 빵.
3. 생각보다 약한 아빠.
안타깝지만 나는 K-장녀였고 , 생각 나는 가정은 폭행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이다.
(너무 적나라게 나를 드러 내는게 맞지만 과감히 해야한다. 글로서 나를 인식시켜야 한다.)
그 당시 폭력은 당연한 가정이였고,
말가짐은 뻔하게 갖은 욕이 난무했다.
어렸을때부터 이혼이라는 말을 달고 살아, 사랑받아야 하는 나는 계속 불안함을 가지고,
아빠의 폭력은 엄마가 나에게 행하는 폭력이, 나는 내동생에게 폭력을 가했다.
(아직까지 여동생을 보면 미안함에 죄책감을 가져 더 말을 안하는 것도 있지만, 최근 애기를 낳은 동생이라.
조카에게 이것저것 사주고, 여동생에게 화장품을 주는 등 미안하다는 말과함께 주고 있다.)
말가짐. 나도 모르게 이 환경에 노출되서 아빠를 미워하고 나도 상대방에 험한 말도 하기도 한다.
이 모습을 내가 죄악시 생각하던 모습이라 어쩔 줄 모른다. 이 모습을 이 회고록을 다 쓰면 어느정도
나아지길 바라는 모습중 하나. 인정하자. 아빠의 모습을 닮았다. 보고 배운게 그것밖에 없다는 변명이지만,
나쁜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내 자신도 너무 밉다.
아빠는 왜 그런 욕을 할수 밖에 없었을까?
그 시절 이혼이라는건 드물었고 이혼하고 엄마가 아닌 아빠의 아빠 손에 컸고, 아빠의 아빠 멋쟁이 때문에
집안 살림은 다 하락곡선 돈은 아빠가 벌어서 감당해야 했었다.
초등학생이였던 아빠는 아양도 한껏 못부린채 돈 버는 기계가 되었다.
사랑도 못받은 아빠. 그러던 아빠의 엄마는 아빠의아빠가 죽은 뒤 돌아왔고, 급격히 아빠의 몸상태는 좋지 않게 되어 모든 설움과 분노는 온전히 엄마 몫이 되었다. 엄마버전은 다음 엄마편에 써야지
그렇게 상대방에 대한 미움 분노 아픔을 쏟아 내보지 못한채 버려진 아빠.
그런 아빠가 우리는 지키는 방식은 다음 이어질 빵이다.
아빠는 일반 사무직이셨다가 빵을 배워 제과제빵사였다.
전남에서 올라온 아빠는 제과제빵사 였을 때 서울로 상경해온 엄마를 만나 일을 하였다.
보고 배운건 ,, 빵을 만드는 게 전부인 우리 아빠.
그래서 미안함도 사랑함도 우리와의 추억을 만드는 건 빵가게에서 였다.
같이 아빠랑 빵을 만들기도 하고,
추운날은 급하게 샤워한 뒤,아빠가 드라이기 대신 화력 쎈 불에 머리카락을 말려주기도,
케이크가 안 팔린 날엔 그거 가지고 집에서 생일 축하도 하고,
또.. 휴일 없는 빵가게다 보니 우리는 어디 놀러간 기억도 없고.
참 빵가게에서 포장하고 나오고 계산도 꼬꼬맹이인 내가 하고
이게 내 추억이네.
글을 적으면서 펑펑 운게 얼마만인지 아픈 상처를 마주해보는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며. 서둘러 2편인 엄마 편으로 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