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좋아해. 너무 좋아해.
수신자 불명의 사랑 고백을 애처롭게 읊었다. 겨울은 사랑을 해 본 적도, 사실상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사랑을 말하고 싶어 했다. 사랑 그깟 거. 항상 그렇게 말해 왔건만.
언제나 그랬다. 우정도 사랑이야. 이건 사랑이야. 사랑이다.... 눈빛으로, 행동으로 사랑을 말했다.
그러나 확실한 언어가 필요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매일 기다려요. 진심을 알아들을 수 있게끔 전할 말이. 그래서 허공에 사랑말을 흘렸다.
겨울은 눈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눈이 오는 겨울. 이름부터 겨울이니 그럴 만도 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에는 옷을 껴 입고 얼음장이 된 손을 비빌 수 있어 좋아했고, 눈이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 쌓인 눈을 밟으면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겨울을 사랑했다.
사실상 차가울 대로 차가워진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게 진짜 이유였지만. 그 순간이면 평생 안고 살던 외로움이 잠시 한 발짝 물러나는 것 같아서.
그날도 인터넷에 들어가 포스트를 읽었다. 주제는 사랑. 허구의 사랑은 이토록 아름답다. 주인공이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어도 결국엔 사랑으로 다 이겨내는 이야기들 뿐이니까.
그걸 읽고 나면 마치 자신도 사랑을 한 것처럼 가슴이 몽글거렸다. 어떨 땐 무의식적으로 웃다 헛기침을 했고, 또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듯 눈물을 흘렸다. 너무 아픈 사랑을 읽으면 왼쪽 가슴을 퍽퍽 치기도 했다.
전부 읽고 난 뒤엔 역시 사랑을 뱉었다.
겨울은 겨울을 원망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모두를 향한 사랑은 겨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모두가 등을 돌려도 곁을 지켜 줄 단 한 사람, 그게 연인이라고 했던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떠나지 않을 거란 확신만 있다면.
겨울은 사랑을 모른다.
사랑해 줄 인간이 있다면 두 팔 뻗고 환영이었다. 자신이 깎여 나갈 것을 알면서도. 그래 놓고 사랑을 바라다니 웃기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지켰다. 끝까지 바보 같지 않은 척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겨울을 좋아해 주었으면 바랐다. 혹은 그 이상으로. 그러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심하고 움츠러드는 짓을 반복했다. 겨울을 사랑할 이는 없을 거라 세뇌했다. 아홉 번의 승낙보다 한 번의 거절이 무서워서. 아무도 바라보지 않기 시작했다.
겨울이 사랑할 수 있는 건 계절뿐이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겨울을 맞이해 줄 계절을. 포근하고 차갑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자연은 거절하지 않는다. 전부를 받아내고도 내어 주었다.
참으로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