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된 만남
나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 숨을 헉헉대며 정상까지 올라 땀으로 젖은 등이 맞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만난 코끝 닿을 것 같던 파아란 하늘을 잊지 못한다. 산이 좋았던 건 결국 산을 오르는 과정과 그 후에 얻는 장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산을 오르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온다. 그 유혹을 넘기며 묵묵히 자신과 싸워가는 길이 좋았다. 나에게 인생은 홀로 산을 오르는 과정이었다. 단 한 번도 나의 노력 없이 산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승강기를 타면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예수님 품에 바로 안길 수 있겠다며 즐거워했는데, 끝까지 숨이 차오를 때까지 고생하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는 나다. 한국을 떠나온 순간부터 나는 산이 그리웠다. 지금도 나는 언제나 산을 다시 오르게 될 날을 그린다. 침묵 중에 스스로와 싸워가며 고단히 오르던 그 산이 아니라,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말벗하고 잠시 쉬어도 가는 그런 산에 오르게 될 날이 올까.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도 가끔은 넘기 힘든 산을 만난다. 오늘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 또한 가라앉혔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그냥 다가올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녀를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긴장되는 만남이 있는 반면에, 과거의 여정에서 상대에게 잘 보이지 못해 긴장되는 만남도 있다. 오늘의 만남은 후자였다. 어쩌면 우리가 함께 한 오랜 시간만큼 가장 편안하고 좋은 만남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오해를 풀기엔 너무 많은 이들의 말들이 얽혀 있었고 시간이 꽤 흘러와 있었다. 지금에라도 그때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우리였지만, 우리의 눈물이 지난 상처를 다 씻어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작은 것에도 화들짝 놀라곤 한다. 섬세하고 예민해서 쉽게 상처받고 무너진다. 날카로운 종이 한 장에 손끝을 살짝만 베어도 눈물 핑 도는 나는 겁쟁이다. 누군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거나 흐느껴 울고 있으면 내 존재가 온통 그에게 향해 버린다.
그때의 나는, 조금 더 어렸던 나는, 그녀의 불안에 무서웠던 것 같다. 처음엔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닐까 반문도 해봤지만 알 턱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멀어지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웃어야만 함께 웃는 그런 불안정한 우리의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고통이 얼마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행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의 눈을 보고 내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택했던 방법이 틀렸었나 보다. 나의 지향이 어찌 됐든 그녀 또한 나로 인해 많이 아프고 외로웠다고 한다. 오늘에서야 우리는 그 지난 이야기를 꺼내고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와 그녀가 더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하는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는 점이었다.
작은 진심이면 된다고 믿었던 순간들에 다시금 의심이 더해질 때가 있다. 오늘과 같은 날이다. 주님 앞에 꺼내 보일 것은 이 마음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내 사랑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순수했던 지향이라는 게 진정 존재했었는지 자신이 들지 않는다. 모든 건 나의 허상이었을까. 아니 허상은 지금 나 스스로에게 갖는 의심인 것일까. 이렇게 나는 또다시 의심을 키우고 또 키워 그 커다란 입에 나를 먹잇감으로 던져 놓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은 그 의심을 키우는 일마저 피곤하게 느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서울에 살 때 지하철 탈 일이 많았는데, 나는 에스컬레이터 대신 늘 계단을 이용했다. 나의 기도였다. 조금이라도 전력을 아껴서 지구를 살리고 싶은 나의 소박한 기도였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즐거웠던 그런 때가 있었다.
내 마음에도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오늘은 편안한 길을 택하련다. 그 깊음의 스펙트럼을 힘겹게 올라 기쁨으로 가느니 손끝으로 버튼 하나 눌러 최고층에 오르련다. 필요한 전력은 주님께서 지불하실 것이다. 내 무게를 짊어지느라 지구가 힘들다면 그 또한 주님께서 보살펴주실 것이다. 모든 짐 진 자 당신께로 초대하셨으니 그분의 능력을 믿어보련다. 그러나 그 믿음을 더하여 주는 일조차 당신께 달렸다. 그 믿음으로 구겨진 내 마음을 주님께 드린다. 텅텅 비어 가난한 마음을 그분께 드린다. 그 마음을 애초에 주님이 소유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숨조차 쉬지 못했으리니, 그저 감사한 마음만을 키우련다. 그 감사함이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친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