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을 택할 자유

나라면 절대로 취하지 않을 것

by 어엿봄

그야말로 어딜 가나 사람이다. 대희년의 로마는 평소보다 훨씬 더 북적거린다. 한 박자 더 빠르게 그리고 한음 더 높게 부르는 축제의 선율이 도시 전체를 흐르고 있다. 단체로 순례를 오는 경우가 많아서 길 가다 온갖 종류의 모자, 스카프, 가방 등등을 보게 된다. 주로 눈에 잘 띄는 색이다. 눈에 잘 띄는 색이지만 나라면 죽어도 취하지 않았을 색깔들이 더러 있다.


한 번은 수도자들이 단체로 파란색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아무리 파란색에 미쳐있는 나라지만 소화할 수 없는 아니 싫은 색감이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런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다니!!" 또 한 번은 주황 형광색 모자를 쓰고 있는 신자들을 만났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런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다니!!!"

글쎄.... 함께 쓰고 다니라고 하면 쓸 용기가 생길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사 내 마음에 쏙 드는 하늘색이어도 나는 쓰지 않을 것이다. 단체의 소속감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가이드하는 입장에서는 이탈자를 방지하고 또 금세 찾기 위해서 외적인 표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싫다. 나를 묶어 내는 것들이 그냥 싫다. 아니, 그냥은 아닐 텐데. 나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은 것이다. 나의 정체성에 내가 소속된 집단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색깔에 갇혀있는 게 답답하다. 홀로 나만의 색깔로 존재하고 싶은 건 큰 욕심일까?


강의실에서 편의상 주로 고정된 자리에 앉곤 한다. 큰 강의실에서 나는 혼자 떨어져 앉는 것도 괜찮은데 가끔 옆자리를 채워주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앉아주는 친구들이 있다. 불편했다. 하지만 선의가 있었음을 알기에 참을 수 있었다.


지난 여성의 날에, 여자 동기들이 모여 앉자며 내 자리를 남겨두었을 때 나는 그냥 내가 선호하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를 구속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았다. 친교의 의미가 더 큰 초대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런데 내 안의 어린아이가 굳이 그 좋은 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개인적인가?' 나의 대답은 '여성이라는 색깔에 꼭 함께 묶여 있을 이유는 없잖아? 그렇다고 성별을 바꾸자는 건 아니지만.'이었다.


- 여성

- 40대

- 한국인

- 천주교 신자

- 지구인

- etc.


소속을 찾자면 끝이 없다. 우리는 뭐 하나라도 비슷한 걸 찾아서 꼭 같이 묶는다. 공통점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약간의 채도와 명도가 달라지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랏! 너 지금 색이 연하잖아 투명하잖아. 좀 더 진하게. 우리처럼!"


내가 바라는 건 말이다. 그저 내가 원하는 빛깔을 택할 자유다. 취하고 싶지 않은 건 취하지 않을 자유다. 물론 공동선을 위해 내가 원하지 않는 색깔을 입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저도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원하지 않는 것을 취할 자유. "난 너와 같은 파랑이 싫지만, 오늘은 너의 길을 함께 달리고 싶어. 마치 너와 한 사람인 것처럼. 그렇다면 이 파랑도 괜찮겠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그런 거였다. 불편함을 기쁘게 감수하고 내 의지를 꺾어 나아가는 삶. 그런데 그 의지를 꺾어야 한다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나로 자유로울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하늘색 펜을 잡고 하늘색 공책에 글을 쓰고 또 하늘색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시간이 좋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냥 그 작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다.


"난 사실 이 연하고 투명한 빛이 마음에 들어. 너와 완전히 같은 색은 아니지만 나는 이 색이 예쁘고 좋아. 그냥 이 가슴 설레는 기분을 마음껏 느끼도록 나를 그냥 내버려 둘래? 내가 선택한 이 모든 것이 내 눈에 진정 사랑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으니 그냥 혼자 있게 시간을 줄래? 나를 휘휘 감고 있던 너희들을 색깔을 다 던져버리고 나는 내 온몸으로 바람맞으며 훌훌 날아갈 테니 그냥 이런 나의 빛깔도 곱다고 말해 줄래?"


나의 빛깔이 수많은 모래알에 묻혀도 괜찮으니 그렇게 존재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 모래알의 개수와 개별이 지닌 빛깔마저 알고 계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시길 바란다. 그 넓고 크신 하느님 안에서 보편 교회의 소명을 사는 일인이 되리라. 교회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으리라. 나의 그 여린 빛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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