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되어 준 나의 선생님들

스승의 날

by 어엿봄

아주 아주 오랜만에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내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한 번도 선생님을 찾지 않았다. 늘 감사한 마음과 그리움 가득했지만 언젠가는 찾아뵐 날이 올 것이라며 미루기만 하던 나였다. 어제 문득 선생님이 생각나서 이번 스승의 날엔 꼭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고3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을 마주할 기회가 더 많았고, 선생님의 열심한 진학지도로 대학 동문이 되어 선생님과는 더 가까워졌었다. 여름 방학 이후 떨어진 모의고사 성적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선생님은 내게 희망학과를 바꿔서 지원하기를 권유하셨다. 그건 비단 내가 소유한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너 같은 사람이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 한 번도 교사의 길은 꿈꿔보지 않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나를 그렇게 봐주신다니까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그리고 어쨌든 선생님이 졸업하신 그 대학에 나도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수능은 보기 좋게 망했다. 그렇지만 운이란 게 있는지, 미리 지원했던 수시 2차로 다행히 나는 그해에 대학생이 그리고 선생님의 동문이 되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참 많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과외 수업을 하면서 용돈을 충분히 벌었고, 또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기쁨을 충분히 벌었다. 하지만 통장 잔고가 늘 빠져나가듯 나의 기쁨 역시 어딘가 부족했다. 나는 더 행복하고 싶었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었다.


시험 준비도 하지 않고 바로 나는 교사의 길을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결연하게 선생님께 내 뜻을 말씀드린 그날, 선생님은 골목의 작은 식당으로 나를 데려가 삼겹살에 소주를 사주셨다.


"이 세상은 말이야.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하지만 교사의 세상은 다르지. 교실이 바로 교사의 세상이다. 거기에 있는 내 학생들이 바로 내 세상이 되는 거야. 바꾸지는 못해도 나는 그들에게 내 꿈을 가르칠 수가 있어."


나는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과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오늘 나의 문자에 선생님은 답을 주셨다. 연락이 없어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종종 생각하곤 하셨다고 말이다. 깊은 그리움이 밀려왔다. 꿈을 꾸던 시절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나의 꿈을 아니 나 자체를 믿어주고 보듬어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6-20)"라고 말씀하신다.

강론 때 신부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크고 위대하단다. 마치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가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듯이 우리는 그분의 그 사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놀라운 사랑이기에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다른 사람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내가 상상하는 아름다움보다 더 큰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내가 느끼는 사랑도 이토록 좋고 내가 상상하는 아름다움도 그토록 좋은데,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 작은 씨앗의 소중함을 알아본 아름다움과 그를 보살펴준 사랑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 이상으로 크다. 그렇게 나의 대지는 나를 품고 나를 길러주고 있었다. 돌아보면 나에겐 참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다. 나에게서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해할 수 없는 그 큰 사랑에 일렁이는 감사함을 나는 계속 키워나가리라는 것이다.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진다지만, 나에게 스승의 사랑과 은혜는 분명 땅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나란 씨앗을 품어주고 길러준 땅과 같았다. 나라는 어린이가 넘어져 울 수 있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는 그런 땅과 같은 선생님들이 있어서 여태껏 걸어올 수 있었다. 그들의 세상에서 소리 지르고 뛰어놀며 마음껏 자랄 수 있었다. 그 땅에 감사하다. 그들에게 직접 가닿지 못할 감사함마저 하늘로 올려 보낸다. 하늘의 작은 별이 되어 반짝일 나의 이 마음에 어디선가 나를 기억해 주고 또 응원해 줄 그들이 미소 짓길 바란다.

keyword
이전 13화좋은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