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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Apr 22. 2024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2024년 4월 14일

어제 저녁,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던 중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틈이 나면 내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척 마음을 떠 보았다. 한 달 전 비로소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뒤로 이런 일이 잦아졌다. 마침 토요일이라 불안했다.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수화기 너머 어머니는 말이 없다. 대신 입술 안에서 맴도는 것들이 언어를 이루지 못하고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예배 출석하라고?"

"응."

나지막하고 처연한 목소리였다. 나는 불쑥 화가 솟구쳤지만 숨을 가다듬고 최대한 인자한 말투로 말했다.

"집사람이 가서 대신 인증할 거예요. 걱정 마요. 괜히 마음 쓰지 마시고 신나게 드라마라도 보세요."

"그래."

그러고선 수초 간 또 말이 없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을 했는지,

"시험은?"

다시 화가 솟구쳤다. 나는 가만히 서서 체내를 휘감는 화를 그대로 두었다. 이대로 입을 여는 것보다는 잠시라도 멈추었다가 화를 흘려보낸 뒤에 입을 여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예배를 안 가는데 무슨 시험을 봐요."

"인시센에서라도 시험 보면 안 될까?"

빠져나간 줄 알았던 화가 다시 심장을 향해 몰려오는 듯했다. 그래도 아내와의 산책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문답 보내주세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은 편안해진 듯했다. 전화를 걸었던 목표를 달성한 것이리라.

신천지 이야기만 나와도 진저리가 난다. 어머니께 전화가 오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고 몸이 뻣뻣해졌다. 그래도 꽤 사이가 좋았던 모자지간이었는데 말이다. 전화를 끊고 아내를 향해 힘껏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내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


아내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시험이 있는 날에는 커닝페이퍼를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쓴다. 아내는 더 이상 시험을 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20년을 넘게 신천지에서 시험을 봐 왔기 때문에 답을 외우고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반복되면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지칠 대로 지친 까닭에 그저 하는 시늉만 하기로 한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신천지에서 참 오래도 있었다. 일전에는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을 '신앙'이라고 통칭해서 불렀으나 이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곳에서 했던 일들은 성경을 연구해 한 사람을 신으로 만들어 추앙하고, 그것으로 세뇌를 받는 것과 세뇌를 하는 것이었다.


신천지는 1990년 시온기독교신학원(現 시온기독교선교센터)을 개원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신학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강사들은 신도들과 수강생을 교육하고 관리했다. 강사를 교육하는 교육강사를 세우고, 7명의 교육장, 그리고 지파장과 교회담임이 모든 교육의 책임을 갖는 구조였다. 사당동을 기점으로 전국에 신학원이 생겨났다.

세 단계로 구분되어 있는 신학과정은 교육의 성과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시험을 택했다. 이 시험은 수료의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며, 여러 번 개정되어 왔다. 말로는 수료 100문제라고는 하지만 한 문제 안에 소문항 여러 개를 넣어 상당히 많은 양의 문제로 구성된다. 많을 때는 500여 문항 적을 때는 300여 문항이었다. 90점 이상 획득해야만 수료의 조건이 되었는데, 노인들이나 학습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와 답을 미리 알려주고 외워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을 채택했다.

수료시험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필독서 시험, 전성도를 대상으로 한 인맞음확인시험, 행정부서 서무들을 대상으로 한 서무시험 등 여러가지 형태로 된 시험이 존재했다. 그러니 교역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도 시험이 능력 판가름의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여러 방면의 조건들을 살피기는 했지만 실제로 교역자가 되려면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시험을 잘 봐서 임명된 교역자가 고득점의 시험점수가 수료 기준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시험 점수를 높이는 형태의 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이 수료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고 나면, 거의 매달 고득점의 시험을 요구하는 교회로 입교되는 것이었다. 어느덧 신천지 신도들에게 시험은 신앙의 잣대가 되었고 고득점의 시험점수로 자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시록 7장에서는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신천지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가르친다)을 친다고 한다. 그리고 열두 지파에는 각 일만 이천 씩 인 맞은 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신천지 신도들에게는 집착할 수밖에 없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신천지의 교역자라면 자신이 인치는 사명을 감당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신천지 교리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것을 가르치는 행위 자체를 인을 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신도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수강생 시절에 인을 맞았다고 생각을 한다. 이는 신천지에서 제작한 계시록 드라마에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의인화된 천사가 사람들의 이마에 인을 직접 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인을 맞는 과정은 신천지에 입교한 뒤에도 시험으로써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신천지에서 시험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했다. 지켜본 바 신천지의 총회장은 창의력이 부족한 편이다. 대체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수습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하위 조직에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 그것을 차용한 뒤 마치 신의 듯인 양 공표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 되고, 신도들은 곧 총회장의 뜻이라 받아들인다. 그 과정은 강사들의 반복적인 교육으로 이루어지며 신도들은 세뇌된다.

신천지에서 벌어지는 굵직한 사건들은 신천지의 시험문제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만국이 와서 경배한다는 성경 구절이 이루어지는 실상에 대해 신천지에서 주도했던 기획행사 평화만국회의를 답으로 지정하고 외우게 하는 식이다. 이는 신도들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고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방식을 극도로 혐오했다. 신천지의 실상은 지난날들의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다가올 날들의 것들은 대부분 빗나갔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답으로 외웠던 내용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문제조차 거론되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신천지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시험을 본다. 한 때는 외워서라도 봤던 시험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 휴대폰 화면을 열어두고 문답을 그대로 옮겨 적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오래전 신도들을 교육할 수 있던 입장이었을 때, 시험으로 신앙을 평가하는 형태를 비판한 적이 있다. 이것으로는 '인맞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으나 완전히 묵살된 적이 있었다. 신천지는 오랜 시간 지독한 순위평가를 지속해 왔으며 교역자들은 속한 교회의 순위가 하위에 배치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교회담임과 지파장의 실력은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갈렸으며 하위권에 배치되어 있는 교회담임과 지파장은 교체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 가르치는 자들도 배우는 자들도 시험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험은 결국 신천지의 총회장을 신으로 입증하고자 나열한 교리를 다시금 상기시키기 위한 그들의 수단에 불과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신천지에서 '인맞음'의 실체를 약간은 불분명하게 둔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험이 곧 '인맞음'의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확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시험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정도다. 가끔은 "선생님(신천지 총회장)이 옛날 분이니까 이런 걸 좋아하시잖아" 따위의 말로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계시록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으로도 말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불분명하다(이에 대해서는 다시 다루겠다). 아마도 '인맞음'을 천국에 가는 조건 중에 하나라고 가르치기 때문인 듯하다. 결과가 눈에 보였을 때 그것이 천국행의 여부와 직결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들은 언제든 뒤집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


어머니가 아들의 예배 출석과 시험 응시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어머니 역시 신도들을 교육하는 교역자로서 직책을 수행하는 중이다. 어머니도 한 때는 아들의 신천지에서의 행적과 신앙을 자랑스러워했으나 이제는 부끄러워 숨기고 싶어 한다. 나는 신천지의 교리가 틀렸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신천지의 총회장은 계시록의 이긴자가 아니다. 이 말을 어머니에게 했을 때 어머니의 급격하게 서글퍼진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것'이라도 해달라는 어머니의 요청을 수락한 것이다. 나는 심히 고통스럽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수요일과 일요일 전후에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는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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