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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 Jan 07. 2024

개를 키우면 일어나는 일 1-14

개를 키우는 자세 1

보험사 직원은 매우 형식적이었고 나의 그간의 억울하고 부당했던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겐 당연한 업무처리였다. 

그동안 있었던 개를 동네에 함부로 풀어놓았견주의 무분별한 사육행태와 그로 인해 벌어졌던 여러 갈등과 마찰, 그리고 결국 사고로 귀결된 현실이 그들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었그저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직종에 충실하게 보험 처리만 해주면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건은 진심을 다해 설명했던 나의 정성이 무색하게 전후사정이 쑹덩쑹덩 잘려나가고 오직 발생시점 딱 그 순간만으로 초단순하게 조각되어 버리는 것을 보며 허탈했지만 그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힐 의무가 없는 단지 배상만 하면 되는 보험사이지 경찰이 아니라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을 짐짓 상기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도 사건발생시점 딱 그 순간....

만 놓고 본다면 난 남의 사유지에 무단 침입하여 그 집개에게 물린 사람일 뿐인 것이다.  

이게 과연 진실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이 정말 이렇게 사건진상과는 멀게 엉뚱하게 처리되어 버려도 되는 문제일까?


그런데 그 보험사직원은  이상한 걸 물어왔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 개가 대체 왜 물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마치 일말의 의심과 기대하는 답이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왜 이런 난데없는 질문을 내게?  

의아했지만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생뚱맞은 질문이고 아니 그보다 내 개도 아닌 남의 개가 물었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것이며...


남의 개가 물었는데 피해자가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묻는 것인가? 


이미 당시 목줄을 풀어 산책을 하던 그 개의 공격을 당해 간신히 피한 후 여러 번 있어왔이런 위험한 문제들을 고지하러 갔다가 목줄을 잡지 않고 문을 열어 튀어나온 개에게 물렸다고 당시 정황설명을 소상히 다했는데 그것으로 미루어 그 개가 문 이유가 짐작이 안 된다는 것인가?


어찌 되었든 개의 의도를 사람의 인격 수준까지 존중하려는 태도는 그런대로 바람직하다 하겠으나 무엇보다 오래 고통받다가 끝내 물린 피해자의 마음은 이해하려 지 않고 잘라내면서 사건당시 사실만을 사무적으로 요구하던 보험조사직원이 갑자기 인간적이고 세심한 동물애호가인양 물 수밖에 없었던 그 개의 불가피했던 마음을 참작하려 물린 당사자에게 이유를 묻고 있다는 것은 뭔가 주객이 전도된듯한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상당히 무례한 일이.


난 나를 문 그 개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개가 나를 물게까지 오랜 기간 조짐을 방치하고 키워간 견주이자 보호자의 전적인 잘못이고 책임이라는 게 나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개의 잘못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보호자가 지는 게 맞는 일이다.




어이없는 질문에 막연히 나한테 우리 개들 냄새가 나서였겠지요? 하고 어리숙한 답변을 하고 나니 명확해지는 게 있었다.

그분이 평소 한결같이 하던 그 소리가 이 보험사직원의 입을 통해 데자뷔 되었다는 사실이다.

개만 사유지에 놓고 왕래하던 그분은 사유지 근처를 오지 말라고 부탁했음에도 내가 산책한답시고 일부러? 다니면서 자극하고 약 올려와서 자신의 개가 참다 참다 화가 나서 물었던 것이라고 그 보험사직원에게 말했을 것이 분명했.


처음 시작은 어느 날 풀려서 내려오던 그 집개가 나와 우리 개들에게 덤벼들다 토리에게 목덜미를 단방에 물려 제압당했던 일이 있었는데 이일을 계기로 원한을 품은 건지 다니던 산책길에서 보이면 제가 잘못했던 것은  모르고 더욱 심하게 짖고 위협해 왔지만 견주가 제대로 통제하는 걸 본 적이 없었 오히려 개를 수시로 풀어놓고 이용해서 사유지를 지키려 해 왔다는 게 내가 본 가감 없는 사실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도외시하며 내가 본인 개를 약 올려와서 물렸다고 얼토당토 하게 말했을 테고 그 직원은 보험가입자의 주장을 먼저 듣고 믿고 내가 나의 과오를 자백? 하고 책임을 시인하는 대답을 듣고자 가입자를 비호하는 그런 질문을 해왔던 것이다.


그 개가 나를 문 이유는 평소 훈육하지 않고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보호자의 무개념 때문이지...

내가 그 개가 이 동네로 오기 전부터 매일 해오던 나만의 산책코스를 매일 지나다녀서가 아니다!!!


늘 하던 산책길불순한 목적을 갖고 지나다니며 의도적으로 개를 자극했다고 모함하는 것도 모욕적이고 화나는 일이지만 개 두 마리를 살펴가며 나의 마음을 정화해 가기도 바쁜 산책길에서 남의 개를 약 올릴 필요나 겨를이 있을 수도 없고 그랬다고 억측하는 그 발상도 너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며 아마도 그분은 본인 수준에서나 했을법 일을 한심한 줄도 모르고 보험사직원에게 편들어주길 바라며 입 밖으로 내뱉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책임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역시 또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파렴치한 모습에 아니나 다를까 하며 실소가 나왔다.




그분 사유지 뒤로는 단독주택 네 채가 있다.  

그중 사유지 바로 옆 길건너 토르견주분은 어느 날 약간 상기돼서 내게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며 알려왔.  다음 주쯤에 3개월 된 순종 진돗개를 지방에서 데려오기로 했다는 뜻밖의 희소식에 너무 반가웠 미래지만 한동네에서 같이 산책할 날이 그려지며 설레었다.  그보다 오랜만에 귀여운 진돗개 새끼강아지를 보게 될 일이 신나서 손꼽아 기다리며 괜히 내가 온통 꿈으로 부풀어갔다.


내가 보기에 우리 동네가 개와 반려생활하기에는  이상적인 환경을 가졌음에도 희한하게 주변에 그 좋은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에서 개를 키우는 집이 한집도 보여 내심 좀 아쉽고 섭섭했지만 개인취향이나 사정이 있는 문제이니 아깝지만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한편으론 우리 개들과 혹시 모를 트러블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단비처럼 토르를 데려온다고 하니 횡재인 듯 기뻤 아마도 평소 매일같이 개를 산책시키고 다니는 나를 보고 부러우셨나 혹은 좋아 보였나 하며 혼자 내 맘대로 뿌듯해하기도 했.  

이 작은 동네에 먼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고  해서 꼭 새로 강아지를 데려온다고 내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이 한동네에 잘 어우러져 살려면 가능하다미리 알려주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자 배려이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유대감과 기쁨을 나누는 일이기도 했다.  

토르견주분은 그걸 아는 성숙한 어른이었고 토르를 데려올 거라고 어떤 마음으로 내게 알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뭐라고... 먼저 통지해 주고 잘 지내자고 부탁까지 하는 사려 깊은 행동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오게 된 까뭇까뭇한 재구 강아지 토르는 우리 개들에게 누나들 말 잘 들어야 한다고 즐겁게 인사도 시키고 새벽산책에 만나면 같이 뛰어놀며 아웅다웅 장난도 치는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앙증맞고 귀여운 시기도 잠시 윤기 나는 셰퍼드 같은 털색을 갖고 멋지고 늘씬한 청년으로 체구는 누나들(우리 개들)보다 훌쩍  남동생 같이 자라났고 만나면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꼬리 흔드는 것만으론 모자라 엉덩이부터 마구 들이미는 강아지처럼 여전히 사랑스럽게 굴었다.


생각해 보니 개의 태도는 주인의 의도와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게 닐까 하는 생각이 .


토르가 오고 나서 사유지에 그분이 개를 데려온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고 특히 큰 개나  진돗개 진도믹스를 좋아하는 나는 또 오지랖 넓게 괜스레 가슴 부풀리며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지인의 밭지킴이로 묶여 자라온 녀석이라고 들어서   안쓰럽기도 하고 잘 데려온다 싶기도 하여 토르처럼 친하게 지내며 잘해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토르견주분은 무언가를 조금 염려하는 것 같았고 난 그때는 뭣도 모르고  그러시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노파심이겠거니 하며 넘겼지만 이후 왜 그런 걱정을 는지 충분히 공감하고 누구보다도 그 이유를 직접 실감하게 되는 사건들을 연속으로 내가 겪게 되었다.


첫 대면부터 이상했던 게...

그분은 왠지 나와 우리 개들에게 그 개를 소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는데 이를 미처 파악 못하고 개이름과 나이등 조금은 들떠서 이것저것 물어대었반복된 질문에 성가셨던 건지 마지못해 알려주더니 오래 혼자 지내 사회성이 부족한 그 개가 예민하고 적대적으로 반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너희들은 안 되겠다! 안 되겠다!!"


보통은 천천히 친해가자~

나중에 다시 인사하자~ 그러지 않나?


게다가 앞으로 한동네에 같이 살아야 한다면서...

애초에 목적이 따로 있었던 개입양이지 않았을까 의심 가는 부분이다.

우리 개들과 나를 가라고 쫓아내는듯한 제스처와  되겠다고 한 번에 단정 지어버리는... 토르견주와는 정반대의  부정적이고 미온적인 싸늘함을 느꼈지만 설마 했다.

그 개를 본인에게 불필요한 동네사람들의 사유지 접근금지용도로 갖다 놓았을 것이라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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