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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 Apr 04. 2024

개를 키우면 일어나는 일 1-16

개를 키우는 자세 3

오른손 상처는 봉합수술 후에 실밥을 뽑았지만 어째 핏기 없이 누렇게 살아있는 사람손 같지 않은 상태가 날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부어서 주먹이 다 쥐어지지 않았고 특히 두 번째 공격으로 물린 검지는 다 펴지지 못한 채 왼손검지보다 두 배는 부어 있었다.

그보다 더 한 것은 씻는 거 먹는 거 등 뭐든 빠르게 하지 못해 출근도 늦어지는 등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었고  가장 심각한 것은 아침저녁 산책에서 나는 여전히 그 집 개와 그분의 잠재적 위협을 의식하며 불안한 루틴을 이어가야 하는 피로감었다.


사건이 이렇게 장기화되고 그렇게 쉽게 청산되지 못할 만한 일이던가

직접 가서 따따부따 떠들고 요구해야 끝날일이란 말인가


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만한 사람 사는 세상의 상식을 믿었기에 굳이 직접 따지고 언성을 높여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지 않아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서 행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도리를 안다면 아니 그 정도는 아는 인간일 거라고 내 맘대로 추측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본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충분히 배상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겠다고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위에 세 가지 중 단 한 가지의 행태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일반적이고 쉬운 것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본인은 전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상대를 하찮게 여기어 정상적인 대응을 거부하며 그럴  필요를 못 느끼거나 상대방의 심각한 피해를 가볍게 묵살하고 없던 일처럼 무마해 버리려는 파렴치한 갑질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한계에 달해 궁지에 몰림을 느꼈고 뭐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목을 조이는 듯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 삶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결정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대로 나의 일상이 무너지고 신체적으로 훼손되고 정신적으로는 마냥  피폐해져 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더 무섭고 절망적인 것은  안하무인 태도를 수정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분 때문에  현실은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없어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 상황을 깨고 빨리 정리할 수 있는 길은 번거롭겠지만 경찰에 신고해서 제대로 처벌을 받게 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적어도 이때는 것이 구세주이자 전능적인 최종 해결책이라고 여겨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순진한 초등학생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소송이니 신고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던 나였기에 그것은 막연히 두려운 일이었고 주워들은 상식으로 한번 시작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정신적 소모가 많은 실익 없는 귀찮은 일이란 것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어 사실 꺼려지고 가능한 하기 싫은 일이기도 했다.


또한,  진돗개와 진도믹스견에 특히 애착을 가져온 나이기에 이 일로 인해 몰상식한 주인을 둔 그 개가 혹시 모를 피해를 입게 될까도 걱정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물림사고하면 우리 주변의 흔한 진돗개가 타깃이 되어 그 우수품성에도 불구하고 모함받고 매도당하면서 사회적으로 들개니 식육견이니 하며 공포스럽게 여겨지거나 무자비하게 대받고 천대받고 있는 진돗개들을 다시 한번 나쁜 일로 소환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주는데 일조하게 될까 그게 가장 속상하고 주저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거기다 나 역시 진돗개를 두 마리 키우고 있는데 피해자라 할지라도 이런 사건이 부각되면  같은 진돗개인 우리 개들을 보는 눈초리나 이미지도 좋지 않을 것이란 걸 너무도 잘 알기에 결심은 더욱더 어려웠다. 


그 개가 풀려서 혼자 돌아다니는 걸 우연히 찍은 사진을 확대해 들여보며 세상모르고 헐떡이며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그 연약한 생명이 주인의 그릇된 관념과 욕심에 의해 엉뚱한 희생양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고 망설이고 포기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나를 물었어도 난 그 개가 그냥 우리 봄이 토리처럼 불쌍했다.  


나쁜 건 미개한 방식으로 사육한 주인인거지 그 개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란 어차피 홀로 살 수 없는 동물이고 그 주인에 해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규정지어지는 힘없고 수동적인 생명체불과하기에 그저 애잔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주인이란 자는 여전히 피해자가 사는 마을에 조금도 다름없이 수시로 개를 풀어놓았고 묶여 있다 해도 기를 쓰고 짖는 개를 어떠한 훈육이나 통제 없이 방관해 왔으며 그 사유지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물림사고로 트라우마가 있을 내게 개를 동반해서 도로에 더욱 두려움을 느끼도록 매번 지나다니지 못하게 폭언하는 등 갖은 위협을 다해왔다.


이걸 멈추게 해야만 했다.  내가 살기 위해 반드시 그래야 했다.


산책하는 새벽시간이니 인적도 없고 아무도 모르게 나만 구석에 몰려 괴롭힘을 받고 있는 외롭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이런 나에 비해  그 개는 그런 주인의 비호를 받으며 기세등등해서 더욱 하던 대로 이를 드러내며 볼 때마다 공격적으로 짖어댔고 의기양양하게 산으로 대로로 거리낌 없이  주인에겐 사유지가 있는 곳에 불과한 이 동네를 구석구석 활보하며 신나게 돌아다니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자유분방하게 살고 있는 그 집개에 비해서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마음껏 산책도 못 다니고 항상 긴장과 불안 속에서 눈치를 보며 비루하게 살면서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훨씬 불쌍하다는 걸 말이.


또한 그분이 연세가 아주 많거나 배움이 짧아 사리분별을 하기 어려운 분이거나 막일등 험난하고단한 삶을 살아 미처 주위를 배려할 여유를 찾기 힘든 여건에 놓인 분이라면 결코 신고할 결심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피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은 아직 본업에서 은퇴하지 않은 나이의 배울 만큼 배운 그래서 알만큼 아는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하는 전문직 치과의사라 했다.

치과의사가 나쁜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온 치과의사들은 유달리 다른 의사보다도 더 섬세하고 친절한 분들이었다.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그 사람의 직업이 단지 치과의사인 것이다. 

내가 신고를 결심한 이유는 이 두 가지다.  


그 개보다 내가 더 불쌍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주인은 상식과 도덕을 충분히 알만한 사람이 사회적 지위는커녕 일반인의 사고에도 못 미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방자하게 일삼으며 물림사고가 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


매일 출퇴근하듯 사유지를 드나드는 그분이 내가 출근한 이후에는 빌라 주차장뒤 견사에 있는 우리 개들에게 어떠한 해코지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위기감도 결심하는데 한몫하는 이유였다.




어느 날 휴일 산밑을 거슬러 꼭대기까지 산책을 갔는데 그 산책길에서 풀린 채 올라온 셰퍼드  한 마리와 딱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 집개와 지난 첫 번째 트러블이 일어났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 일로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는 나로선 맞닥뜨린 이 급작스런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무슨 일이 시작되나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다행히 그 개는 얼마 전 이사 왔다고 하는 내가 아는 개였고 이름도 봉이라고 알고 있었다.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우리 개  두 배만 한 체구의 봉이 주둥이가 우리 봄이 머리를 삼켰고


봉이야 안돼!! 안돼!!!!!


내 목소리를 알아듣 듯 멈칫해서 주둥이를 거두며 빼냈지만 순간 와그작하며 물었다면 우리 봄이한테는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뒤늦게 따라 올라온 주인은 산 끝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아 풀어놓고 방심했다고 사과를 해왔다.


주인은 잘 알지 못했기에 또다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는 건가 싶어 말로 다 표현 못불안감고개를 들고 엄습해 왔지만 일단 사과를 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아 그래도 께름칙한 기분이었지만 일단락하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는 중인데 웬 승용차 한 대가 오고 있었고 지나가는 차량인 줄 알고 비켜서있는데 창문이 내려지더니 조금 전 봉이 주인이란 분이 아까 개를 데리고 피하느라 경황이 없어 사과가 부족했다며 다시 사과를 하러 차를 끌고 산책길로 올라오셨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그래 이거지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긴 있구나!!!


하도 사람 같지 않은 자의 횡포와 비정상적인 행태에 놀라고 오랫동안 시달리다 보니 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봉이주인의 행동에 감동해서 주절주절 내가 당했던 일들... 개를 수시로 풀어놓다가 물림사고가 났음에도 계속 풀어놓고 위협하고 있는 현실과 아직까지 그 일이 끝나지 않아 고통받고 있어이런 일에 더 민감하다고 조심해 줄 것을  당부드렸다.

그리고 봉이는 순한 녀석인 거 알고 있는데 아마도 저도 놀라서 엉겁결에 물려고 했을 거라고 우리 개들도 놀랐지만 다친 데는 없으니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역지사지로 내가 당했다면 어땠을지 공감을 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해주면 끝나는 문제이다.

우긴다고 뻐긴다고 뻗댄다고 문제가 유야무야 끝나버리는 게 아니란 것이다.


이것도 용기와 양심의 문제인 듯하다


본인의 미숙함과 실수를 수용하고 자신 있는 태도로 고쳐가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은

멋지고 어른스러운 행동이며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있다고 재력이나 권력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당연하게 경과 권위가  따라줄 거라 믿고 바라는 것은 본인만의 착각에 불과하다.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여 제압하려는 갑질이 아닌 그걸맞은 수준 있는 행동을 할 때 비로소 인정받고 배려하는 사랑이 주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고작 그 이유만으로 그걸 무기로 삼아 다른 이를 굴복시키고 양보하길 요구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112 신고는 이루어졌다.

이걸로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또 다른 깊은 산이 높은 장벽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 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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