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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드리 Jul 13. 2023

제부들이 준비한 퇴사 파티

내 나이쯤 되면 친구보다 가족이 힘이 된다.

10년 동안 빌라와 주택 사이의 작은 어린이집에 정말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어 폐원을 하게 되었다. 여름휴가 한번 제대로 간 적 없고 우리 아이 입학식 체육대회 한번 제대로 참석한 적 없이 오직 어린이집 아이들만을 위해 30대를 보냈는데 폐원이라니 가슴이 찢어지고 우울하고 마음에 천둥번개가 쳤다. 여동생이 마지막 퇴근길을 함께하기 위해 찾아왔다.


"눈물이 안 나려고 했는데 눈물이 계속 나네. 나 이제 뭐 하고 살지. 놀아보지 못했는데 놀 수 있을까?"


"여태까지 힘들었는데 좀 쉬어. 언니"


하염없는 똑같은 하소연을 하는 내  이야기가 지겹기도 할 만한데 동생은 참으로 고맙게 잘 들어주었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계속 나는 건 왜일까? 초등학교에 간 성준이도 잘 지낼까? 비 오는 날 성준이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힘들지는 않으실까? 햇살반이 너무 보고 싶으면 어쩌지'


온갖 생각에 젖어 눈물이 콧물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을 때 비틀비틀 거리며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제부가 있었다.


"처형! 저 회식해서 늦었어요.  10년 동안 너무 고생했어요. 이제는 조금 쉬세요. 정말 우리 처형 멋지십니다"


혀도 꼬이고 다리도 비틀거렸지만 나를 걱정하고 격려해 주는 마음이 충전되는듯 느껴졌다. 10년 다닌 어린이집을 그만두며 허탈했던 슬픔은 팥빙수 우유 얼음에 달달함처럼 스스륵 녹아버렸다.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다니. 감사했고 고마웠다. 동생의 첫사랑으로 20대에 만나 가족 같기도 하고 위로할 때는 형님 같기도 하고 내 인생에서는 빠질 수 없는 술친구였다.나는 카스가 절친이지만 제부는 참이슬이 절친이었다. 파릇파릇한 대학생이던 제부는 어느덧 40대의 중년이 되었지만 20대의 마음으로 우린 서로의 절친인 카스와 참이슬을 만나 알딸딸한 퇴사파티를 해보았다.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끝은 시작이라고 하잖아. 나는 열심히 살았고 더 좋은 어린이집에 갈 수 있고 격려해 줄 가족들이 있으니 힘내보자'


다음날 머리가 띵해서 울리는 전화벨을 받지 못했다. 부재중 통화를 보니 막내 제부였다. 제부는 전화하자마자 곧 도착할 테니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영문은 몰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처형 어서 타세요"


"어디 가요? 막내 제부?"


"처형 퇴사 파티해 주려고요"


막내제부 차를 타고 막내제부의 절친을 만나러 스타벅스에 갔다. 스타벅스 열혈 팬으로 커피를 잘 마시지 않던 내게 커피의 쓴맛 뒤에 느껴지는 단맛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막내제부는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케이크를 여러 개 사 왔다. 가시와 꽃이 어울리듯 아메리카노와 케이크는 정말 세트처럼 맛있었다.  그 어떤 여자친구보다 내 퇴사 이야기를 우울하지 않게 즐겁게 들어주고 박수를 치며 공감해 주었다. 평소에도 술이 없이는 진솔한 이야기를 잘할 수 없던 나지만 유일하게 막내제부는 요술램프를 문지르면 소원이 이루어지듯 술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게 만든다.


"처형 이제 쉬시면서 스타벅스 많이 가세요. 커피도 마시고 머리도 식히고 스타벅스 스탬프도 찍고요"


"제부 말대로 커피 마시면서 생각하는 시간 많이 가져야겠어요. 지방에 스타벅스 매장을 찾아 다니는 제부가 이제는 이해가 돼요. 이렇게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참 좋네요"


커피를 알게 되면서 겉으로는 쓰지만 안으로는 달콤하고 유혹적인 향기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또 다른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이런 커피의 중독성을 알게 되면서 막내제부를 더 많이 이해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이제는 나도 스타벅스만 찾아다니는 매니아가 되어버렸다.


어렵다면 어려운 사이인 제부들은 힘든 일이 생겼을 때마다 늘 내 일처럼 달려와서 자기만의 스타일로 위로를 해주었다. 마음이 이리도 행복하고 호화로운 퇴사자가 있을까? 다시 만날  제자들을 꿈꾸며 퇴사한 시간을 꿈처럼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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