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17화

by 서윤

17화


우리 방 바로 맞은편은 세탁실이었고, 세탁실 창문밖으로 작은 산에 나무들이 조금씩 초록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복도 너머 세탁실 창문을 바라보는 게 좋아서 가끔 서서 불어오는 봄 내음을 즐기기도 하고 한잎 두잎 늘어나는 초록을 느끼는 게 위로가 되었다.


세탁물을 내어 놓는 날이라 세숫대야에 각자의 세탁물을 담아서 꺼내놓자 사소들이 가지러 왔고, 그중 770번이 보이길래 반갑게 인사를 하려는데, 일부러인지 못 본 것인지 쌩하고 세탁실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새 담요까지 선뜻 내어준 나를 굳이 저렇게 냉정하게 대하나 싶은 게 쓴 약을 삼긴 듯 혀끝이 무척 썼다.


베풀고 준 것도 또 내 불찰이지 저 사람을 탓하면 뭐 하나 싶기도 했다.

세탁물을 꺼내놓고 바로 운동시간이라 운동장을 향해 두줄로 복도를 걸어가는데 먼저 운동을 마친 다른 사동 사람들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서 걷고 있던 영자언니가 누구를 본 것인지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왠지 불안감이 왔다.


" 언니 왜 그래 아는 사람 있어 ? "


" 아냐 괜찮아 "


그때 저만치 언젠가 목욕 갈 때 얼핏 보았던 젊은 여자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영자언니를 보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남자 같은 숏커트에 마르고 키가 커서 한눈에도 기억에 남은 인상이었다.


" 서로 말 걸지 않습니다. 조용히 갑니다. "


교도관의 음성이 복도를 울린 순간

그 여자애가 막 영자언니 곁을 스치려 하고 있었다.


" 잘 지내니 ? "


" 신경 끄시지 할머니 "


그때 영자언니는 얼굴이 파래지는 것 같았다. 둘이 아무리 같은 방에 있던 사이었다지만, 나이도 어린애가 말하는 투가 참 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날 이후 영자언니는 가끔씩 초점 잃은 눈을 하고 멍하니 창문 쪽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진짜로 스무 살 어린애랑 육십 먹은 아줌마랑 사랑이라도 한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교도소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없이 생기니까

참 별세상이었다.

다음날 운동을 마치고 방으로 복귀하는데 다른 날과 다른 경로로 이동을 했다.

소독 중이라고 하는데 그 덕분에 우린 그 유명한 장ㅇㅇ씨 방 앞을 지나왔다. 희대의 사기꾼 장ㅇㅇ 한때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큰손으로 불렸던 여자의 방을 지날 때 무척 고소한 냄새가 났다.


" 근대 아까 장ㅇㅇ 방을 지나올 때 엄청 고소한 냄새가 나던데 무슨 냄새야 ? "


" 아 그거 참기름 냄새야 언니 장ㅇㅇ는 글쎄 영양크림처럼 참기름을 얼굴에도 몸에도 덕지덕지 바른대 그게 피부미용에 최고라든데 "


" 허 참기름을 바른다고 ? "


" 그렇대 전에 그 여자 수발들었던 여자한테 직접 들었어 "


" 수발은 또 뭐야 시녀야 조선시대도 아닌데 무슨 수발상궁이람 "


" 언니 모르는구나 높은 사람이 들어오면 독방을 쓰는데 빨래나 설거지 청소 이런 거 하라고 영치금 없는 재소자 중에서 그런 방에 같이 있게 하는 거야 "


" 뭐야 이런데 와서도 상전이야 ? 다 같은 죄수끼리 별거 다 하네 "


" 언니 사실 여기 밥 먹을 때 쓰는 상 있잖아 그리고 좌변기까지 다 장ㅇㅇ가 해준 거래 옛날에는 바닥에 신문 깔고 밥을 먹었대 변기도 그 뭐냐 그 여자가 다 바꿔준 거래 그러니까 당연히 대우를 해주겠지 거기다가 그 여자가 어디 보통여자야 큰손이잖아 "


" 와 교도소전체를 다 해줬다고 ? "


" 아니 여기만 다른 곳은 나도 몰라 "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신기했다. TV에서 뉴스나 드라마로 보았던 장ㅇㅇ가 나와 같은 교도소에 있다는 것도 거기에 교도소 집기류랑 변기통 교체를 해줬다는 게 진짜 드라마 같았다.


한때는 나라전체를 뒤흔들고 경제계든 정치계든 주무르던 여자가 감옥에 앉아서 미용관리를 위해 참기름을 바르고 있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인생살이 참 묘하단 생각에 순간순간 웃음이 났다.

큰손 장ㅇㅇ랑 같은 건물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게 뭔가 이상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날은 희자가 출소를 위해 대기방으로 옮겨갔다.

한번 봄으로 접어든 계절은 하루하루 봄을 향해 달려갔고, 나는 엄지손가락이 구부러질 정도로 필사를 하면서 나라를 뒤흔든 희대의 사기꾼은 수발드는 상궁도 두고 빵생활을 하는데 겨우 돈 몇천만 원에 인생의 길이 망가졌다 생각하니 법원 입구에 서 있을 빈 저울이 떠올라서 화가 치밀었다.


법의 저울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법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그 흔한 말을 실감해야 하고, 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같은 대우를 받지는 않구나 싶었다.

더구나 장ㅇㅇ씨는 가끔씩 외출도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사기도 치려면 크게 쳐야 하나 어이없는 생각마저 했다.


[ 법은 우리를 지켜주어요 ~~]


과연 법이 정말 우리를 지켜주는가 의문을 품으며 잠이 들었다.



( 18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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