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박정희대통령 각하 서거
벼타작을 하고 울타리콩에 땅콩이 마당을 가득 채웠고,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따고 겨우내 소 먹일 지푸라기가 몸통만 하게 묶여 가을햇살에 젖은 몸을 말리고 메뚜기 녀석들은 언제 잡힐지 모르면서 팔딱팔딱 뛰어다녔고
하얀 소국 안에서 땡벌들이 윙윙거리면서 꿀을 따느라 분주한 10월
사람도 곤충도 달구지도 아버지의 지게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을걷이에 짧아지는 하루 해를 원망하고 뒷산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부지런한 인간에게 빼앗길까 전전긍긍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다람쥐가 인간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을 어느 날
십리를 걸어 학교에 갔는데 조회시간을 알리던 교단 위 빨간 스피커에서 '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이 잉 '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학교 복도를 울리는 선생님들의 슬리퍼 소리가 들려오고 침울한 선생님의 얼굴 가라앉은 조용한 목소리로
' 여러분 어젯밤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
우리들은 서거가 뭔지 몰라서 ' 서거가 뭐랴 너 서거 알어 ' 웅성웅성 소리에 다시 선생님이 '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지난밤 돌아가셔서 오늘부터 수업을 하지 않으니 바로 집으로 가는 겁니다 알았죠 '
' 절대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야 합니다 '
선생님은 알아듣기도 어려운 말들을 쏟아냈다.
대통령 각하는 서거를 했고,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니 밤 10시부터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릴 거라고 하고 집단활동을 하면 바로 군인들이 잡아간다고도 했다.
' 그라믄 우리는 언제 학교 오는 건가유? '
' 그건 따로 안내가 나갈 거예요 '
' 와 ~~~ 학교 안 와도 된댜 신난다 ' 하고 좋아하는데 반장은 화를 내면서
' 너는 대통령 각하가 죽었다는데 학교 안 오는 것만 신나는겨 ? 애도를 해야 하는겨 ' 했고
' 애도가 뭐여 ? ' 하는 친구한테 반장은
' 으이구 멍청한 새끼 예의를 다해 슬퍼하는 거여 '
' 그려 반장이라 아는 것두 많네 니 똥 굵다 '
하면서 티격태격을 하는데 선생님이
' 자 여러분 조용히 하고 모두 집으로 가요 '
했다.
우리는 대통령 각하의 서거로 당분간 학교를 가지 않은 건 좋은데 밤 10시 이후에는 밖에 다니면 안 된다는 계엄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마을에 와보니 어른들이 울고 있었고, 어떤 아줌마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 이를 어쩌면 좋아 김뭐시긴지 그 사람은 왜 각하께 총을 쏜 거랴 나라살림 잘 살피고 잘 살게 해 주신 대통령각하님이 이제 안 계시니 큰일이여 ' 했다.
그날부터 구판장 앞에 걸려있던 태극기는 반만 올라갔고, 지소에 순경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순찰을 돌았다.
' 큰일이여 북에서 넘어올지도 모른댜 '
' 그것뿐이여 미국이 일본처럼 또 나라를 가져간다는 말도 있구먼 '
' 아이고 박정희 대통령각하가 어떤 분이여 나라를 잘 다스려서 그나마 우리가 이만큼 살게 해 준 분이잖어 안타까워서 밤에 잠도 안 오는구먼 '
' 그 집만 그런가 우리 바깥양반은 밥도 안 먹고 한숨만 쉬는구먼 '
마을 어른들은 만나기만 하면 큰일이다 불쌍하다 나라가 걱정이다 한숨을 내 쉬었는데, 우리는 학교 안 가고 실컷 놀 수 있어서 좋았다.
며칠 후 아침부터 구판장 앞으로 다 모이라는 방송이 있었고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날은 박정희 대통령각하의 장례식이 열렸고 어른들은 큰 소리로 울면서
'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겨 ? '
' 최규하라는 양반이 대통령각하가 된 것이 맞는겨 ? '
' 아녀 그 냥반은 임시로 하는 거랴 '
' 그라믄 대통령 선거를 한댜 '
' 아 그걸 자네가 모르는디 내가 알 거 써 '
' 조용히들 하셔유 지금 삐끗 잘못 말하믄 다 잡아간다잖어유 말들 조심혀유 '
' 그려 그려 말을 조심혀야 지 누가 언제 신고 헐지 모른댜 '
' 그나저나 훌륭한 대통령각하가 또 나와얄긴데 '
어른들은 너나없이 대통령각하가 돌아가셔서 슬퍼했고 나라 걱정을 하는데 낼부터 다시 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이 우리들은 대통령각하가 돌아가신 거보다 더 슬펐다.
1979년 가을이 파랗게 노랗게 빨갛게 산과 들 그리고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10월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