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막걸리에 취한 날
이른 아침부터 양조장에서 제조한 막걸리가 마을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항아리에 막걸리는 가득 받았다.
처음엔 달구지에 막걸리를 싣고 왔었는데 언제부턴가 경운기에 말통을 가득 싣고 왔다.
그날은 우리 집 논에 모내기를 하는 날이라 아버지는 새벽부터 논에 물을 대고 누렁이 황소는 논바닥 흙을 고르느라 콧김을 뿜어대며 일을 했다.
시골 마을은 일군들이 일하는 집에서 아침밥까지 먹기 때문에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느라 바쁘니까 개밥 돼지밥을 주는 건 내 몫이었다.
' 새이 (새참) 나가야 허니께 큰 주전자에 막걸리 가득 담아 놔 '
' 응 엄마 '
나는 커다란 주전자에 조롱박으로 막걸리를 가득 담아놓고 광주리에 빈 그릇 하고 수저통도 넣어놓았다.
' 주전자 무거우니까 조심히 들고 따라와 '
술 주전자는 생각보다 무거워서 양손으로 들고 엄마 뒤를 따라가는데 엄마는 머리에 음식이 담긴 광주리를 이고 한 손엔 국수장국이 담긴 통을 들고 있어서 술 주전자가 무겁다는 말도 못 하고 엄마를 따라가는데 주전자에서 계속 술이 출렁거려서 땅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고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논으로 갔다.
' 새이 드셔유 국수 잡숫고 하셔유 '
엄마의 외침에 일군아저씨가 반가운 얼굴로
' 아이고 이제사 새이가 왔네 글차나도 배가 고파서 허기져 일도 못하는 줄 알았지 뭐여 어여들 새이 먹고 하지 뭐 '
엄마 머리 위에서 광주리를 내리고 그릇마다 국수와 고명을 올리고 장국을 부어서 다들 국수를 맛있게 드셨다.
' 우리 막내 거 서 있지 말고 여그 아저씨들 막걸리 한잔씩 가득히 부어드려 '
' 응 아부지 알았어 '
' 아녀 아녀 막내 그 주전자 일루 줘봐 여자는 아무나 술 따라주는 거 아녀 '
' 아이구 그게 뭔 말이여 처녀도 아니구 이제 애기인데 '
' 글쎄 그게 그게 아닌 겨 술은 나중에 서방님한테 따라주는겨 ' 하셨다.
새참을 다 드시고 어른들은 또 논에 들어가서 줄을 늘이고 엎드려서 모를 심었고, 나는 엄마하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또 바로 점심준비를 해야 하니까 바쁘다면서 나한테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서 논에 갔다 주라고 하셨다.
' 무거우니까 여러 번 가드라도 반만 담어가 저그 항아리에서 물김치도 퍼가고 '
' 나 혼자 들고 가라고 ? '
' 그라믄 여그 너 밖에 더 있어 어여 가 일군들 목 타게 써 '
주전자에 막걸리를 채워서 논으로 가는 길에 주전자가 너무 무겁고 목도 말라서 주전자 뚜껑에 막걸리를 조금 따라 마셨는데 의외로 막걸리가 달고 맛있었다.
몇 번을 더 따라 마시면서 논에 도착했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막 몸이 뜨거웠다.
' 우리 막내 열이 나는겨 우찌 얼굴이 벌건겨 어디 아픈겨 ' 아버지는 걱정을 하셨는데 마을아저씨가
' 그러게유 막내아줌니 얼굴이 가을사과가 되었네 ' 라고 놀려댔다
' 아녀유 오다가 목말라서 주전자 뚜껑에 막걸리를 먹었어유 '
' 허허허허 술에 취한 거구먼 벌써부터 술을 아는겨 ? '
' 아니에유 그냥 달아서 몇 번 마셨어유 ' 했더니 아버지는 술을 마신 거냐며
' 얼른 저 냇가에 가서 세수허구 와 ' 했다.
냇가에서 세수를 하고 왔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논두렁이 오르라 내리락하는 것 같았고 몸에 힘이 없었다.
' 아부지 나 어지러워 논두렁이 올라 왔다 내려갔다 하는디 '
' 어이구 술에 취한겨 일루 와 봐 '
'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보시더니 이거 불덩이네 큰일 났구먼 '
아버지는 얼른 나를 지게에 앉히고 부지런히 집으로 올라가서 마루에 날 내려놓고 한숨 자라고 했다.
엄마는 밥 짓다말고 부엌에서 나오셨는데 술을 마셨다는 아버지 말씀에 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 으이구 내가 못 살어 술 심부름 보냈더니 어린 게 벌써 술을 마신겨 '
' 아녀 목말라서 조금 마신겨 '
' 그게 그 소리여 술이 을매나 독한 건데 그게 물인 줄 알은겨 '
나는 기운도 없고 어지러워서 엄마소리도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고 엄마 잔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내가 일어났을 때 마당에서 일군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지 막내가 술을 마셨느니 큰일 날 뻔했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그냥 자는 척했다.
그날 주전자 뚜껑에 따라 마신 막걸리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나는 속으로 빨리 어른이 돼서 막걸리를 잘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술 심부름 갈 때마다 뚜껑에 한 번씩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