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마실 23화

변소가 없어요

겨울방학 1

by 서윤

변소가 없어요


겨울방학을 하고 며칠 뒤 엄마가 서울 작은오빠 집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서울 화곡동 작은오빠집은 1층 양옥집이었고, 거실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넓은 소파가 있었다.

조카들 방에는 2층 침대 안방에는 눕기만 해도 이틀을 잘 것 같은 하얗고 커다란 침대가 겨울햇살에 반짝거렸다.


엄마는 이른 저녁을 드시고 막차를 타야 한다면서 다시 시골집으로 가시면서 나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놓았다.


' 올케언니 말 잘 듣고 조카들하고 싸우지 말고 있어 며칠 있다가 데리러 올겨 '

' 나 여기 싫은데 오빠도 없고 작은 새언니 무서운데 '

' 무섭긴 뭐가 무서워 니 올케가 저래봐도 배운 사람이여 경우 없는 짓은 안 할 거니까 하라는 대로 하고 있어 '

' 엄마도 여기 같이 있으믄 안 되는겨 ? '

' 아부지 밥도 챙겨야 하고 겨울이어도 일이 많아서 엄마는 집에 가야 혀 '

' 세 밤만 자고 빨리 와 엄마 '

' 그려 세 밤 자고 데리러 올 거니까 밥 잘 먹고 있어 '


8살에 작은오빠집에 뚝 떨어진 나는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다.

현정이는 나보다 세 살 어렸어도 나보다 어른스러웠다.

' 언니 아니 아니다 고모 일루 와서 나하고 같이 인형놀이 해 '

고모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현정이는 언니라고 했다가 고모라고 했다가 아참 아참 고모 고모 했다.


그 밑에 조카는 3살인데 더듬더듬 말도 잘했고 꼬모꼬모 하면서 나를 신기한 동물을 만난 것처럼 쳐다보기도 하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 꼬모 꼬모 누구야 ? 꼬모 우리 집 식모야 ? 꼬모는 어디 살아 ? '

계속 같은 말을 하고

' 꼬모 아탕주까 꼬모 꽈자 먹어 ? 나는 꽈자 많이 먹으면 엄마한테 혼나 꼬모도 혼나 ? ' 하면서 하루 종일 종알거려서 귀찮았다.


저녁 늦게 작은오빠가 퇴근을 하고 집에 왔고

' 막내고모 저녁 드세요 ' 하길래

' 네 ' 하고 부엌으로 갔더니


작은 새언니가 밥 먹자면서 식탁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는 것도 이상했고 더 기가 막힌 건 밥그릇은 시골집에서 간장을 담는 그릇만큼 작고 밥도 두세 숟가락도 되지 않았다.

국그릇에 담긴 하얀 국은 파만 둥둥 떠 있어서


' 나 이런 국 안 먹어요 '

' 어머 고모 그거 일부러 막내고모 주려고 곰국 끓인 건데 왜 안 먹어요 '

' 이상해서 안 먹을래요 '


그때 작은오빠가 내 국에 밥을 말아주면서 한 숟가락 먹어보라고 해서 간신히 한 숟가락을 먹었는데 밍밍한 게 맛이 없었다.

밥은 양도 적고 국은 이상하고 반찬도 조금밖에 없어서 밥 먹고 일어서자마자 다시 배가 고팠다.


밤이 되고 2층 침대에서 자라고 하는데 나는 침대가 불편하다고 요를 깔아달라고 했다.


' 꼬모 여기 내 침대서 자 '

' 아녀 거기는 니가 자 '

' 응 꼬모 잘 자 코 자 '


낯선 집, 낯선 방, 낯선 냄새

이불에서 뽀송뽀송한 향기가 났는데도 나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낮부터 아무리 찾아도 작은오빠 집에는 변소가 없었다.

소변이 마려운데 계속 참았더니 배도 아파왔고 조금만 더 참으면 쌀 것 같아서

살금살금 거실로 나왔는데 오빠가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가 말을 걸었다.


' 왜 안 자고 나와'

' 음 음 그게요 그게 나 쉬 마려 근데 변소가 없어요 '

' 아 화장실 저기 문 열고 들어가면 있어 얼른 소변보고 나와 '


작은오빠가 가리키는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없었다.

수도꼭지하고 하얗게 반짝거리는 물통만 있는데 어디에 오줌을 누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거실로 나와


' 오빠 저기 나가는 문 없어요 ' 했더니

' 아 나가는 게 아니라 거기 변기통에 앉아서 누면 돼 ' 했다.

' 하얀 세숫대야 ? '

' 그거 세숫대야 아니고 변기통이야 '

거기에다 소변보고 물 내리면 돼 '

' 나 아까 거기서 세수했는데요 '

' 흠 흠 그건 세숫대야가 아니고 앉아서 볼일 보는 거야 ' 했다.


나는 변기통이라는 물에 세수를 했는데 거기가 변소라는데 앉아도 소변이 안 나와서 너무 급한 마음에 그냥 바닥에 볼 일을 보고 물을 뿌렸다.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작은조카가 ' 꼬모 밥 먹어 밥 먹으래 엄마가 일어나래 ' 하는 소리에 깼다.

서울은 겨울인데 무슨 아침을 새벽부터 먹는 건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식탁에 앉았는데 밥이 없었다.


빵 하고 우유 그리고 주스를 먹으라고 했다.

난 우유를 마셔 본 적도 없었고 주스도 내가 알던 주스가 아니었다.

시골에서는 오렌지가루에 물을 타서 마신 게 주스인데 오빠집 주스는 유리병에 담겨 있어서 엄청 비싸게 보였고, 아침부터 차가운 걸 먹기도 싫었다.


' 새언니 나 배고파요 밥 하고 국 주세유 '

' 어머 고모 우리는 아침에 밥 대신 빵을 먹어서 밥이 없는데 어쩌죠 '


나는 밥이 없다는 말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얼굴이 일그러졌고 급기야 오빠는

' 현정엄마 찬밥도 없어요 ? ' 했는데

새언니는 밥이 하나도 없다면서 오늘은 그냥 빵을 먹으라고 했다.


점심에도 모기눈물만큼 담긴 밥을 먹어서 너무 배가 고프니까 서럽고 시골집 밥상이 아른거렸다.

시골은 밥그릇도 크고 밥도 수북하게 담아주는데 서울 작은오빠집은 두 숟가락 먹으면 밑바닥이 보일 만큼 밥을 조금 줬다.


' 고모는 밥 많이 먹어 ? ' 현정이가 물었고

' 응 우리 집은 밥 많이 주는데 너네 집은 쌀이 없나버 '

' 아니야 우리 엄마는 밥 많이 먹으면 머리도 나빠지고 뚱뚱해진다고 했어 '

' 그런 게 어딨어 밥을 많이 먹어야 건강한 거라고 우리 아부지가 그랬어 '

' 어 고모도 아버지 있어 ? '

' 그럼 있지 우리 아부지가 너네 할아버지여 그것도 몰러 '

' 나도 할아버지 있어 저 멀리 촌에 있어 '

' 거기가 우리 집이여 우리 아부지가 너네 할아버지여 '

' 아 엄마 엄마 고모가 할아버지 집에 산대 '


현정이는 시골에 왔던 걸 기억하는지 할아버지 있다고 하면서 새언니한테 고모가 할아버지 집에 산다고 하면서 엄청 즐거워했다.


또 소변이 보고 싶어서 나는 살짝 현정이한테 소변을 어디서 어떻게 보는 건지 물어봤는데 현정이는 변기통에 앉아서 오줌을 누고 물을 내렸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멍청하게 하얀 소변통을 바라보는데 현정이가

' 고모집에는 화장실 없어 ? ' 했다.

나는 자존심에 우리 집에도 ' 요강 있어 ' 라고 했더니 ' 요강이 뭐야 ' 하길래 ' 그림도 그려져 있는 소변통 우리도 있다고 '

' 응 고모 집도 잘 사는 집이구나 내 친구는 변기통 없어서 가난해 ' 했다.


두 밤을 자고 세 밤을 자도 오빠집은 불편하고 배가 고파서 잠도 안 오고 자꾸 차가운 우유만 마시라고 해서 빨리 엄마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아니고 넷째 언니가 나를 데리러 왔다.


넷째 언니 집은 다음화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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