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마실 25화

첫사랑

신부님

by 서윤

첫사랑


고학년이 된다는 건 마음도 몸도 고학년이 되는 것 같았다.

여자 아이들은 갑자기 키가 크고 가슴도 커지고 궁디살이 토실토실해 지고 키 큰 아이들은 멀리서 보면 아가씨 같기도 했다.

나는 삐쩍 마른 젓가락 같아서 남자애 같다는 소리만 듣는데 다른 아이들이 자꾸 예뻐지는 게 부러웠다.


' 너 그거 알어 ? 숙희하고 재문이가 서로 좋아한대 '

' 둘 다 공부 잘하고 반장 부반장이니까 친한 거 아녀 ? '

' 바보 너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지 '

' 아녀 나 진짜 몰러 '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구는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는 누구랑 사귄다 하는데 한 학년이 120명 남짓하는 시골학교에서 삼각관계 사각관계 이야기는 뉴스보다 빠르고 조간신문 보다 잽싸게 배달이 되었다.


우리 학교 바로 위에 교회가 있었고 목사님 아들인지 전도사님 아들인지 하는 현안이는 얼굴도 하얗고 잘 생겼고 키도 커서 여자아이들은 토요일 학교가 끝나면 현안이를 본다고 교회로 몰려갔다.


' 야 너도 교회 가자 '

' 안돼 우리 집은 성당 다녀서 '

' 야 성당이나 교회나 다 예수님 믿는겨 '

' 아녀 난 교회 안 가니까 너나 다녀 '


첫사랑에 짝사랑에 흠뻑 빠진 여자아이들은 하나님을 믿으러 가는 건지 현안이를 보러 가는 건지 주말이면 갖고 있는 옷 중에서 제일 예쁜 옷을 입고 울긋불긋 교회로 가는 언덕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고학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말타기가 좋은데 다들 교회를 가니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


어느 날 현안이가 지나가길래

' 야 너 한 사람하고만 사겨라 이 애 저 애 다 만나지 말구 ' 했더니 동그란 눈으로 ' 나는 공부해야 해서 여자 안 사겨 '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교실로 뛰어가서 큰 소리로

' 야 현안이는 공부를 좋아한대 여자 안 사귄대 ' 했다.

그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 여자애들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책을 펼치고 있는 게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해야 만나준다는 소리로 들은 건지 공부 잘해서 만나려는 건지 여자애들이 너무 웃겼다.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엄마하고 성당에 갔는데, 젊은 신부님이 성당 앞에 서 계셨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 아래 성모마리아 님의 하얀 동상 그 옆에 검은 옷을 입은 신부님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이 내 것이 아닌 듯 뻑뻑해지고 막걸리를 마셨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숨이 가빠왔다.


' 어이고 신부님이 새로 오셨네유 ' 하면서 엄마가 젊은 신부님한테 넙죽 인사를 하면서 ' 야는 지 막내딸이어유 ' 라고 날 인사시켰고 나는 간신히 ' 안녕하세유 ' 고개를 숙이면서 빼꼼히 신부님 얼굴을 봤는데 너무 잘 생겨서 발가락이 꼬여 들어갔다.


그날 이후 학교가 끝나면 곧장 성당으로 달려가서 성당청소를 하고 방석을 털고 빗자루로 마당도 쓸고 그랬는데 젊은 신부님은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 미영아 그 젊은 신부님 어디가셨나버 '

' 아 그 신부님은 저기 읍내에 공소 있잖어 거기 신부님인데 저번에 여기 신부님이 어딜 가셔서 그날 오셔서 미사 드린 겨 '

' 그럼 이제 안 오시는겨 ? '

' 나도 몰러 아부지 말로는 여기 신부님이 공소로 가시믄 그 신부님이 여기로 오실지도 모른댔어 '


미영이 아버지는 성당을 관리하시는 분이라 미영이는 알 것 같아서 물어본 건데 미영이도 다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무척 답답했다.


나는 거의 매일 성당에 가서 미영이랑 같이 청소도 하고 구약성서를 외우고 찬송가 연습도 하면서 그 신부님이 나타나시길 기다렸는데 그 이후엔 우리 성당에 오시지 않아서 무척 서운했다.


하루는 엄마가 읍내 공소로 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라고 아침부터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시길래 나도 같이 간다고 했더니 엄마는 혼자 부지런히 다녀올 거라면서 데리고 가지 않아서 엉엉 울었다.


' 담에 데려갈 테니까 오늘은 집에 있어 '

' 엄마 나도 가고 싶어 '

' 글쎄 안된다는데 뭔 쇠고집이여 '


그 이후에 다른 일로 나는 두 번 다시 성당에 가지 않았고 젊은 신부님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은 그렇게 확 타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가을하늘이 유난히 화창한 날에 검은 옷을 단정히 입고 햇살을 독식하면서 서 계셨던 나의 젊은 신부님은 나의 마음을 고학년으로 데려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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