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마실 26화

밥 훔쳐먹는 날

대보름

by 서윤

밥 훔쳐먹는 날


대보름 전날 엄마는 나물을 불려놓고 떡을 하느라 종일 바쁘셨는지 일찍 잠이 드셨다.

' 큰일이여 내일 아침에 엄마 눈썹이 하얗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어 '

' 아부지 엄마 눈썹이 왜 하얘져 ? '

' 그거시 음 보름 전날 잠을 자믄 눈썹이 하얘지는겨 서윤은 절대 잠들면 안되는구먼 '

' 나 졸린데 어뜨카지 '

' 졸리믄 자야지 뭐 그대신 눈썹이 하얘졌다고 울면 안되는겨 알었어 '

' 나 그럼 안 잘겨 '


어느결에 잠이 들었는지 눈썹이 하얘진다는 말은 까맣게 잊고 일어나서 마루로 나갔는데 마당에서 소 밥을 주시던 아버지가


' 서윤 내 더위 사가시오 ' 했다.

' 앗 싫어 물러줘 내가 먼저 하려고 했단 말여 아아아앙 '

' 알어써 알어써 안 팔겨 어여 딸이 아부지한티 팔어 봐 '

' 아부지 내 더위 사가시오 '

' 그려 그려 잘 혔어 부럼도 깨물고 귀밝이술도 마셔 '

' 응 엄마 엄마 내 더위 사가시오 ~~ '


대보름날 아침 하마터면 아버지에게 더위를 살 뻔 했는데 다행히 아버지가 더위를 무르는 바람에 내가 더위를 팔았는데 엄마는 또 화를 내면서


' 시끄럽구 거그 윗 마루 바구니에 있는 호두하고 땅콩 꽉 깨물고 귀밝이술도 한모금 마셔 '

엄마는 부럼을 깨물라고 했다.

' 호두는 딱딱해서 안돼 땅콩 깨물을겨 '

' 맘대로 혀 '


친구들과 저녁에 망우리 돌리고 밥 훔쳐먹기로 해서 대보름날은 할 일이 많았다.

찹쌀에 조 수수 콩 팥 다섯가지 곡식을 넣고 지은 밥에 각종 나물로 이른 저녁을 먹고 큰길가에 있는 논에 갔더니 벌써 동네사람들이 논두렁에 불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날 못을 박고 망치로 두들겨서 구멍을 내 놓은 깡통에 어른들이 채워주는 불씨를 넣고 망우리도 돌리고 연 날리기도 하면서 까아 까아 소리도 질렀다.


대보름날 논을 밟고 다니면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면 쥐가 없다나 농사가 잘 된다나 어쨌든 어른들이 시키니까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망우리를 돌리면서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지고 어른들을 따라서 산에 올라갔다.


집안어른들이 제사를 모시고 뒷동산에 올라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데 산을 넘어오는 둥근달이 빨갛게 우리마을을 비춰주었다.


아버지는 거름자리에 수숫대로 만든 긴 장대를 꽂아놓고 그날은 황소녀석도 찰밥을 먹는날이라고 지푸라기에 찹쌀을 넣어서 끓인 소죽을 주고 산으로 오셨는데

달빛에 비친 아버지 얼굴이 감색이었다.


' 어여 소원빌어봐 농사일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날이여 '

' 응 올 농사 잘 되서 맛있는거 많이 많이 나오게 해주세유 ' 하고 빌었다.


우리들은 그날 밥을 훔쳐먹기로 했고 미정이네 집에서 만나서 훔친 밥은 우리집에서 먹기로 했으니까

산에서 내려와서 미정이네집으로 갔다.


' 미정아 큰 그릇 있지 ? '

' 그려 함지박 제일 큰거 내가 숨겨놨으니까 우리집 그리고 재은이네 미옥이네 옥경이네 예숙이네 그리고 니네집 이렇게 다니면서 밥을 훔쳐야 혀 '

' 그려 빨리 가자 언니 오빠들이 다 훔쳐먹으면 우린 못 먹는겨 '

' 맞어 빨리가자 '


미정이네집 부뚜막에서 밥하고 나물을 담고 재은이네집 미옥이네 집에서 밥을 훔쳤다.

그리고 옥경이네 집으로 갔는데 부뚜막에 아무것도 없어서 누가 다 훔쳐간 줄 알고 바로 예숙이네 집으로 갔는데 예숙이네 집도 빈 그릇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집으로 왔는데, 우리집도 벌써 누가 다녀갔는지 조금만 남아 있었다.


' 와 벌써 다 훔쳐갔어 예숙이네가 제일 많은데 거기를 젤루 먼저 갔나버 어떻하지 이걸로는 부족한데 '


미정이는 함지박을 보면서 훔친밥에 나물로는 다같이 먹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 엄마 엄마 '

아무리 엄마를 불러도 논에서 대보름놀이 하시느라 안 오셨는지 집엔 아무도 없었다.


' 우리 저 윗집 다 가보자 '

' 그래 그래 빨리 가보자 '


우리는 기로조카집 하섭이집 도근이오빠집 수염할아버지 집을 순서대로 돌고나니 함지박 가득 밥하고 나물이 담겼다.

다시 우리집 사랑방에서 밥을 비비고 엄마가 감춰 둔 떡도 다 먹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마시고 나니 다들 배가 불러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대보름날은 더위도 팔고 망우리도 돌리고 마음껏 뛰어 놀아서 좋은데 그 중에서 밥 훔쳐 먹는게 제일 재미있었다.

어떤집은 훔쳐가라고 부뚜막에 밥과 나물을 두기도 하고 어떤집은 솥도 깨끗하게 닦아놓고 부뚜막엔 밥풀떼기도 없었다.


가난해서 그런것도 있지만 시골마을에도 인심이 있는 집이 있고 야박한 집도 있었다.

그래도 보름날은 대부분 부뚜막에 아이들을 위해서 음식을 보자기로 덮어놓았다.


대보름날이 지나면 농사일이 시작되는데 아이들은 나물을 많이 먹어서 뻔질나게 변소를 드나들이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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