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먹는여우랄라 Sep 21. 2023

공간대여업자의 희로애락- 애(哀)

혼자 일한다는 것


사람에게도 앞모습과 뒷모습이 있고 제품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듯 ‘희(喜)와 락(樂)’ 사이에는 ‘노(怒)와 애(哀)’가 있다.


개인사업에 있어 애(哀)는 뭘까?’ 혼자 일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온다.


1) 휴가가 없다.

지난 한 주간, 휴가라고 스스로에게 명했다.

일을 시작하고 1년쯤 지나고 보니 내겐 모닝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저녁 시간도 없음을 발견한다. 더불어 수시로 뒷목이 당긴다. 혼자 일하다 보니, 일과와 휴식의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눈 뜨며 잠들 때 까지 모든 시간이 일 하는 시간이고 다르게 보면, 모든 시간이 노는 시간일 수 있는 것이 혼자 하는 일의 특징임을 깨닫는다. 아마도 혼자 하는 일의 가장 힘든 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좋은 점일 수 있을 것이다. 그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다. 아직 사업 초창기를 보내고 있는 내겐 일과 휴식의 모호성이 사실 가장 힘들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전과 저녁으로 운영되고 있는 독서모임 리드문을 올린다. 다음으로 글쓰기 모임의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똑같은 시간, 같은 행동을 한다. 그리곤 ‘향유’로 이동하여 청소를 하고 수익이 될 만한 일들을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실행 계획을 수립한다. 그 작은 공간을 꾸려가기 위해 매일 새롭게 ‘무엇을 시도해 볼 지를 궁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들때까지 쉬지않고 이어진다. 휴일에도 시간만 나면 검색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다음 독서모임 책을 고르고 있기에 스스로에게 ‘휴가’라고 공지하지 않으면 나에겐 ‘쉼’이란 주어지지 않는다. ‘향유’의 운영 목표가 ‘일상의 지친 사람들의 쉼과 휴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지난 한 주간을 ‘휴가’로 지정하고 책도, 일도 모두 멀리한 채 쉬었다. 아이들과 함께 늦잠을 자고 영화를 보고 산책하며 그야말로 하릴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5일을 보내고 주말을 맞이하자, 또 다시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틀은 더 쉬어야 한다며 일하려는 나를 지그시 눌러 앉혔지만 마음은 불안 앞에 서 있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 책상 앞에 앉아 월요일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과 시작해야 할 독서모임과 관련된 일들을 메모지에 적어두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휴가는 끝나 있었다.






2) 함께 할 동료가 없다.

이제 하반기에 도전해 보기로 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시간이다. 노트북을 열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초빙할 강사를 섭외한다. 그런데, 혼자 하는 일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 아이디어가 괜찮은지 의견을 묻거나 일을 실행하며 일의 무게를 서로 나누어 함께 짊어져 줄 동료가 없다는 것이다. 오롯한 자유가 철저한 외로움을 주는 것이다.


사람은 아는데로 보인다고 하더니, 사업을 열고 유독 개인사업자가 눈에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내 주변에 이토록 많은 사업자들이 있었구나.’싶을 정도로 숨겨져 있던 사업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특징이 그들이 다양한 동호회와 운동 모임 등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고 해야할 일이 많아 눈코뜰새 없었던 나는 ‘저들은 어떻게 저리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동호회에 나가야만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의 기원]의 서은국 교수는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이다.’라고 하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라 했다.

서은국 교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개인사업자들이 동호회와 여러 모임에 가는 이유는 ‘사회적 식욕을 채우기 위함이다.

이렇듯 개인사업자에게는 다그치는 상사와 속 썩이는 부하 직원이 없는 대신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나눌 동료도 없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시간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걱정, 그로 인한 피로를 떠안는다.






3) 근태를 체크할 수 없다.

개인사업자에게는 정해진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없다. 마감을 체크하거나 근무태만을 지적하는 사람도 물론 없다. 직장인들이 그토록 바라는 자유롭게 일하는 바로 그런 상태다.

그러나 그 자유만큼 보상이나 수익 역시 자유롭다는 것이 문제다.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날때까진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나와 같이 초창기 사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아침 커피 타임은 커녕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한다. 근태에 연연하지 않는 꿈같은 직장은 개인사업자에게도 꿈같은 일이다.  






4) 결국은 철저한 자기 관리 루틴이 필요하다.

개인사업은 철저한 자기 관리다. 초반부터 수익이 나는 경우라면 그 수익을 유지하고 확장시키는데 집중하면 되겠지만, 터널 끝의 작은 빛을 보며 걸어가야 하는 경우라면,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계획은 이행이 수월한 대신 일의 결과 역시 수월히 쌓아올린 종이컵 처럼 쉬이 무너진다.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눈송이 녹듯 사라지고 없어져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루틴이 필요하다.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루틴 말이다. 작게는 몇 시간을 향유에 투자할 것인지, 그 투자된 시간엔 무엇을 할지부터 크게는 향유의 방향은 무엇으로 잡고 어떻게 이끌어갈지, 세부적으로는 달별 생각과 계획, 그리고 실행이 필요하다.






나는 이 루틴의 실행을 위해 감시자를 둔다.


첫 번째 감시자는 아이들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 어쩌면 향유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는 것도 이 꼬마 감시자들 때문이다. 내 모습을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이기에 ’내 모습‘은 ’아이들에게 내가 바라는 바로 그 모습‘이어야 한다. 꾸준히, 성실히 해내는 존재, 결과가 어떠하든 묵묵히 해내고 성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존재 말이다.


두 번째 감시자는 주변 지인들이다. 

나는 계획과 동시에 여기저기 미리 알린다. 내가 곧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든 1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주변인들의 잣대와 평가가 아직도 중요한 나는 그들이 어떻게 보고 평가할지가 중요하다. 그들의 시선이 곧 감시자가 되도록 한다.


세번째 감시자는 익명의 누군가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일단, 향유 블로그에 공지글로 올린다. 익명의 누군가를 감시자로 세우는 것이다. 배수진을 치는 형국이다. 뒤는 없다. 앞으로 가는 수 밖에. 공지한대로 만들어 버려야 이 전쟁은 끝이난다. 사실, 독서모임도, 커피 수업도 그리고 메이크업 수업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터널 끝의 빛이 아직은 보일 듯 말 듯 하다.

어쩌면 저 빛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사라져 버린다해도, 그 길을 ’걸어본 나‘는 남을 것이다.

이전 08화 공간대여업자의 희로애락- 노(怒)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