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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여우랄라 Oct 06. 2023

공간대여업자의 희로애락-노(怒) 1.

곤혹스러움에 대하여


희노애락 중 개인사업자의 노(怒)와 애(哀)의 차이는 분명하다. 

노(怒)는 명확한 상황이나 상대가 존재하는 결괏값일 때가 많다. 반면, 애(哀)는 운영자인 내가 겪는 애환이다. 홀로 사업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데서 오는 서글픔과 힘듦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즉 누군가로부터 오는 감정이라기 보다 나로부터, 내 안으로부터 오는 감정이다. 아마도 지금은 초기단계에 있으므로 노(怒)보다는 애(哀)가 더 많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향유에서 느끼는 노(怒)는 무엇일까? 고객과의 접점이 많지 않은 ‘향유’에서는 분노가 일어나는 상황보다는 ‘이것만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것만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입.퇴실 시간 무시하기  


공간대여는 누군가의 '공간'을 내가 예약한 '시간만큼' 비용을 내고 빌려 쓰는 것을 말한다. 향유는 공간대여업에서도 ‘공유서재’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지만 책을 팔거나 커피를 팔지는 않는다. 공간대여업의 상품은 ‘공간 그 자체’이고 수익은 공간을 사용하는 ‘시간당 지불되는 비용’이다. 즉, 공간과 시간이 상품이다. 그렇기에 수익의 한계가 분명한 사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개의 사람은 상대를 볼 때 나를 기준으로 본다. 대개의 사람들이 나와 같을거라 예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 밖의 사람을 만나면 늘 당황하고 어찌 할 바를 몰라 한다.

나는 ‘향유’를 열기 전 여러 공간을 빌려서 사용해 보았다. 워낙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공간을 찾아 다니는 것도 좋아했기에 예약 페이지에 예약을 걸고 책을 들고 방문했었다. 모든 공간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기에 예약된 시간에 맞춰갔었고 일찍 도착한다해도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예약 시간에 들어갔고 퇴실시에도 다음 손님을 예상하고 예약된 시간만큼만 사용하고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처음 향유를 열고 이 ‘당연함’이 어떤 사람들에겐 당연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예를 들면,  

    예약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하여 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고 달리 갈데가 없다는 손님, 비가 오니 일단 문을 열어달라는 손님이었다. 

무척 당황스러웠기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한동안 생각을 가다듬었던 것 같다. ‘안된다’고 하자니 야박해 보였고 바로 ‘이해해 주자’니 앞으로도 당연하게 여길까 걱정되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무인공간의 특성을 설명해주고 다음부터는 시간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또 다른 경우는 예약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퇴실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에 비하면 미리 연락을 취해 양해를 구하고 내 아량으로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일찍 도착하는 경우는 양반인 셈이다. 퇴실하지 않는 경우는 양해를 구하지 않는 행동에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화가 났고 그렇다고 따로 돈을 청구하거나 직접 가서 퇴실 조치를 할 수도 없어서 앞선 경우보다 더욱 곤혹스럽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정중히 시간이 종료되었음을 알리고 연장 안내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문자를 읽고도 퇴실하지 않는다. 30분이 지나고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렇지 않게 ‘지금 가려고 해요.’라는 답이 돌아왔고 목소리마저 퉁명스러웠다. 마치 인정이 없는 사업자에게 불만이 생겼다는 듯이 말이다. 

처음엔 나의 유약한 성격을 탓했으나 그것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공간을 이용하는 연령대, 성별, 그리고 그들이 가진 특성을 생각해 보았다.




향유는 한적한 산자락 아래에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불편하다. 그리고 파티룸이 아닌 서재 컨셉이다. 그러다 보니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이 연령대에게 ‘공간대여’가 과연 자연스러울까? 서울에는 그래도 이런 컨셉의 공간대여가 여럿 있지만, 향유가 있는 지역에는 없다.’ 즉, 공간대여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결론이 추려졌고 변화를 시도했다.


1) ‘활짝데이’라는 오픈 이벤트를 열었다.

이 지역에 오는 연령대에게 ‘공간대여’가 무엇인지 알리고 대여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한 3개월 가량 아침부터 오후까지 문을 열어두고 내가 상주해 있었다. 누구라도 편안하게 들어와서 볼 수 있게 했고 필요하면 커피를 내려주거나 간식을 주기도 하며 사용방법과 비용을 설명해 주었다. 




2) ‘향유’ 출입문 유리에 공지글을 붙였다. 

‘공간대여는 공간과 시간이 상품입니다. 인원, 시간 엄수해 주세요. CCTV 녹화중’

활짝데이로 사용방법을 이해시켰으니 규칙을 지키도록 인식시키는 조금은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해 보였다. 





3) 예약 시, 보내지는 안내문자를 구체화했다. 

예약일 전날과 당일에 ‘향유’ 출입번호와 이용 안내 문자를 보낸다. 이 때, 이용시간을 명시하여 전달하고 퇴실 10분 전 정리를 공지 한다. 더불어 예약 종료 10분 전에도 퇴실 알림과 이용 연장 안내문을 보낸다.



다행히 유리창에 공지글을 붙이고 예약문자를 구체화한 이후로는 시간을 어기는 사례가 많이 줄었다. 더욱이 시간을 지키지 않았으면서도 뻔뻔하게 퉁명스럽게 구는 손님은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걱정과 노력이 무색할만큼 완벽하고 빠른 결과를 얻는 것이 무엇인지. 



'인기가 많아져서 예약이 꽉차면 된다. '



앞뒤 예약이 있는데, 어찌 일찍 들어갈 수 있고 늦게 퇴실 할 수 있겠는가?

앞 뒤 시간이 비어있다는 것을 이용하는 고객도, 나도 알고 있기에 늘 갈등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진 앞 뒤 시간이 비어있을 경우에는 넉넉한 시간을 부여한다. 조금 일찍 들어갈 수도, 조금 늦게 퇴실 할 수도 있는 여유를 준다. 그리고 설명해준다. 앞과 뒤에 지금은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만약 예약이 있을 땐 시간을 꼭 지켜주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결국, 내가 매진해야 할 것은 고객의 태도에 예민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공간을 더 가치롭게 알리고 홍보하는 일이다. 인지도가 올라가고 유용성이 알려지게 되어 이용자가 늘어나게 되면, 지금 하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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