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나 트럼펫은 누구나 할 수 있다?

by 요기남호

요가나 트럼펫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없다. 있다와 없다를 나누는 것은 무엇일까.


요가를 시작한 후에 주위의 여러 지인들에게 요가를 권했다. 내가 먼저. 요가가 나의 몸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니까. 젊었을 적엔 해변에 놀러가면 웃통 벗기를 거부했었다. 물론 그때는 수영을 못했기도 했지만, 깡마른 상체를 보여주기가 싫었다. 뭐, 보여줄게 없었다. 50 고개를 넘은 후에는, 세월의 나이테인 아랫배가 제법 볼록하게 나와, 또 해변에서 웃통 벗기를 주저했다. 보여줄 건 있는데, 그게 그리 아름답지가 않았다. 그런데, 요가를 2년 넘게 한 지금은, 샤워 후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에 씩 웃게 된다. 질적인 변화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때마다, 지인들에게 권했다. 체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과잉 표출현상이랄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먼저, 일언지하에 자신은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주로 취향이 전혀 맞지 않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다. 이런 분들은 그냥 요가가 인연이 닿지 않을 뿐이다. 아직은. 나중에는 어찌될지 누가 알랴.


관심이 있어서, 시도는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계속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열에 한두명 정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가야 두 달을 못 넘긴다. 왜 그럴까. 그저 요가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인 사람들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왜 똑같은 요가를 시작한 후, 어떤 사람은 존 벌트만 처럼 요기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곧 그만둘까.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60일이 고비라 한다. 첫 60일 동안 꾸준히 새 악기를 연습하면, 그 악기를 계속하게되고,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그만두게 된다고. 이유는 다음과 같지 않을까. 60일 연습 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맬로디가 그럴듯한 곡을 최소한 한두개씩은 그런대로 연주할 수가 있게된다.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제 나도 이런 아름다운 곡을 발산할 수가 있구나. 그러면, 연주를 전혀 못하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요가도 비슷하다. 60일을 꾸준히 하면, 30여개의 아사나들을 할 수가 있게 된다. 아쉬탕가요가의 경우에는 초급시리즈의 절반 정도다. 예전엔 몸이 말을 안들어 할 수가 없었던 아사나들도 제법 되기 시작한다. 신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상태가 된다. 고조선 신화에서 곰이 100일을 인내한 후에 사람이 되었듯이 말이다.


요가나 악기를 배울때 60일을 넘기는 마음상태와 넘기지 못하는 마음상태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절박감이지 않을까 싶다. 그 절박감이 어떤 성격이든지간에. 육체적이든, 심적이든. 60일 이상을 버텨 승화로 이끌게 하는 동력은 바로 절박감에서 나오지 않을까.


절박했다. 요가가 내 앞에 왔을때는. 아니 이미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요가의 신을 깨닫고 붙잡은 때는. 영문도 모른체 들이닥친 중년의 한파에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내가 이런 정도의 인간 밖에 안되었었나하는 자괴감의 상태였다. 제법 긴 시간을 그 상태에서 허우적거렸다. 어느날 주위를 둘러보자, 사춘기에 접어들던 딸아이도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섬뜩했다. 나 자신부터 다시 세워야했다. 딸아이가 일어서는데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난감했다. 그때 요가의 신이 나에게 다시 다가왔다. 우연을 가장한 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붙잡고 시도해보는 수 밖에는. 절박했다. 그렇게 난 요가를 시작했다. 나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다시 세우기 위해.


그후 굴곡이 심했던 2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난 카포타사나를 하고 있고, 딸아이는 내가 현상황에서 허락할만한 남자친구가 생겼다. 평안함을 되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도. 딸아이도. 딸아이와 남친은 얼마전부터 나에게서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 존이 첫 시간에 나에게 가르쳐주었듯이, 아쉬탕가 초급시리즈의 첫 두 아사나인, 수리야 나마스카라 A 와 B, 그리고 마지막 세가지 아사나인 요가 무드라, 파드마사나, 우트프루티 를 첫날 가르쳤다. 그리고 둘이서 요가를 배우러 올때마다 아사나 하나씩 하나씩을 더해주고 있다. 물론 절박감을 갖기엔 이 둘은 아직 어리다. 먼훗날 요가와의 이 찰나적 만남을 기억하길 바랄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귀차니즘의 화신에게 트럼펫이 최적의 악기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