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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Nov 13. 2023

[안나 카레니나] - 왜 그 선택밖에 없었을까? 2/2

함께 책 읽기 ④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 헛헛한 가슴이 무엇으로 채워질까?

 예전에 '게임 이론'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원거리 연애를 할 때, 너무 보고 싶다고 더 자주 보고 싶다고 상대의 지역으로 가서 방을 얻어 살게 되는 사람은, 게임 관점에서 볼 때 약자가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원래 살던 곳에서 떠나 타지 생활을 하게 되면 자신의 가족, 자주 만나던 친구, 주요 관심사, 주된 방문지와도 완전 차단되어서 자신의 전체 관심사에서 연인이 차지하는 상대 비중이 극단적으로 상승해서(연인 생각만 더 많이 하게 되어서) 더 관계에 집착하고 상대에게 더 바라게 되고 더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안나도 "난 너만 있으면 돼"라는 마음으로 브론스키를 만나기 시작했을 테지만, 이제는 "이제 나한텐 너밖에 없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아들도, 남편도, 가정도, 친척도, 사교계도 없이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게 된 안나와, 장래를 바라보던 군대도 그만두고 그렇게 즐기던 사교계도 떠나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브론스키는, 어딘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이것저것에 매달린다. 브론스키의 영지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기도 하고, 외국 이곳저곳에 나가 살기도 하고, 그림에 심취해 보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사교게에 나가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도 세뇨자를 돌보고 사랑하는 데서 오는 기쁨, 남편과 자식과 함께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는 안정감과 충만감, 친척 및 지인들과의 정서적 유대와 인정, 사교계에서 받았던 모든 찬사와 흠모를 대신할 수는 없었던지 둘은 허전한 가슴을 안고 결국 러시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 난 무엇을 위해 이 선택을 했던가?

 사랑의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그들의 앞길에 점점 그늘이 생기기 시작한다.
 러시아로 돌아와도 둘만의 폐쇄된 관계 속에서는 일상적인 삶이 사라져 텅 비게 된 남아도는 시간, 다양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충족되어 왔던 감정과 욕구들이 해결될 수는 없었다. 둘은 점점 말다툼했다가 화해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브론스키는 점점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늘어나고 사교계 모임에 나갔다가 늦게 돌아오기도 했다. 다툼이 잦아지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안나는 점점 브론스키의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혹시 날 사랑하기는 한 건가요? 내 모든 걸 그대 위해 버렸는데

                                                     가수 웅산 / <사랑하기는 한건가요..> 중에서

 

 왜 다툼이 생겼을까? 안나는 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다 버렸는데, 브론스키가 보여주는 사랑은 그에 못 미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진정 브론스키는 온 마음을 다해 안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안나가 가정을 저버린 순간, 연인 중 한 명이 상대를 위해 자신의 집을 떠나 먼 곳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순간, 그 사람은 '사랑'을 위해 많은(모든) 것을 걸게(잃게) 되는 것이다. 많은 걸 걸고 난 후에 이전과 똑같이 따뜻한 관심 정도를 받았으면 하는 소박한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건 것과 동등 이상의 것을 기대하게 되고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이미 이전의 사랑과 같은 것이 아닌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 되고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전보다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고 자신의 희생에 대해 '더 큰 보상'을 원하게 된다. 이를테면 평소면 한 번 핀잔을 주고 넘길 일을 "내가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너를 만나고 있는데(혹은 집 나와서 너랑 살고 있는데) 네가 나한테 이런 식으로 해?"와 같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을 위해 투자/희생을 덜 한(기존 일상의 다른 영역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의 입장(브론스키 /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 연애 상대자)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과도하고 반복적인 요구'에 점점 지쳐가게 된다. 

 원인은 상대에게 있지 않다. 1) 모든 걸 버리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올라간 사랑의 중요도와 그에 따라 높아진 기대감, 2) 그것이 아무리 크다할지라도, 이성애 하나만으로는 근본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성질의 허전한 가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상대를 다그쳐봤자, 죽을 각오로 사랑에 더 몰두해 봤자 원래부터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게 가능할 줄 알았던 것이다. 뜨거운 열정이 갈수록 더 강하게 중단 없이 타오르고, 처음과 같이 다른 결핍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왜? 해보지 않아서 안 되는 줄 몰랐던 것이다. 

 행복 = 주어진 사랑의 크기(분자)/기대하는 사랑의 크기(분모)와 같은 식으로 계산되는 거라면, 구조적으로 똑같은 사랑을 받더라도 더 많이 기대할수록 실망은 더 커지고 행복은 작아지는 불행한 구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가수 조용필 /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을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사랑의 기술』, 1.사랑은 기술인가? 중에서]


 사랑과 정열에 큰 기대를 걸게 되지만, 원래부터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파국에 이르게 되고 결국 실망과 권태만 남게 된다. 하지만 이미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싸우고 화해하기를 되풀이하고, 현실적 근거에 반하는 장밋빛 전망을 해보지만 매번 부서지고 만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부질없는 자위이자 초라한 합리화일 뿐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다 버렸는데, 그 사랑의 진정성이 의심되고, 그 사랑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으며, 더 이상 나아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는 판단이 들게 되자, 안나는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서 브론스키를 다시 만난다고 한들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안나의 삶은, 그런 것인 줄조차 몰랐던 불가능한 시도 끝에 '예정된'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 마무리

 "너 두고 봐라 임마. 아빠만큼 잘해주는 사람 있나. 결혼하지 말고 아빠랑 같이 살자. 응?" 딸아이를 보고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집사람이 옆에서 큰일 날 소리 한다고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면서 내 옆구리를 꼬집는다. 하지만 나도 안다. 아무리 잘해줘도 아빠가 남편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빠는 아빠고, 남편은 남편이고, 짜장면은 짜장면이지, 짜장면 지가 아무리 맛있어봤자 짬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짜장도 먹고 짬뽕도 먹고 밥도 먹고 살아야지, 지금 입에 너무 맛있다고 평생 그것만 먹고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더불어

 -내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그들이 줄 수 없는 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삶에서 온 결핍을 그/그녀를 통해 충족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스스로 잘 생각해 볼 일이다. 
상대의 행복을 위해? 아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쫓아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나를 위한 힘겹지만 소중한 노력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사랑하기는 한건가요..> 두 곡 모두 좋아하는 곡이고 의미 깊은 가사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 주어서 인용한 것이고, 비판/폄하의 의도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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