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래빛 Jun 16. 2021

몸의 통증, 마음의 통증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10


불안증세가 조절된 것과는 별개로 어깨와 무릎의 통증은 계속되었다.


나는 지속적으로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소염진통제를 6개월 넘게 먹어도 전혀 호전이 없었다.


이렇게나 오래 약을 먹어도 되는 건가 걱정이 앞서 의사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심드렁했다.



"선생님, 제가 소염진통제를 6개월이나 먹었는데.. 이렇게 오래 먹어도 되나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요.."


"6개월요? 별로 길게 드시지도 않았네요, 아직 통증이 있다면 먹어야겠죠"


"..."



잠시 소염진통제를 끊으면 통증이 증폭되어 약 일주일간은 더욱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어깨를 들어 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 난 머리를 묶을 수 조차 없었다.


MRI를 찍었지만 의사는 '오십견'으로 추정되고, 통증은 염증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또한 무릎의 통증도 심각해 30분 이상 걸을 수 없었고, 주사를 맞아도 무릎에 물이 차며 부어올라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 절뚝거리며 냉장고로 걸어가 얼음팩을 꺼내 냉찜질을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분명 나이는 삼십대 중반을 갓 넘었을 뿐인데, 어디 골골한 노인네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효과 없는 정형외과 치료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말을 꺼냈다.


"저.. 선생님.. 어깨와 무릎이 아파서 치료받고 있는데 통증이 나아지지가 않아요..

혹시 제 불안장애와.. 연관이 있을까요?"


"아 통증이 있구나~~~

물론 연관이 있을 수 있어요, 만약 소염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다면 약을 하나 추가해줄게요"


"아 네! 소염진통제를 오래 먹어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요, 추가해줄 테니 먹어봅시다"



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하나 더 처방받았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절반씩 맞물린 캡슐 모양의 약이었는데, 나는 그 약의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효능/효과]
ㆍ주요 우울장애의 치료
ㆍ범불안장애의 치료
ㆍ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성 통증의 치료
ㆍ섬유근육통의 치료
ㆍ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에  반응이
    적절하지 않은 골관절염 통증의 치료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에

   반응이 절하지 않은 골관절염 통증의 치료


바로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약을 매일 아침 한 알씩 먹기 시작하자, 통증이 서서히 감소되었다.


물론 특정 동작을 하거나 무리를 하면 통증이 생겼지만, 그 전과 같이 심하지 않았다.


통증이 조금씩 조절되며 호전되자 정형외과 의사는 재활치료를 권유했다. 그동안은 통증이 너무 극심해 재활을 시작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재활치료사와 함께 아프지 않은 범위 내에서 어깨와 무릎의 근육 강화 운동을 시작했고, 그 범위를 아주 천천히 넓혀갔다.


그렇게 재활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자, 어깨를 수직으로 올릴 수 있게 되었고,

무릎도 많이 호전되어 계단을 내려갈 때도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난 내 몸의 통증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론적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에서 비롯된 병은 '불안장애'이고

어깨와 무릎의 통증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동안 나의 마음은 끊임없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많이 지쳤다고 말이다.


나는 내게 왜 이것도 못하냐고, 왜 이렇게 나약하냐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질질 멱살을 끌고 갔었다.


너무나 싫은 상사의 목소리만 들어도 생겼던 두통과 이유를 알 수 없던 허벅지의 통증도,


싫은 것을 어떻게든 해내야만 하는 스트레스에 견딜 수 없게 된 몸과 마음이 내게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난 무엇을 위해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내가 스스로를 학대하며 영혼을 파괴시킨 것만 같았다.



미안해...


가장 소중한 날 돌보지 않아서 미안해


너무 잘 해내고 있다고 한마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돈을 벌기 위해 나 자신을 너무 소모해서 미안해


미안해...







-  계 속  -


※ 이미지 출처 - 스튜디오 지브리











이전 09화 이상한 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