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래빛 May 18. 2021

나만의 페인팅테라피의 시작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8


나는 병원에 가거나 산책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


아직은 혼자서 멀리 나가거나 지하철을 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도안이 된 그림을 유화로 색칠하는 것이었다.


흔히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DIY 유화 그리기 세트'를 구매해서 유화로 색상 번호에 맞추어 색칠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도안 속 번호에 맞는 색상을 칠하는 것으로 단순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쉽게 집중할 수 있어 잡념이나 불안한 생각에 빠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었다.


끈적한 유화물감이 캔버스에 슥슥- 삭삭- 칠해지는 질감과 소리는 마치 ASMR처럼 내 귀를 즐겁게 해 주었고, 선명한 색상들이 공간에 채워지면 나의 눈도 즐거워졌다.


그리고 색칠이 끝나서 작품이 완성되면 뿌듯한 성취감도 느껴졌다.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도안은 '이웃집 토토로'의 그림이었다.


경쾌한 여름날 개울가에 앉아서 토토로와 소녀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이었다. 청량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제목 : 낚시 / 캔버스 유화, 50cm × 40cm


당시 어깨가 좋지 않았던 나는 이 그림을 약 3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는 너무 마음에 들어 거실 창가에 걸쳐두고 항상 바라보다가, 그 이후에는 거실에서 부엌으로 향하는 벽에 걸어두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 장면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았다.


빨리 새로운 그림도 옆에 같이 걸어주고 싶었다.

두 번째로 선택한 그림도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이었다.


제목 : 토토로 같이가 / 캔버스 유화, 50cn×40cm


메이가 우연히 토토로를 발견하고 뒤따라가는 그림이었는데, 파란 토토로가 당장이라도 발을 움직여 걸어 나올 것처럼 생동감 있다.


덤불나무로 된 통로에 여러 가지 녹색이 들어가 칠할 때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덤불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도 노란빛으로 묘사되었다.


이 그림도 약 2개월 반에 걸쳐 완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토토로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관심이 생기면서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웃집 토토로'는 1988년에 개봉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아빠와 두 소녀가 엄마의 요양병원 근처 시골에 이사 오게 되면서 숲 속에 사는 토토로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였는데, 어린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순수한 동심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토토로가 소녀들을 폭신한 배 위에 태우고 밤하늘을 나는 장면에서는 벅차오르는 감동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훌쩍거렸던 것 같다.  그 장면에 어우러진 멋진 배경음악도 너무나 듣기 좋았다.


이렇게 나는 37살의 나이에 뒤늦게 '이웃집 토토로'에 푹 빠져 토토로 영화음악을 들으며 더욱 즐겁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토토로 인형을 사모으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귀여운 토토로 인형들은 머리 윗부분에 손수 실을 꿰어 유화 그림 아래에 함께 걸어주었다.


꼬리 뒷부분에는 테이프를 붙여 토토로가 정면을 바라보도록 벽에 고정했다.


지금은 우리집의 마스코트가 된

씩 웃는 토토로와 수줍게 꽃을 내미는 토토로이다.





안녕! 우리집 토토로들!


나의 동심과 희망을 지켜줘!






<  계속  >




이전 07화 불가역으로부터의 회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