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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May 18. 2021

불가역으로부터의 회귀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7


"내 소중한 딸이 이렇게나 아프다니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널 낫게 해 줄 거야, 엄마가 널 낫게 해 줄 거야..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지금 이때를 기억해.. 엄마를 생각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엄마는 죽어서도 네가 아프다고 밥을 안 먹으면 와서 때려줄 거야!"



엄마의 큰 트렁크 안에는 온갖 보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갈치조림, 낙지 무침, 오리탕, 홍삼...  


나는 약기운에 입을 떡 벌린 채 정신없이 잠을 잤고, 일어나면 엄마의 보양식이 눈앞에 대령되었다.


엄마는 내가 배부르다고 그만 먹겠다고 하면 딱 한 숟갈만 더 먹기를 권했다.


나는 제법 사람 꼴이 되어갔다.

엄마의 정성과 함께 때마침 증량했던 약으로 불안증세도 조금 더 줄어들었고, 식욕을 돋워주는 약도 함께 효과를 발휘했던 것 같다.


엄마는 조금 살이 오른 내 모습을 보고 다소 안심하며 나를 도닥인 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때 난 느꼈다.

내가 불가역(不可逆)의 영역에서부터 가까스로 회귀해 왔다는 것을.



당시의 나는 약을 먹고 있음에도 점차 불안한 생각이 증폭되는 것을 걷잡을 수 없었는데, 그때의 느낌은 마치 내가 돌아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질질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득한 느낌..


한 가지 생각을 하면 불안에 불안을 더해 최악의 결말을 끊임없이 상상해내고, 그 생각 안에 침몰되어 더욱더 불안에 떠는 일의 연속이었다.


치 뇌 속에서 불안으로 이루어진 뉴런들이 증폭적으로 뻗어가는 듯했다.


뉴스를 보다가도 "살해", "성폭행", "자살" 등의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만 내 귀에 아주 크게 강조되어 들렸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공포에 떨곤 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한 9일간의 시간으로 인해서 나는 무기력하게 질질 끌려가던 것을 멈추고 방향을 바꿔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직 돌아갈 길은 멀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도착할 것이다.




며칠 후 병원에 갔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기쁜 듯이 달려와 말했다.


"은래빛 환자님? 오늘 입원병동에 자리가 났어요! 입원하시겠어요?"

"... 아, 네 일단 의사 선생님 먼저 만나 뵐게요"

"네네 지금 들어가셔요!"


의사는 진료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았다.


"어때요, 잘 지내셨나요?"

"네.. 약을 늘려서인지 불안도 줄고 입맛도 좋아졌어요.. 그리고 친정엄마가 오셔서 같이 대화도 많이 하고 해선지 훨씬 마음이 안정되었어요"

"오호~ 그랬어요? 아주 잘되었네, 좋아 보이네요"

"... 선생님 입원 병동에 자리가 났다고 하는데.. 저.. 입원하면 뭐가 더 다른가요?"

"아, 은래빛 환자 이제 입원 안 해도 됩니다."

"네?"

"다 나았잖아? 나도 딱 보면 알아, 몇십 년 하다 보니 점쟁이 수준이거든. 입원 안 해도 되겠네"

"..."

"약 용량 잘 조절하면서 통원치료하면 돼요, 나아진 거 같아 다행이네요, 3주 후에 봅시다"

".. 네"


뭐야 진짜 점쟁인가.

나의 호전이 의사의 눈에도 보인다니 기뻤다.

나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아주 살짝 웃었다. 마음으로는 웃었는데 얼굴에는 나타났을지 잘 모르겠다.



이제 힘내서 다시 걸어가 보자.


이제는 내가 스스로 나를 치유해보자.



<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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