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래빛 May 24. 2021

이상한 꿈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9



난 최초 처방받은 약에서 2번을 증량하자 불안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약의 용량을 찾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밤마다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어느 정도로 이상한 꿈이었느냐 하면 흔히 말하는 개꿈이어서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생생하고 서사적인 꿈이었다.


나의 전생인가?라고 진지하게 고민될 만큼의 상세하고도 스토리 있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을 꾸고 나서 아침에 눈을 뜨면 한동안 그 꿈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슬픈 꿈을 꾸었다면 나는 꽤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꿈속에서의 느낀 그 감정이 물밀듯이 나를 덮쳐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12살 소녀였고 고아였다.

때는 개화기였고 그럭저럭 잘 사는 상인의 딸이었던 나는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양친을 잃었다.

어찌할 바 모르는 나를 어떤 일본 신사가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그 남자를 따라다니며 생활하게 되었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계약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문간에서 기다리곤 했다.


그는 나에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의 애정과 관심만을 주었고, 대하는 태도는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양녀지만 언젠가는 그와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나는 17세의 아가씨가 되었다.

그는 나에게 사업차 본가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를 사랑했던 나는 토달지 않고 알겠다고 말했다.


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하자 그는 어떤 큰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게이샤들이 손님을 대접하는 고급 술집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문간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예쁜 게이샤가 나와 나에게 손짓 발짓으로 들어오라 안내하여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녀는 내게 예쁜 옷을 입혀주고 화장을 시켜주었다.


그리고는 어떤 방안에 나를 데려가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이렇게 고운 옷도, 화장도 모두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 모습을 빨리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웬 모르는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일본어를 할 줄 몰라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려 했지만 그는 내 옷을 벗기고 나를 겁탈하려 했다.

안돼!!! 도와주세요!! 나는 필사의 힘을 다해 그 남자를 뿌리치고 방을 뛰어나갔다.


'그 사람은 어디 있지?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난 필시 그 사람이 날 걱정하며 저 무례한 남자에게 크게 화를 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을 뛰어나간 긴 복도의 끝에서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었다.


"너 때문에 내 사업을 다 망쳤어! 큰 계약이 엎어졌다고!!!"


그는 처음 보는 무서운 얼굴로 내게 화를 낸 다음 휙 뒤를 돌아 나가 버렸다.


난 그의 모습에 크게 절망했고, 울면서 자책했다.


저 방에서 그 남자를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그가 내게 화내지 않았을까?

난 왜 뛰쳐나온 거지?



그는 그렇게 뒤돌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고,



난 그 가게의 게이샤가 되었다.



나는 항상 창밖을 보며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와 비슷한 뒷모습이 보이면 비를 맞으며 뛰어가 붙잡았지만 그가 아니었다.


다른 게이샤에게 그의 이야기를 하며 내가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 두려움을 호소하며 울곤 했지만, 나에게 다정하게 말해주는 게이샤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비웃거나 뒤돌아 가버렸다.


난 계속 그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남자들에게 과 웃음을 파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난 생각했다.


'그때 내가 방에서 뛰쳐나가지 않았다면.. 그가 날 떠나지 않았을까?'



이 꿈을 꾸고 나서 나는 한동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누가 봐도 그 남자는 나를 술집에 팔기 위해 그곳으로 데려갔을 테지만, 꿈속의 나는 자신만을 자책하며 그 사람을 기다렸다.


꿈속에서 내가 입었던 기모노의 문양이나, 복도의 다다미, 그리고 비 오는 날 맞은 빗방울의 느낌까지 선명히 느껴졌다.


그 소녀의 감정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 슬픈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다음 진료를 보러 가서 난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너무나 생생하고 이상한 꿈을 꾸는데.. 이건 왜 그런 걸까요?"


"흠.. 글쎄요.."


"약을 먹고 나서 시작된 증상인데.. 뭔가 심리적으로 치유되는 과정일까요?"


"꿈은 그냥 꿈일 뿐이죠.

 만약 나와 최면치료를 해서 심리적인 상담을 진행했다면 모를까.. 그런 걸 하진 않았잖아요?"


"네에.."


"네 큰 의미를 두지 마세요. 다음 진료 때 또 봅시다"






< 계속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 영화 게이샤의 추억





이전 08화 나만의 페인팅테라피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