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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Jul 07. 2021

심리상담 - 나를 알아가는 길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12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한때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상담에 관심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상담의 의학적인 치료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전문가에게 털어놓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거나, 의외의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약 5년 전쯤 한참 육아문제와 회사 업무로 힘들 때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고 나의 노력에 대한 지지를 받으면서 심적으로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휴직을 한 후 우연히 발달장애아를 양육하는 부모를 위해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심리상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을 했다.


그리고 약 1년 반 정도 기다린 후 집 근처의 복지관에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상담사의 첫인상은 매우 차분했고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그녀는 나의 사소하고 찌질한 고민 얘기에도 진지하게 듣고 조언을 해주었다.


대략 나이가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상당히 큰 자녀 둘을 기르고 있는 40대 여성분이었다.


첫 상담과 두 번째 상담에서는 두서없이 회사 업무, 육아, 나의 몸과 마음이 아팠던 것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세 번째 시간에는 심리검사를 한 후 그 결과에 대해 대화하기로 했다.


심리검사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검사지였다.


질문이 다소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검사지로,


"나는 종종 불에 매혹된다", "나는 동물을 다치게 한 적이 있다"와 같은 다소 '으잉? 뭐지?' 하게 하는 질문들이 꽤 있었다.




검사가 끝나고 상담사 선생님이 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이 검사가 처음 나올 때는 정신질환자를 감별하기 위해서 나온 검사였어요"


"네? 진짜요? (어쩐지 이상한 질문이 많더라니)"


"네, 그런데 이 것을 오랫동안 임상적으로 사용을 해보니 오히려 일반인들에게도 잘 적용된다는 것이 증명돼서 널리 사용하고 있죠"


"오호.. 그렇군요.. 제 성향은 어떻게 나왔나요?"


"네, 은래빛님은 전부 정상 범주 내 수치가 나왔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자기표현 욕구'이네요"


결과지를 보자 그래프 중에서 하나만 평균 수치 상한선을 벗어날 듯 말 듯 치솟아 있었다.


"말 그대로 자신에 대해 표현하고, 남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고, 남들 앞에 나서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높은 사람입니다.


런 사람은 이러한 욕구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어요"



내 심장이 움찔했다.


맞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고, 연극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는 나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은래빛님은 저와 대화하면서 연극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대로 여기 잘 결과가 나온 거 같아요.


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그 욕구를 잘 충족시켜 준다면 살아가면서 다른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겨내는 것이 수월해질 거예요"


"네에... 그렇군요.. 그렇네요.."




나는 내가 연극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 모르겠는가. 그것 때문에 오랜 세월 괴로웠는데.


하지만 객관적인 검사결과로 제 3자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은 뭔가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인데,


그동안 나는 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을까?




나는 연극을 좋아하는 나 자신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자책감과 자괴감을 느껴왔다.


난 더 이상 스무 살이 아니고, 내가 보살펴야 하는 장애를 가진 내 아이가 있는데,


연극을 하고 싶은 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나의 이런 마음을 털어놓아도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았다.


- 넌 자기애가 많아서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 아직 철이 덜 들었어

- 네 나이가 곧 마흔인데 아직도 그게 하고싶니?


난 그동안 항상 그것을 '고쳐야만 하는 나의 성향' 정도로만 인식해왔다.



언젠가 아이가 다니는 특수학교 학부모 모임에 나가 술을 마시며 서로의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 나는 연극이 하고 싶어 너무 마음이 괴롭다고 말을 했다.


가장 기가 세고 대화를 주도하던 맏언니가 말했다.


"아니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실적으로 못하는 건데, 그걸 왜 계속 고민해?

나라면 그냥 딱 제쳐놓고 잊어버리겠어.

안 그래?"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빛은 덤이었다.


"..... 아.. 네에.. 그러네요..."


나는 그날 시무룩해져서 집에 돌아왔다.



그렇지. 현실적으로 하기도 힘들고 해서도 안 되는 거라면 잊는 게 맞겠지.

그런 얘길 거기서 왜 했지?


그녀의 말은 너무나 단순 명료했고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꺼낸 나 자신이 정말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신을 알아가는 것은 평생을 두고 계속된다.


난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하고 싶던 것에서부터 나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주 사소하지만 큰 깨달음이었다.



스스로를 억누르며 사회와 주위 사람들이 요구하는 의무만을 수행하느라 괴로운 삶..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저기요! 저는요!


어떤 형태로든 평생 연극을 하면서 살 거예요!


혹시 알아요? 내가 나중에 극단을 세워 서울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연출가가 될지!


인생은 알 수 없는 거거든요!




< 계속 >



제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유화, 50cm × 70cm


이 그림을 주문제작해서 그린 가장 큰 이유가

토끼가 등장하기 때문이라는건 안비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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