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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Sep 13. 2021

약 감량과 글쓰기의 시작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14


불안장애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3개월이 지났다.


가정이 점차 안정되어 가고, 어깨와 무릎도 재활치료로 호전되어 가면서 나는 조금씩 활력이 생겼다.


나는 문득 떠오르는 삶의 이야기들을 즉흥적으로 다이어리에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아주 소소하게 내가 좋아하는 토끼 인형에 대한 귀여운 시를 쓴 것을 시작으로,


회사에서 겪은 힘들었던 일과 인간관계에서 느꼈던 회의감,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자전적인 글들을 짧게 쓰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때 서울시에서 장애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글 공모전'이 열렸고, 나는 그곳에 해준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에피소드를 적어 응모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게 되었다.


물론 장애인가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었기 때문에 응모자수가 많지 않았고 가장 낮은 상이었지만, 상을 타자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소식을 들은 남편도 장난스럽게

 "은 작가님~ 시상식에 입을 드레스 고르셔야 지요오~"

라고 말하며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의사에게 인사를 했다.


"네 은래빛씨, 잘 지내셨나요?"


"잘 지냈어요, 집에서 그림도 그리고 종종 요리도 하고.. 글도 쓰고요"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요?"


"아뇨.. 제가 원래 좀 집순이라서 그런지.. 집에 있는 게 좋아요"


"안정되어 보이네요~ 이제.. 슬슬 약을 줄여볼까요?"


"네에.. 좋아요"



당시 나는 아침저녁으로 신경안정제와 세로토닌 촉진제를 먹고 있었는데, 먼저 오전에 먹는 신경안정제를 1/2알로 줄였다.


불안을 느끼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활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약을 줄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지 않았고, 오히려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오전의 신경안정제를 절반으로 줄이고 나서, 6주 뒤에는 오전의 신경안정제를 끊었다.


다행히도 어떤 부작용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6주 뒤에는 의사와 상의하여 저녁에 먹는 신경안정제를 1/2로 줄였다.



저녁 약을 줄인 다음날 오후였다.


낮잠을 자러 침대에 누우려는 찰나,


아주 짧게 '공황'이 왔다.


나는 침대에 누우려던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이 약 2초 정도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미처 두려워하거나 그 감각 속에 빠지기 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약을 서서히 줄여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저녁 약을 줄인 건 좀 무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난 금세 낮잠에 빠져들었다.




한 번 더 그런 증상이 있으면 다시 약을 증량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다행히도 그때 한 번뿐 증상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6주가 지나고 나는 저녁에 먹는 신경안정제도 완전히 끊게 되었다.




"은래빛씨.. 신경안정제를 모두 끊고 세로토닌 촉진제까지 끊었는데.. 특별히 다시 불안을 느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나요?"


"네.. 다행히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어요"


"오.. 아주 좋습니다..

자, 이제 제가 처방해줄 약은 통증 조절에 관련된 약 한 알 뿐이군요..

그럼 6주 후에 또 봅시다"



그렇게 나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한 단계씩 내려가면서 약 6개월에 걸쳐 약을 모두 끊었고,


가장 나중에 추가했던 통증 조절 약 1알 만을 먹게 되었다.


내가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정확히 1년 9개월 만이었다.




약을 점차 줄여가는 6개월 동안 내가 가장 몰두했던 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내가 겪은 일을 짧은 소설의 형태로 적기도 하고 에세이로 적기도 했는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묘사하는 것은 내게 미묘한 쾌감을 주었다.


마치 내가 조물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한 글 속에서는 '나'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도 있었는데, '나'에 대해 적으면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글들은 지어내는 이 아니라 나의 경험을 그대로 되살려 적는 것이었기 때문에 막힘이 없었고,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빠른 속도로 적어 내려갔다.


그 과정은 내게 뿌듯함과 성취감,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치유의 글쓰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써 내려가며 내 마음이 비워지는 만큼,

내가 먹는 약들도 줄어갔다.




내가 쓰는 글의 독자는 가족이었다.


엄마는 내 글의 열혈팬 1호였는데, 내가 글을 보내주면 찬사와 놀라움을 아끼지 않았다.


언니들도 내 글을 보며 즐거워하거나 같이 분노했다.


"내 동생이 이런 일을 겪었다니..  너무 속상하다.. 이 인간쓰레기는 분리수거도 안되겠어!!!"



가장 냉정한 독자는 남편이었다.


그는 칭찬을 하지 않았다.


"이번 글은..  시도만 좋았어. 더 분발하도록"



내가 7번째 글을 완성했을 때, 남편이 처음으로 칭찬해주었다.


바로 '자살에 대한 고찰'이라는 에세이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글 괜찮네.. 플랫폼 같은 곳에서 읽고 싶군"



그리고 그는 내게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  계 속  >



이미지출처 : https://m.blog.naver.com/parkc3030/22040472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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