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래빛 Sep 17. 2021

복직을 앞두고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完



어느새 복직이 2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나는 휴직기간 동안 종종 달력을 보며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었다.

'괜찮아.. 아직 8개월이나 남았어...'
'아직 5개월이 남았어.. 충분히 긴 시간이야...!!'

하지만 어느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2주의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빠르네. 난 달력을 보며 중얼거렸다.

복직 2주 전에는 회사 인사팀에 복직하겠다는 '복직원'을 작성해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남편도 내게 복직하지 말고 집에 있는 게 어떠냐 말했고, 친정가족들도 모두 나의 건강을 걱정하며 회사를 그만둘 것을 권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출근하기 시작하면 금세 다시 아플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하지만 난 몸과 마음이 많이 건강해졌고, 굳이 복직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비록 크게 아팠지만 쉬는 동안 나를 한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가족들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감사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를 보호해주는 안전한 집안에서 포근한 베렛을 껴안고 언제까지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기도 했다.



일단 복직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나서, 꼭 원한다면 퇴직을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내 삶에 있어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설레게 다가왔다.

난 복직원을 작성한 다음 우체국을 들러 회사에 등기를 부쳤다.





집에 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은래빛 과장님 이시죠?"

"네.. 맞습니다"

"전화로 인사드리게 되네요, 000 부서의 김 00 부장입니다

나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일하던 부서의 새로운 부장님의 전화였다.


"네 안녕하세요, 부장님! 반갑습니다"

"네, 은 과장님 다름이 아니라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의 말은 매우 길었는데, 요지는 이러했다.

그는 몇 개월 전에 새로 온 부서장으로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부서를 끌어가고 있는지 그간의 어려움에 대해서 한참 동안 내게 토로했다.

(대체 휴직자인 나에게 왜 본인 신세한탄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부서가 상당히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으니, 나도 복귀하게 되면 즉시 인당 200%~300%의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부서 내 인사발령 이슈가 있어 지금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지금의 부서가 아니라, 민원과 VOC 업무를 하는 부서로 가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 부서는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 중 하나였다.

그는 나의 인사 경력을 보니 타 부서에서 비슷한 업무를 6년간 해본 적이 있으니 잘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니요, 부장님. 저는 그 일을 오랫동안 해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절대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난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내 의향을 묻지 않고 발령내고 싶었겠지만, 휴직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회사 지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화한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 그 부서로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부장은 내 반응이 못마땅했는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구시렁거렸다.

"은과장, 인사라는 게..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나도 이 부서의 부장이 되고 싶어서 온 게 아니거든~

다 회사에서 저기로 가서 일을 하라고 명을 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네.. 그런데도 제 의사를 물어봐주시기 위해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 부서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같은 말은 반복하며 구시렁거리더니, 일단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잊고 있었던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벌써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복직하기 하루 전날이 되었다.

부서장은 부서가 최종 결정이 되면 다시 한번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었는데,

복직하기 전날 점심시간이 되도록 전화가 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점심식사 후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부장님 식사하셨나요? 은래빛 과장입니다"

그는 인사도 없이 대뜸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사팀에서 연락 온 거 없었나요?"

"네? 네.. 없었습니다"

".. 휴.. 네.. 그럼 일단, 우리 부서로 오시죠"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상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지간히도 나를 받아들이기 싫은 모양이었다.

장기간 휴직한 여직원에 대한 선입견으로 가득한, 꼬장꼬장한 성질머리의 남자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마도 배가 뚱 나오고 머리는 문어처럼 벗겨진 데다가, 눈은 넙치처럼 납작하고 고집스러운 입매를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온몸으로 '나는 너를 환영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결국 내가 원하던 기존 부서로 복직하게 되었으니까.

회사를 다니며 배운 게 있다면, 과정은 어떠하든 간에 결과가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불친절함이나 몰상식함에 감정을 소모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갖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난 상큼한 기분으로 복직 첫날 입을 원피스를 골랐다.

무릎을 가려주는 캘빈클라인의 클래식한 블랙 원피스였다.

단아하고 침착한 모습의 은과장으로 내일은 출근!


그리고 모두에게 이렇게 인사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은래빛 과장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完 >


헬레네 클림트의 초상, 1898


이미지 출처 -  https://m.blog.naver.com/whiteyejisos/222027675196

이전 14화 약 감량과 글쓰기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