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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Jul 22. 2021

그곳에서 널 꺼내 줄게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13




"안녕하세요"


"네 은래빛님, 한 주간 잘 지내셨어요?"


"네, 선생님도 잘 지내셨어요?"


일주일이 지나 상담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그녀와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고 상담을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래전 회사에서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 대화하게 되었다.



그때는 약 7년 전으로, 당시 나는 회사에서 욕설을 듣는 일이 일상인 최악의 업무를 5년 동안 지속했었다.


나는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한 만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회사는 인력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업무를 오래 했는지, 힘들지 않은지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난 몸과 마음이 망가질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면담을 통해 업무를 바꾸어달라 요청했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인사발령이었다.



타 부서 발령과 동시에 승진도 누락되었던 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 부서를 벗어난 이후 결과적으로 더 잘 지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받은 상처는 쉬이 아물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일에 너무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했던 것 같다.



그때 상황을 상세히 이야기하자 상담사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너무 힘드셨겠네요.. 세상에.. 어떻게 버티셨나요? 말로만 들어도 너무나 힘이 드네요.."


"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요..


사무실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채로 일하고 있던 저를 생각하면.. 그곳에서 꺼내 주고 싶어요.."



".. 그럼 지금 거기서 꺼내 줘 볼까요?"


".. 하지만.. 지금 그래 봤자 과거는 바뀌지 않는걸요.."


"또 모르죠, 바뀔 수 있을지? 한번 해볼까요?"

 

"... 네"


"자, 눈을 감아보세요"






나는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큰 모니터를 보면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하는 사람 중 몇몇은 흥분하며 언쟁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다시 왼쪽으로 꺾었다.


그곳에 바로 "내"가 있었다.



- 예전의 나를 찾으셨나요?


- 네.


- 어떤 모습인가요?


- 컴퓨터를 보며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안색이

   우 좋지 않아요.


- 많이 지쳐 보이나요?


-.. 네.. 많이 지치고 힘들어 보여요.


- 예전의 나에게 같이 나가자고 해보세요.




나는 ''를 불렀다.


"은빛아"


''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매우 수척해져 있었고, 뭔가 필사적이면서도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자"


''는 약간 놀라는 눈빛을 했다. 무언가 게 말하고 싶은 듯했다.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지도록 할 필요 없어..

넌 여기서 행복해지지 않아, 나와 같이 나가자"



'나'의 손을 잡고, 그 사무실을 지체 없이 큰 걸음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와 함께 뛰어나왔다.



- 나온 후 표정이 어떤가요?


난 ''와 마주 보았다.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웃고 있어요.


- 그렇군요, 회사 밖으로 나오기만 했는데도

   웃게 되었네요 그렇죠?


- 네..


- 어디로 가고 싶나요?


- 근처에 분수대가 있어요.. 거기에 가서 분수를

   보고 싶어요.


- 네, 분수대로 이동합니다.



난 ''와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분수를 구경했다. 씨가 좋았다.



- 이제 어디로 가고 싶나요?


- 근처에 맥도널드가 보여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요.



''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 회사 근처에만 머무르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어요.


- 아.. 네.. 그렇다면.. 같이.. 집에 가고 싶어요.


- 네, 집으로 갑니다.


- ''를 집에서 쉬게 해주고 싶어요.



난 ''를 침대에 누이고 폭신한 이불을 덮어 쉬게 해 주었다. '내'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 ''를 쉬게 해 주었어요.


- 네, 잘하셨어요. 이제 눈을 뜹니다.






나는 눈을 떴다.


내 얼굴은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은래빛님, 어떠셨나요?"


"... 눈물이.. 많이 났어요.."


"은래빛님의 성향상 아주 자유롭게 먼 곳으로 떠날 줄 알았는데, 회사 근처에만 자꾸 있으려고 해서 의외였어요."


"아 네.. 저도 모르게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잠시 산책하고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뇨.. 돌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네.."


"어때요, 과거가 좀 바뀐 것 같나요?"




난 희미하게 웃었다.


"... 네..."



 


상담사가 나에게 해준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상상 속의 상황극' 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때를 생각하면 괴롭고 힘든 나 자신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기적같이 나타난 '또 다른 나'와 손을 잡고 뛰쳐나오는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나버린 과거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내가 가진 과거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수많은 아픈 기억들, 후회되고 힘들었던 감정들은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무력하게 과거의 그때로 끌려가 괴로움을 곱씹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다시금 후회나 원망, 자기 연민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생각을 달리 해보면,

나는 그렇게나 힘들었던 시간들을 헤쳐 나온 자랑스러운 존재이다.


너무나 소중하고 대견하다.


난 내가 여자의 몸으로 전장을 승리로 이끈

 다르크만큼이나 멋지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인생'이라는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화살을 어디에 맞아 얼마나 아팠는지, 누가 나를 배신했는지 괴로운 일로 돌아가지 말자.



전쟁에 승리한 나는 모두의 환호성을 받으며 행진할 차례이니까.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아직 자신을 괴롭히는 힘든 과거의 기억이 있다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기억 속의 나를 꺼내 주자.



힘들게 만든 상대가 있다면 뺨을 세차게 갈겨줘도 좋다. 분이 풀릴 때까지! 

양쪽 번갈아서!


상대방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한 뒤 '나'를 데리고 뛰어나오자.


당신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혹독한 시간들을 견뎌내고

자신의 인생을 승리로 이끈 당신에게



앞으로는 꼭 영광의 행진만이 함께하길.






캔버스 유화, 50cm×40cm

 제목 : "과거의 아픈 나"와 마주한 나





캔버스 유화, 50cm×40cm

제목 : 여기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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